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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정창조 ㅣ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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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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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page/149*210*25/5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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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90422994/119042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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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해방열사가 산 자들의 ‘이 세계’에 남긴 것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장애해방열사 여덟 명의 흔적을 좇는 기록. 장애문제가 장애인만의 문제로 여겨지고 사람들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부터 장애인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열사들의 치열했던 삶과 투쟁을 담아낸다. 이들이 쌓아올린 운동의 물적, 정신적 토대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가 기획하고 일곱 명의 기록 활동가들이 써내려간 이 장애인운동사는 주류 운동권의 열사들과 달리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인운동 열사들의 이야기를 드러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기록이 “취약한 기억에 안정된 거처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글들을 쓴 기록 활동가들의 믿음이다. 이들 장애해방열사의 삶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모순과 차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번 거리의 턱에 가로막혀 운신할 수조차 없던 현실, 장애인에게 가능한 유일한 노동이었던 노점을 단속반과 용역에게 번번이 빼앗겼던 현실, 최저생계비 수급을 빌미로 노동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현실, 중증장애인의 생명과 직결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현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장애해방열사들은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기치가 내걸리던 1980~1990년대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변방’에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대의 최전선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삶을 꾸리고 투쟁을 조직해갔다. 이들이 벼려낸 저항은 쌓이고 쌓여 어느새 ‘진보적 장애인운동’이라는 깊고도 너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한평생 ‘변방의 존재’로 머물다 간 이들, 그죽음의 순간조차 불평등했던 이들, 그러나 그 불평등마저 저항으로 벼려낸 이들 장애해방열사가 산 자들의 ‘이 세계’에 남긴 것 한 장의 유서가 촉발한 저항: 김순석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조선일보》(1984. 9. 22)에 실린 김순석의 유서 1984년, 염보현 당시 서울시장 앞으로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순석(1952~1984. 9. 19). 김순석의 죽음은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라는 인식이 대두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항거로 평가받는다. 어려서 겪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던 그는 1980년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심한 장애를 입게 되었다. 그래도 세공 기술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액세서리를 만들고 팔며 꿋꿋이 생계를 이어갔고,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번번이 도로의 턱에 가로막혀 운신조차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꾹꾹 눌러 담은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1984년 9월 22일의 일이었다. 그의 억울한 죽음은 친목 위주의 단체였던 대학정립단 소속 학생들(주로 소아마비장애인들)을 행동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그가 생을 마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월 6일 장애인 복지시설 정립회관 운동장에서 열린 제8회 전국지체부자유 학생체전 개회식에 김순석의 모조관을 들이고 그의 사정이 적힌 유인물을 배포했다. 장애인을 위하는 척하는 겉치레용 행사만 열지 말고,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당시 이 행사에는 문교부 장관, 서울시 교육감,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사회국장 등이 내빈으로 참석해 있었다. 김순석 열사의 유령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출몰한다. 시작이 된 죽음: 최정환, 이덕인 “복수해달라,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 죽어도 좋다.” -최정환 장애인의 자립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1980년대, 장애인이 노동을 통해 먹고살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노점이 유일했다. 기술을 익히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와 양말, 라이터, 휴지, 껌 등 간단한 공산품들을 팔아 하루 먹고살 만큼의 수입을 거두곤 했다. 스물한 살 때 당한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를 입은 최정환(1958. 6. 30~1995. 3. 21)도 그중 하나였다. 수세미를 팔다 카세트 노점으로 종목을 바꾼 그는 양재역 부근에서 쏠쏠한 수입을 얻으며 호시절을 맞는다. 그러나 정부의 노점상 탄압은 그를 사지로 내몬다. 1994년 여름 단속을 당하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그는 생계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그에게 서초구청 측은 ‘고소하지 않으면 이제 편하게 장사하도록 해주겠다’며 합의를 종용했지만, 끝내 그 약속을 저버렸다. 1995년 3월 8일, 단속반원들에게 장사 밑천인 스피커와 배터리를 또다시 빼앗긴 그는 그 물건들을 되찾고자 찾아간 구청에서 멸시 어린 시선을 받고 쫓겨난다. 그날 저녁 최정환은 시너 1리터를 자신의 몸에 쏟아붓고 불을 붙인다. 온몸에 극심한 화상을 ...
