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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 설재인 장편소설
설재인 ㅣ 밝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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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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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
2021년 08월 12일
  • 페이지수/크기/무게
324page/129*189*24/335g
  • ISBN
9788984374294/898437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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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정보
  • 것대산 막걸리 집 여자 화장실 세 번째 칸 그곳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것대산 끝자락에 위치한 잘 나가는 막걸리 집 옆의 옆에 있는 가게. 산행을 마친 주영과 엄마는 배를 채우고자 그곳으로 들어간다. 청국장과 함께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고 난 뒤 화장실로 향한 주영. 그런데 다시 돌아온 주영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엄마의 맞은편,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웬 남자가 앉아 청국장을 ‘처’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마음도 잠시, 너무도 태연한 엄마의 얼굴에 주영은 옆자리에 앉아 곁눈질을 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33년 인생의 짬밥이자, 그동안 수백 번도 넘게 철판을 깔아왔던 경험 덕택이었으리라. 그러자 남자가 엄마에게 묻는다. “아빠는 오고 있대?” 아빠? 저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놀랍게도 이내 엄용민 씨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부진 체구, 까무잡잡한 피부, M자형 탈모, 숯검정 눈썹. 모든 것이 그대로다. 화가 나면 언제나 모녀에게 보내던 그만의 경고까지. 비웨어, 커션, 그리고 워닝. 그 ‘워닝’ 때문일까, 아니면 취기 때문일까. 몽롱한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중 옆을 보니, 어느새 세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그곳에는 남성용 구찌 반지갑 하나가 덜렁 남겨져 있다. 주영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한다. 거기에는 아까 엄마가 아들이라고 불렀던 남자의 얼굴이 떡하니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이름 ‘엄주영.’ 그것은 주영이 33년간 써온 이름이었다.
  • 이런 걸 뭐라고 해? 평행 세계?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걸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넌 또?” “내가 남자로 태어났잖아? 학교 다닐 때 애들 괴롭히고, 연애하면서 여자 괴롭히고, 자식 낳으면 맨날 소리나 지르고, 그랬을 거야. 때렸을지도 몰라. 진짜로.” “무슨 소리야, 너 인성 그렇게 나쁜 애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 안 키우려고 기를 썼을 거야.” 그다음에 이어 하고 싶던 대답은 속으로만 뱉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인서울 해서 해방될 때까지 집에서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인데, 엄마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별수 있었을 것 같아? 십여 년을 그런 집구석에서 커야 했던 아이가 짠, 하고 성인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같은 이름, 같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엄마 아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아까 등산을 할 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 씨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어찌저찌 막걸리 집에선 나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주영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방황하다 우선 지갑을 돌려준다는 핑계로 남자 엄주영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용암지구대로 향한다. 그리고 또 한 번 머리를 부여잡는다. 거기엔 ‘최은빈’이 있었다. 주영의 세계에서 그의 베스트프렌드였던, 그러나 어느 날의 싸움으로 한순간에 남이 되었던 옛 친구가. 물론 은빈 역시 주영을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남자인 엄주영은 잘 아는 것 같다. 은빈의 입을 통해 들은 남자 엄주영은 주영을 충격에 빠지게 한다. 엄주영, 빨간 줄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패거리의 ‘따까리’였다. 잘나가는 애들한테 빌빌 기고, 망보며 기생하는 존재. 친구들의 힘이 자기의 것인 줄 착각하는 멍청이. 그게 바로 ‘남자’로 태어난 주영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걸 평행 세계라고 하던가?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던 자신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감히 내 이름을 걸고 망나니짓을 저질러? 그저 기분 나쁜 꿈이었다 치부하며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주영의 눈에 자꾸만 한 사람이 아른거린다. 자신을 아가씨라 불렀던 엄마 ‘배중숙’씨. 내 세계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딸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한 아들을 가지고 있다니, 배중숙 씨는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 걸까. 