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관점에서 근대의 역사를 재구성한 책. 근대(성)의 문제를 이론 및 영역에서 점검해 나가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져 버린, 타자화된 여성 경험의 흔적들을 들추어내고 그로써 근대와 여성의 관계를 재구성했다. 또한 산업화의 기록되지 않은 노동력으로, 혹은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분열된 욕망의 대상으로 도구적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의 관점에서 근대의 역사를 정리했다.
머리말 .... 5
식민주의 기억의 에로틱 정치학 - 김성례 ... 17
근대의 기획, 젠더화된 노동개념 - 김현미 ... 43
식민주의와 가부장제라는 미로 - 양현아 ... 71
1990년대의 시적현실, 어디에 있었는가 - 김혜순 ... 105
근대, 동양 여성이 가지 않은 길 - 우미성 ... 143
근대와 한국 여성 소설 - 최윤 ... 177
소수 집단 문학으로서의 여성 문학과 그 정치학 - 김영옥 ...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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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253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가장 지속적으로 전개된 담론이 있다면 그것은 근대(성)에 대한 담론일 것이다. 성급하게 수입되어 다분히 탈맥락적으로 유포된 탈근대/현대 이론은 한국 사회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던 근대(성) 논의의 본격적인 진행을 지연시킨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대변되는 동구권의 "몰락", 그에 따른 민족주의/민족 국가의 새로운 부상, 그와는 반대로, 혹은 그와 병행하여 과속화되기 시작한 전지구화 현상과 국가간 경계의 이완 등은 전세계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논의를 이전과는 다른 국면에서 활발하게 촉발시켰고 이것은 한국 사회의 담론 현장에도 중요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리엔탈리즘 논의, 포스트식민주의 논의 등 정체성을 둘러싼 더 심층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이 근대(성)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다시 동아시아 담론과 중첩되면서 민족, 국가, 근대화 등의 개념에 대한 치열한 해석학적 정치학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부분 남성 지식인들에 의해 수행된 이러한 논의들은 그 지속적인 열기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제한된 패러다임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 각인된 타자성의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남성 주체들의 위치가 상당히 일의적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구상된 것이 [또문 대학]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규칙적인 모임을 갖고 "근대와 페미니즘", "근대화 과정 속의 여성" 등에 대한 토론을 계속해 오던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은 이러한 논의를 더 열린 토론의 광장으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여성주의 시각으로 기존의 담론을 거슬러 읽고 재구성함으로써 근대(성) 논의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더 나아가 새로운 역사 쓰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이다.
[페미니즘과 모더니티 서사]를 주제로 1999년 9월 30일부터 12월 9일까지 매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열린 제1기 [또문 대학]은 근대(성)의 문제를 이론 및 재현의 영역에서 점검해 나가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져 버린, 타자화된 여성 경험의 흔적들을 들추어내고 그로써 근대와 여성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였다.
서구를 기준과 모델로 삼은 채 근대화를 수행해야 했던 한국 같은 곳에서 근대화 과정을 논의할 때 제일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여러 겹으로 착종된 타자의 정치학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에 의해 타자의 위치로 호명된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는 자국 내에 있는 여성들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자아 위치를 되찾고자 하지 않았던가. 타자의 자리에서 국가 통제의 대상으로, 산업화의 기록되지 않는 노동력으로, 또한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분열된 욕망의 대상으로 도구적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여성의 관점에서 근대의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 또문 대학 제1기의 작업은 그러므로 기존의 근대화 논의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유효한 방법이 되리라 기대한다.
김성례는 1999년에 일어난 충무공 묘소 훼손 사건과 1995년에 행해진 구총독부 건물 폭파 해체라는 두 가지 사건 속에서 식민지적 기억의 에로틱한 주술적 성격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사건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제 단맥설 등의 믿음은 일제 식민주의를 기억하는 하나의 문화적 각본이다. 식민주의에 대한 역사적 피해 의식이 풍수 지리설에 근거한 일제 단맥설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역사를 주술화하고 주술을 역사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의 주술화 혹은 주술의 역사...화는 산정에 쇠말뚝을 박는 풍수적 관행을 식민 지배 권력의 폭력적인 성행위에 비유하고 침략 당한 식민지 국토 및 민족 집단의 실체를 여성의 몸으로 비유함으로써 에로틱한 상징에 기대고 있다. "근대성 없는 근대화"를 추진한 한국의 식민적 근대성은 모든 권력의 근원으로 작동해 온 민족을 남근적 상징으로 기념비화했던 것이다.
김성례는 [식민주의 기억의 에로틱 정치학]에서 이렇듯 한국인들의 역사적 피해 의식이 풍수 사상과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밝히면서,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성이 어떻게 에로틱하게 상징화된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담론들을 모방하면서 식민주의 기억을 정치화하는가를 보여 준다.
김현미의 [근대의 기획, 젠더화된 "노동" 개념]은 1960년대 이후의 한국 근대화 기획을 중심으로 근대의 개념, 여성 노동의 문제, 그리고 성별(젠더) 이미지 등을 상호 중층적인 연결망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노동의 현실을 문화적 현상으로, 즉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주의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로 읽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영옥 [저]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시간강사. 독일 RWTH 아헨대학교에서 <타인의 텍스트를 통해 본 자화상: 발터 벤야민의 카프카 읽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문화이론을 연구하고 이미지 비평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몇 년 전부터 나 자신과 친구, 이웃의 노후준비로 노년과 노년문화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근대’ 여성이 가지 않은 길](공저), [밀양을 살다](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공존을 위한 다문화](공저),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공저), [국경을 넘는 아시아 여성들, 다문화사회를 만들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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