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발전』는 한국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에는 의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고려에서 의료제도는 어떻게 편성되었고 의학의 수준과 의술의 실상은 어떠하였으며, 더 깊이 파고든다면 고려에서 의료는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힌다.
누구나 질병에 걸리듯이 의료는 우리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한국 의료의 역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 등을 통해 조선시대 의료인과 의료 실태의 모습들은 대략적이나마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배경인 조선 중기 이전에 우리 의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일반인들은 물론 한국사 연구자들도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은 한국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에는 의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고려에서 의료제도는 어떻게 편성되었고 의학의 수준과 의술의 실상은 어떠하였으며, 더 깊이 파고든다면 고려에서 의료는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간행 의도이다.
*질병 없는 사회는 없다!
인간의 삶을 압축하는 표현으로 흔히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론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깃든 질병(疾病)은 삶의 순환을 이루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 질병은 삶의 본래적 조건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질병에 대응하려는 의료(醫療) 역시 삶의 필수적 활동이다. 질병이 일상이듯 의료도 일상이다.
그동안 한국사에서 의료사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였다. 생활사를 비롯한 미시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치유의 역사는 아직까지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질병이 인간의 삶과는 유리된 적이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의료사는 한국사를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고려시대의 의료는?
이 책에서는 고려시대 의료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의료기구, 대민정책, 의학교육, 약재유통, 향약의서 등으로 나누어 세밀히 살핀다. 고려시대 의료의 실체를 복원하기 위해 〈고려사(高麗史)〉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의 정사류(正史類)는 물론이려니와 개인 문집류(文集類), 각종 금석문(金石文)과 고문서(古文書), 삼국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의서류(醫書類)를 모두 연구 자료로 활용하였다. 또한 고려시대 의료의 실태를 반영하거나 추론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 경서(經書), 의서(醫書)들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보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고려시대 의료제도의 발전을 의료의 사회적 기능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서(醫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려시대 의술의 실제 양상과 ‘향약(鄕藥)’의 의료사적 의의를 논의하는 것이다.
이 연구의 논의를 장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II장에서는 고려시대 의료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그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살핀다. 먼저 고려에 선행하는 신라의 의료 상황을 서술한 후, 삼국의 의술 수준을 현존하는 고유의서의 처방을 통해 가늠하면서, 고대 동아시아의료의 형성 과정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고려 의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수·당·송의 의료제도를 개관함으로써 고려 의료제도와의 연계 부분을 미리 언급한다.
III장에서는 고려시대 의료제도의 성립과 지배체제의 특징을 다룬다. 우선 중앙의료제도의 등장은 광종대와 성종대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여기에서는 고려 전기 의료정책과 구료기구의 출현을 사회경제적 변동 및 종교사상적인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논의한다. 그리고 고려시대 의료제도를 전국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지방의료제도를 연대별로 살펴보고 내적인 편제원리를 탐구한다. 이 과정에서 약점사(藥店史)의 존재 양상과 역할을 규명하여 지방의 의료실태를 밝혔다. 고려 의료제도에 대한 이상의 이해를 기반으로 대민의료기구의 구현과 의료정책의 함의를 지배체제와 연관시켜 검토하였다.
IV장에...서는 의료제도의 전개와 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룬다. 먼저 의료관제의 변동과 의료인의 양성을 살폈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의료기구의 추이를 규명하고 의학교육 및 의업의 전개 과정을 밝힘으로써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를 논의한다. 다음으로 약재의 증가 양상과 공납을 통한 수취구조를 정리하였다. 고려에서 약재가 국가에 의해서만 유통되는 것은 아니었다. 약재 유통의 증가는 민간의료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민간 의료인들에 의한 치료의 대중화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송 의학의 유입 과정을 시기별로 충실히 추적하였다. 흔히 고려 의학은 송 의학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평가되는데, 그 영향력의 범위를 의료기구 전개를 비롯하여 의업 교과목, 간행 의서, 의관 교류를 통해 확인한다. 이 연구 전체로 보면 약재 생산 증가에 따른 공납제도의 운용과 민간의료의 확대, 그리고 송 의학의 유입에 대한 정리는 고려시대 ‘향약’의 형성 배경을 짚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V장에서는 의서에 대한 분석을 통해 ‘향약(鄕藥)’의 실상에 접근한다. 고려의 대표적인 향약의서인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 〈신집어의촬요방(新集御醫撮要方)〉,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비예백요방(備預百要方)〉을 대상으로 삼아 출간 경위를 비롯하여 판본, 저자, 체재, 처방, 약재, 활용 등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고려시대 의술(醫術)의 실체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향약에 대한 자각이 어떻게 향약론(鄕藥論)으로 집약되는지를 살피면서, 한국 의료사에서 차지하는 향약의 역사적 성격을 음미(吟味)한다. 향약을 정면에서 다루는 V장이 이 연구의 본령에 해당한다.