이 꼴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주영은 결심한다. 엄마를 위해 남자 엄주영을 개과천선시키기로. 그리고 이유는 또 있다. 감히 자신의 이름을 달고 망나니짓을 저지른 죗값도 받게 해야 할 것 아닌가. 탁구와 유도로 단련된 주영의 전완근이 불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히 뭣도 없는 이 평행 세계에서 혼자 힘으로는 무리인 일. 그런 주영에게 선택지는 하나였다.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최은빈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주영은 은빈에게 자신이 평행 세계에서 왔음을 고백한다. 믿지 못하는 은빈에게 주영은 자신의 세계에 사는 은빈의 학창시절을 줄줄 읊는다. 장우혁에서 시작해 김동완을 거친 그의 유구한 덕질의 역사를. 반신반의하던 은빈은 엄마를 구하겠다는 주영의 확고한 마음에 흔들린다. 주영은 은빈과 함께 근무하는 박병옥 경사에게도 그들의 계획을 전하며 설득한다. 마침내 살기 좋은 청주시를 만들자는 명목아래 세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어떻게 하면 남자 엄주영을 개과천선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의 뒤를 밟던 주영과 은빈은 그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정체에 대해 아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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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걸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넌 또?” 본가 아파트의 뒷산에 ‘뒷산’이 아닌 이름이 붙어있단 걸 나는 서른셋이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낙가산’. 그 산줄기를 한 시간 정도 타고 가다 보면 어느새 산 이름이 ‘것대산’이라고 슬그머니 바뀌었다. 엄마와 나는 낙가산과 것대산의 중간 즈음에서, 한참 동안의 오르막을 드디어 끝내고 내리막에 접어들며 호흡을 가다듬는 참이었다. 오늘의 코스는, 낙가산에서 출발해 것대산을 지나 산성 마을에 도착한 후 엄마와 막걸리를 한 잔씩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엄마도 알잖아. 나 분노 조절 안 되는 거.” “알지.” “뭘 알아, 알긴. 엄만 반의반도 몰라.” “왜 이랬다저랬다 해. 방금은 알 거라며.” “엄마는 내가 연애하는 거 옆에서 본 적 없잖아. 엄마 그거 알아? 나 지금까지 연애할 때마다 남친들을 완전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썼어. 먹기 싫은 거, 상한 거, 그런 거 다 갖다 부었어. 술만 마시면 꼬장에 폭언에…. 지금까지 한 대도 안 맞은 게 신기하다니까. 내가 일하면서 맞는 여자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겠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뭔 소리야. 네가 남자한테 왜 맞아!” “안 맞았다니까, 좀 집중해서 들어. 엄마가 나한테 왜 맨날 말라빠졌는데 키까지 더 작은 남자 만나냐고 속상해 했잖아. 왜 학벌도 안 좋고 벌이도 시원찮고 말주변도 없이 수줍기만 한 애들 만나냐고 했잖아. 왜 그 잘하던 탁구나 계속 치지, 남 목 조르고 잡아채는 운동만 하냐고 13년째 혼내고 있잖아. 근데 엄마, 솔직히 말해줄까? 내가 왜 그랬는지?” “너 갑자기 왜 이러니, 술도 안 마셨으면서.” 몸을 움직이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아드레날린이 나와서인지 이상하게 평소 할 수 없던 말들을 마구 뱉게 된다. “내가 술 먹고 아무리 쓰레기처럼 굴어도, 날 때릴 수 없을 만한 애들을 골라 사귄 거야. 내가 그 정도로 쓰레기 같았던 걸 나는 알고 있거든. 엄마, 그게 바로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유야. 내가 남자로 태어났잖아? 학교 다닐 때 애들 괴롭히고, 연애하면서 여자 괴롭히고, 자식 낳으면 맨날 소리나 지르고, 그랬을 거야. 때렸을지도 몰라. 진짜로.” “무슨 소리야, 너 인성 그렇게 나쁜 애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 안 키우려고 기를 썼을 거야.” 그다음에 이어 하고 싶던 대답은 속으로만 뱉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인서울 해서 해방될 때까지 집에서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인데, 엄마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별수 있었을 것 같아? 십여 년을 그런 집구석에서 커야 했던 아이가 짠, 하고 성인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어쨌든 그래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선천적으로 힘이 달리니까 나쁜 짓을 못하잖아. 저절로 착해졌어. 이러고 싶지 않은데.” “…너 남자들 이겨먹으려고 유도 배웠지.” “에에이, 못 그래. 사람들이 막, 여자가 격투기 하면 남자 이기겠네, 하고 기대하거든? 근데 너무 슬프지만 선천적인 하드웨어 차이가 있어. 엄마. 남녀는 타고난 근력이나 뼈대 자체가 아예 달라. 그러니까 싸움박질은 안 할 거야. 걱정하지 말고, 뭐 그냥 아, 이래서 얘가 연애를 더 이상 안 하는구나, 결혼할 마음도 없구나,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이거야. 쓰레기 되고 싶지 않으니까. 남 불행하게 하고 남의 삶 망치고,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귤이나 먹자.” 뭘 이렇게 무겁게 챙겨왔어? 나는 핀잔을 주며 앉은 자리에서 귤을 다섯 개나 까먹었다. 엄마는 겨우 하나를 먹더니, 부르튼 입술에 귤즙이 들어가 따갑다며 립밤을...
  • 설재인 [저]
  • 저자 설재인은 1989년생으로 특목고에서 수학을 가르쳤지만 그만뒀다. 복싱은 그보다 오래 했으며 그만두지도 않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는데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다. 매일 출근 전에 소설을 쓰면서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들과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한다. 소설은 안 그만둔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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