  • 발문 ‘발아하는 씨앗’을 남겨준 이들을 기억하며 | 박경석 ㆍ 4 기획의 말 시대의 악령들을 애도하며 | 정창조 ㆍ 9 1984년 서울, ‘불구자’의 유서 | 김순석 열사 ㆍ 27 시대의 복수가 된 유언 | 최정환 열사 ㆍ 55 한 장애인 노점상 청년의 삶과 죽음 | 이덕인 열사 ㆍ 93 변방에서, 혁명의 물리적 근거를 위하여 | 박흥수 열사 ㆍ 125 살아남은 자, 조직하라 | 정태수 열사 ㆍ 181 이르게 온 미래 | 최옥란 열사 ㆍ 221 유서가 된 죽음 | 박기연 열사 ㆍ 255 옆에도 뒤에도 항상 그가 있었네 | 우동민 열사 ㆍ 291 참고 자료 및 자문 ㆍ 332 추천의 글 그들이 여기, 우리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 김도현 ㆍ 338 장애해방열사, 살아 있는 역사 | 장혜영 ㆍ 341 장애인의 ‘살림’살이를 위하여 | 홍세화 ㆍ 343
  • 곁에 있던 이들을 떠나보내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몸에 흡수되고, 마음으로 전달되어 작동하던 힘은 ‘희망의 물리적 토대’가 되었다. 죽은 이들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손가락만을 보지 않고 달을 바라보며 지금을 견뎠던 힘이었다. -6~7쪽 유서를 읽는다는 건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때에나 가능한 게 아니다. 새로운 이미지들로 매 순간 채워지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시대의 유혹에 매 순간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면, 과거는 결코 산 자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다. 유서와의 마주침은 산 자들이 죽은 자의 흔적이 새겨진 과거 앞에 멈출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20쪽 장애자들은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49쪽 유언은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 뱉어낸 천둥 같은 말이다. 생生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이 낯선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선 생의 씨줄과 날줄까지 읽어내야 한다. 유언의 속성은 지시성에 있다. ‘복수해달라.’ 그러므로 유언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듣는 자’가 있을 때에야 세상에 ‘존재하는 말’로 남는다. 최정환의 유언을 읽어낸 사람들은 필사적이었다. -61쪽 이덕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늙고 지쳤다. 그들에게 아들은 24년 전 죽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심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1995년 장애인 노점상의 삶과 저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지금껏 유보되고 기각되어왔다. -109쪽 조직된 노동자나 대학생뿐만 아니라, 저들처럼 못 배우고 이 세계의 생산 시스템에서 속하지 못한 이들 역시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실제로 그러할 수 있다는 박흥수의 신념은 이 복수를 통해 점점 더 구체화되어갔다. 당시 그는 ‘자본에 착취당할 자격’조차 없는 이들이 그 시스템 안으로 어떻게든 발을 내딛음으로써 도래할 세계의 변혁을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158~159쪽 제주에서 서울까지 양쪽에 목발을 짚은 채 정태수는 걷고 또 걸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발바닥은 부르트고 허물이 벗겨졌지만,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1500명의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고 다녔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루어낼 도리가 없는 일이 바로 ‘조직’이다. 그런 면에서 조직이란 농사일처럼 정직한 일이다. 한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서 온 세상을 바꾸어낼 도리 같은 건 없는 것이다. -206~207쪽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운동은 최옥란에게 새로운 언어를 주었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개별 사건과 삶의 모순에 대해 비평적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을 뜻한다. 장애로 인한 차별,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가난에 힘겨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삶을 꿈꾸었던 최옥란에게 장애해방운동은 혁명이었다. -250쪽 박기연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아니라 ‘살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활동지원서비스만 있었다면 그가 결코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박기연은 쉽게 비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전에 박기연이 투쟁을 통해 간절히 요구했던 것 역시 활동지원제도의 도입이었다. -260쪽 같은 날, 살이 에일 듯한 한파 속에서 장애인 활동...
  • 정창조 [저]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박종필추모사업회, 노들장애학궁리소 등에서 활동하며,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을 썼고, 죄르지 마르쿠스의 《마르크스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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