저자는 이상의 연구에서 고려시대에는 의료제도 정비를 비롯하여 약재 생산의 증가, 민간의료의 활성화, 송 의학의 유입 등으로 의료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주장한다. 고려에 들어 대민의료기구의 등장과 의서의 간행에 따라 의료 대상이 다수의 사회구성원으로 확대된 것은 적지 않은 의료사적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지배층 우선의 치료라거나 개경 중심의 의료망 구축을 감안하면 의료제도는 신분계급과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되었다. 뿐만 아니라 ‘향약(鄕藥)’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차별적인 요소들이 두드러졌다. 의학 지식의 공유 및 의술 혜택의 향유에서 향약의 운영은 고려의 사회질서를 반영하고 있었다. 의학 지식이나 사용 약재의 범위는 지배층과 일반 민들 사이에 큰 격차가 있었으며, 의서의 체재가 성인 남성 중심이어서 소아, 여성, 노인은 그다지 배려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에서 의료 자체는 보편성(普遍性)을 띠어갔지만, 의료제도의 편제와 운영은 신분계급·지역·성별·나이에 따라 계서적(階序的)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간 한국의료사를 정력적으로 연구해 온 몇 안되는 의학사 전공자로, 또 의약박물관 관장으로 우리 의료사의 체계화를 위해 활동해 온 저자의 학문적 내공이 실린 이 책을 통해 한국의학사 연구가 한걸음 더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I. 서론 II. 고려시대 의료제도의 배경
1. 신라의 의료 상황
1) 「신라촌락문서」와 신라인의 삶
2) 신라 중·하대의 질병 대응 양상
3) 당 의학의 유입
2. 삼국의 의술과 고대 동아시아의료
1) 삼국의 의서에 나타난 의술
2) 고대 동아시아의료의 구조
3. 중국 의료제도의 변천
1) 수·당의 의료제도
2) 송의 의료제도
III. 중앙집권적 의료제도의 성립
1. 중앙의료제도의 등장
1) 광종대 의료제도의 구축
2) 성종대 의료제도의 확대
2. 지방의료제도의 정비
1) 의관 파견과 약점사 배정
2) 의직의 세분화와 약점사로의 일원화
3. 대민의료정책과 지배체제
1) 대민의료기구의 운영
2) 의료의 사회적 기능과 대민지배체제
IV. 의료제도의 발전과 의료의 활성화
1. 의료관제의 변동과 의료인 육성
1) 의직 운용의 추이
2) 중앙의료기구의 운영
3) 의업의 전개와 의학교육
2. 의료 환경의 변화
1) 약재의 증가와 수취구조
2) 민간의 약재 유통과 치료의 대중화
3) 송 의학의 유입
V. ‘향약’의 성장과 의료사...적 의의
1. ‘향약’에 대한 자각
1) 〈제중입효방〉과 치료의 일상화
2) 〈신집어의촬요방〉과 송 의학의 수용
2. ‘향약론’의 전개
1) 〈향약구급방〉과 향약의 활용
2) 〈비예백요방〉과 향약론의 구조
VI. 결론
이경록 [저]
1968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서 [고려시대 의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부를 졸업한 후 지곡서당(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현재 한독의약박물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유물을 매개로 의료사와 전근대 문화를 알리고 있다. 몇 편의 한국 의료사 논문과 번역서들을 냈다. 고려와 조선 전기 의료사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 한국 의료의 발전 과정을 실증하는 한편 전근대사회에서 의료가 갖는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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