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산문집. 이천년 여름,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경기도 안성의 호숫가에 집필실 겸 살림집을 짓고 느림의 삶을 사는 시인 장석주의 산문집이다.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한 듯한 생동감과 섬세하면서도 환상적인 언어, 그리고 서정적인 사진들의 어울림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심정과 깨달음을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사람의 영혼을 깨우는 힘과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투명하고 아름답게 옮겨놓고 있다. 시인이 사는 안성 금광저수지 일대의 풍경을 담은 사진작가 이해선의 사진들도 더 없이 멋스럽다.
"나는 누구이고,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세상에 던져진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본원적으로 다가오는 물음이다. 또한 장석주 시인의『마음의 황금정원』을 읽는 내내 가슴 아리게, 그리고 절박하게 피부에 와닿는 물음이다.『마음의 황금정원』은 '물병자리의 시인'의 자기 고백적 산문집이다. 지금껏 자신을 옭아매어 온, 지난 삶이라는 암자 속에 웅크리고 앉아 '물병자리의 시인'은 빛바랜 사진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며 '치열한 사유의 고투, 그리고 변태와 우화의 흔적이 있는 글'을 쓰겠다고 새삼 자신을 다그친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이 산책하고 더 많이 단순해지고, 더 많이 고독해지려 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내면 속에 가득했던 생각들을 하나씩 비워내고 투명해지려 한다.
그 때문일까. 장석주의 글 곳곳에서는 바람소리가 나고, 물 내음이 물씬 풍긴다. 어느 순간 서울살이를 청산 하고 시골로 내려가 물가에 집을 짓더니 그 이름을 '수졸재'라고 붙였다. 이는 곧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낮음을 지키며 산다'는 뜻으로, 소박하게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대도시의 탐욕과 이기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융화와 상생의 삶을 꿈꾸며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는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순리를 새삼 깨닫는다. 그는 여전히 책읽기를 좋아하고 음악 감상을 즐기며, 시를 쓴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그러한 행위들을 향해 지친 몸을 의무적으로 내밀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 그의 하루 일과는 침묵, 산책, 하루종일 물 바라보기, 나무와 대화하기, 낮잠, 책읽기, 명상, 내면 돌아보기, 영성 키우기, 위빠사나 수행자처럼 걷기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혼자 감내해왔던 수많은 일들에서 벗어나 정신적 해방감을 만끽하고 삶의 완전한 향유를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무리여, 안녕. '나'를 강제하는 무리틀이 따르던 일체의 규범과 계율이여, 안녕. "죽은 고양이의 대가리"에 지나지 않는 낡은 일상이여, 안녕. 저 넓은 개펄에 표표히 혼자 앉아 있는 새는 대침묵의 시간에 든다. 여기에 밥 먹고 옷 입고 음식 먹은 뒤의 그릇을 씻고... 먹고 자고 하는 그 한없는 되풀이의 일상은 없다. 여기엔 새벽잠을 억지로 깨우는 자명종도 없고, 국세연체에 대한 독촉도 없고, 만성적 피로도 없고, 러시아워도 없고, 출퇴근도 없다. 오로지 고립무원만이 있다. - 91p.
내 안엔 문도 참 많아, 이 문으로 들어가 저 문으로 나오고, 다시 또 다른 문을 밀면 낯설고 긴 낭하가 나오고, 그 물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햇빛 가득한 정원도 있고 그 정원 건너편으론 또 몇 개의 닫힌, 아직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문들이 있고... 그래서 아주 심심한 날에는 그 문들을 한없이 여닫으며 들고나며 시간을 보내기도하지요. 그 문들의 뒤에는 '기억들'이 살고 있지요 - 123p
새로운 삶으로의 나아감, 그것보다 더 흥분되고 긴장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앞만 보며 뛰어왔던 기나긴 통로의 한 지점에서 자신의 고달팠던 내면을 꺼내어 다시금 돌이켜본다는 것, 그것보다 더 힘든 일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의 황금정원'을 꿈꾸며, 우화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내면에 꼭꼭 잠가놓았던 자물통을 풀고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그늘지고 눅눅했던 방안에 맑은 햇살이 비치고, 꽃향기 묻은 바람이 드나들도록...
