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박정애 창작집. 세상 전체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역사적 안목과 그녀만의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으로 펼치는 여덟 편의 감동적인 성장소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성의 눈으로 그린 여성의 성장소설
《춤에 부치는 노래》는 새로운 페미니즘을 예고하며 등장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박정애의 첫 창작집이다. 이 책은 세상 전체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역사적 안목과 그녀만의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으로 펼치는 여덟 편의 감동적인 단편들로 이루어졌다. 자매애와 모성애의 두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던 장편《에덴의 서쪽》(2000, 문학사상사)과 다양한 표피의 삶을 사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물의 말》(2001, 제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우리네 '여자 이야기'를 현실감 있고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녀를 주목받게 했다.
박정애가 이번 창작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전작과 과히 다르지 않다. 여덟 개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고단한 삶의 중심에 서 있다. 농촌, 가난, 무지 그리고 결손가정 속에 내팽개쳐진 유년 등등(자본주의 가부장제와 부자연스런 성별 분업에 대한 분노가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감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정애 문학의 힘은 여기서부터 발휘된다. 작가의 강점은 바로 아픈 과거를 스스로 치유한다는 것인데, 이들 불쌍한 여인들의 상처는 성인이 되면서 혹은 세월이 지나면서 극복된다.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것 한 가지. 바로 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투리이다.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는 그녀의 방언은 주변부 인간의 삶과 의식을 존중하고자 하는 작가의 깊은 뜻의 발로이다. 이 같은 작가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소설들을 읽는다면 단편 하나하나마다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학적 참주제로 즐거움을 만끽할 몸의 사상과 문학
<춤에 부치는 노래>는 한갓 입심으로 씌어진 것일까. 해학의 범주에 드는 것일까. 그렇기는 하나 그 이상이어서 즐겁다. 뭣이 그 이상인가. 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지랄 발광을 하는 젖"을 가진 임지연. 무쇠방망이만큼 단련되고 탄력 있는 몸매를 가진 '나'. 그 대단한 몸의 사상이 이 작품의 참주제이다. 몸의 사상, 몸의 문학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몸 전체가 '클리토리스'인 것. 우리 문학의 낯선 대목이라 할 만하다.
- 김윤식(문학평론가)
여성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 만들어내는 시대와 사회의 축약도
문자 대신 영상으로 승부를 거는 세태에서 문학의 본령인 말의 역할을 고집하는 박정애는, 분명 시대에 처지거나 둔감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상 전체를 보는 역사적 안목이 있다. 도시와 시골, 근대와 전근대, 표준어와 토속어를 아울러서 시대와 사회의 축약도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이제 서른 갓 넘은 여성의 태생적 한계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 안경환(서울대 교수)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진리를 찾으려는 우리의 몸부림
그녀의 글(말)은 입담에 가깝다. 다성적이다, 해체적이다, 산만하다. 그녀는 이 입담과 다성성과 산만함으로써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나 일면적이었던 근대의 중심 논리를 해체해 나간다. 이 방식은 시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타자에게 무척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글(말)에는 남편의 담론과 아내의 담론이 아이를 중심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자신의 몸 부분부분에 대한 성찰이 누더기처럼 기워져 있기도 하다. 이 전략은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는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진리를 찾으려는 우리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 최혜실(문학평론가, KAIST 교수)
본문 소개
싸락눈 날리는 2월의 대학교 여자 화장실에서 나는 앞섶을 열어젖힌 채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아 있다. 플라스틱 유축기로 ...돌덩이 같은 젖통에서 정신없이 젖을 짜내어 변기 속으로 흘려 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흐르는 것은 눈물이고 떠오르는 것은 작은 입을 오물거리는 갓난쟁이의 모양이다. 지금 이 젖을 갈망하는 내 새끼는 얼마나 입이 타고 목이 마를까? <춤에 부치는 노래> 중에서
목에서만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숨구멍에서까지 소리가 나온다. 경복궁 하늘은 바다보다 아찔하고 깊어, 단풍 든 고목은 저녁놀보다 곱고 처처(悽悽)하여 여자의 몸에 합일(合一)한다. 다르다. 같은 사람이건만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화사한 연꽃빛은 간 데 없고 오로지 여자의 애원처창(哀怨悽愴)한 음성만이 한 해의 가을을, 하루의 황혼을 깊어지게 한다. 여자의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은 차갑고 여자의 코와 입에서 들고 나는 숨은 뜨겁다. 여자의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꽃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노랫가락> 중에서
아이 방 옷장에서 차렵 이불을 꺼내어 남편에게로 갔다. 벗은 발부터 이불을 덮어주는데 남편의 풀린 허리띠와 사각 팬티 속에 들어가 있는 손목이 또다시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어떤 뜨거운 감정이 목울음처럼 치밀었다. 그 흔하던 눈물은 웬일인지 흐르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파 밑에 주저앉아서 남편의 한 손을 끌어내고 그 자리에 내 손을 넣어 가만가만 남편의 고추를 만져 보았다. 그것은 작고 따뜻하고 몰랑몰랑했다. <나의 더없이 충만한 시간> 중에서저자 소개
작가 박정애
1970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신문학과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후, 장편소설《에덴의 서쪽》(2000년 문학사상사)과《물의 말》(2001년 제 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다수의 중·단편 소설을 선보였다. 인하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인하대학교와 국민대학교에 출강중이다.
작가의 말
러브 이즈
영(零)
노랫가락
천사의 도시
어느 사회주의자의 연인
춤에 부치는 노래
집 없는 아이
나의 더없이 충만한 시간
추천의 말
박정애 [저]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에서 이야기 창작법을 가르치고, 여러 나이대의 독자를 위해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야기 세상에서 이야기와 놀 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짜릿하고 행복하답니다. 어른 독자를 위해 <물의 말>, <덴동어미전> 등을, 청소년 독자를 위해 <환절기>,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 등을, 어린이 독자를 위해 <친구가 필요해>, <똥 땅 나라에서 온 친구> 등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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