본문 소개
도시에서 골목길은 시골의 오솔길에 해당한다. 골목길은 숨이 ...막히게 긴 문장 속에 찍히는 쉼표고, 도시 속의 자연휴양림이다. 골목길은 과속과 독과점적인 욕망의 빽빽한 본문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삶 속에 숨어 있는 여백이며 행간이다. 골목길은 처마가 낮고 오래된 가옥의 낮은 처마들이 양육하는 아이였다. 골목길은 시골집의 구들목처럼 따뜻하고, 때로는 입양아처럼 쓸쓸했다. -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온 이후로 나는 꽤나 거칠고 척박한 삶을 헤쳐나왔습니다. 선물이란 인생의 음습한 기질을 공략해버리는 그 무엇. 마음을 부풀게 만드는 기쁨의 효모 같은 것. 인생의 즐거운 이면. 날아다니는 성냥. 하지만 내 인생의 정원에는 '선물'이란 이름의 나무는 없었지요 그래도 오랜 내 기억의 창고를 뒤져보면 금빛의 불이 환하게 밝혀진 방들 같은 기억들이 한두 개쯤은 숨어 있을 터. - 「홍옥 두 개」에서
내가 '에바'를 처음 만난 것은『데미안』에서였습니다. '에바'는 우리를 구원할 영원한 여성의 원형, 내면의 신성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나는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뜁니다. 저 청춘의 질풍노도 시절 문학에 혼을 봉납하고, 그보다 더 삶의 누추함과 비루함에 절망하던 남자. 평범과 타성과 나태에 대한 도저한 경멸. 한 청년의 구두 뒤축을 앓게 만든, 일천구백칠십년대의 종로서적과 명동 거리와 음악감상실과 시립도서관. - 「이미 청춘은 등뒤에서 머뭇거리네」에서저자 소개
작가 장석주
그는 충남 논산군 연무읍 신화리에서 인동 장씨인 아버지와 광산 김씨 어머니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농경사회의 유습이 남아 있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일천구백육십년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와 청소년기와 청년 시절을 보낸다. 이십대 전반기는 시립도서관 등지에 처박혀 보낸 지향 없는 책읽기의 날들과, 인생의 낙오자의 외관을 하고 떠돈 방황의 날들로 채워진다. 이때 그의 지적 자산과 기반이 구축되고, 그것은 학벌이나 인맥 등과 같은 온갖 연고주의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희귀하게 연고없이 생존자가될 수 있었던 근거였다. 일천구백칠십구년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통과하며 '시인'과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을 갖고, 일천구백팔십년대를 '고려원'과 '청하'라는 두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로 보낸다. 그뒤로도 책과의 끈질긴 인연은 중단없이 이어지는데 책을 만드는 편집자후 그가 꿈꾸었던 저자의 신분으로 인생 유전을 거듭한다. 실은 책을 중심에 놓고 매개되는 하나의 운명에 다름 아니다. 그는 서른한 권의 책을 써낸 저자이며, 동시에 십여 년 남짓 여러 문화센터의 창작프로그램의 강의를 이끌고 여러 방송매체에서 책과 문학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진행자, 혹은 고정 패널로 활동한다. 이천년 여름,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경기도 안성의 호숫가에 '수졸재' 라는 집필실 겸 살림집을 짓고 들어앉는다.
1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수졸재에서 부치는 편지
골목길
골목길,그 뒷이야기
아버지
마음의 횡금정원
2 수졸재
눈감고 자는 물고기를 본 적이 있는가
둥근 마음의 꽃망울이 몸을 열 때
초대하지 않은 손님
또 다른 식구들
목판본의 아주 오래된 내면
너구리
별똥별
3 바로 나이게 하소서
석남사
홍옥 두 개
달력
흐릿해진 얼굴을 찾아가는 마음의 궤적
천 개의 작은 길과 천 개의 삶의 섬들
4 너무 위험한 광기, 태양빛으로 작열하는 삶
에드바르트 뭉크를 추모하며
이미 청춘은 등뒤에서 머뭇거리네
'모던 보이'에서 붉은 깃발을 든 좌파 혁명가로
장석주 [저]
시인, 산책자 겸 문장 노동자. 서재와 정원 그리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며 햇빛과 의자를, 대숲과 바람을, 고전과 음악을, 침묵과 고요를 사랑한다. 스무 살에 문단에 나온 이후,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며 평론을 겸업한다. 스물다섯 살부터 열다섯 해 동안 출판 편집자로 살았다. 안성의 ‘수졸재’에서 읽고 쓰는 삶을 꾸리다가, 지금은 파주로 거처를 옮겨 전업 작가로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며 지내고 있다. 시집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등과 산문집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을 썼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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