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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명작을 단순히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예순에 읽는 고전들은 저자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의 현실적인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서는 확실히 자신을 변화시켰다. 구덩이에 빠진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의 고통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었다. 지식들이 손을 맞잡았고 앎이 주는 기쁨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빛났다고 말한다. 『나의 사가 독서』는 저자 문갑순이 읽은 책 중에서 스무 권을 골라 후기를 적은 책이다. 저자가 엮은 이 스무 권의 책을 독자들이 따라 읽으면 독자들도 자기처럼 적지 않은 지식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사가독서제를 최초로 시행한 세종은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골라 특별휴가를 주어 마음껏 책을 읽고 학문연구에 전념케 했다. 저자는 대학에서 받은 안식년을 스스로에게 준 사가독서의 기회로 삼고, 일 년 동안 다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위대한 인간정신들의 향연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대학교수가 대학에서 얻은 1년의 안식년 동안 다른 일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그동안 수업과 실험과 논문작성에 매달려 제대로 독서할 여유를 내지 못했던 그로서는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독서를 하기로 작정한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고통이 있었다. 학교에서 작은 벤처 기업을 시작하였는데, 시작하자마자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돈 때문에 마음이 새카맣게 탔고, 자신을 떠나가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신기루 같은 성공을 좇다가 깊은 좌절감에 빠진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책을 펼쳐들었고, 책 속에서 고뇌하는 위대한 인간 정신들을 만났다. 그리하여 다시 만난 예수, 공자, 백범 김구, 간디, 크리슈나무르티 등 고양된 정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깊은 감동으로 읽었다. 세르반테스, 빅토르 위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위대한 작가들의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위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 너무 고마워서 빨간 밑줄을 수없이 그으며 책 속에 빨려들어 갔다. 인류의 문명사를 한 권에 모두 담다 어릴 때 읽었던 명작을 단순히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예순에 읽는 고전들은 그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현실적인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서는 확실히 자신을 변화시켰다. 구덩이에 빠진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의 고통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었다. 지식들이 손을 맞잡았고 앎이 주는 기쁨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빛났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처럼 구덩이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회복의 시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고 말한다. 동료들이 독서 리스트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는 독서 리스트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느낀 소감까지 함께 전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스무 권을 골라 후기를 적었다. 선정한 책들을 쭉 늘여놓고 보니 인류의 기나긴 역사성과 문명사가 모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스무 권의 책을 독자들이 따라 읽으면 독자들도 자기처럼 적지 않은 지식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판 하버드 인문학 서재 저자는 진작부터 《하버드 인문학 서재》에 버금가는 독서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버드 리스트에는 구할 수도 없고, 구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화코드와 맞지 않는 책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적합한 한국판 인문학 서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목표를 고전 문학작품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명작들을 골라 현재의 한국인에게 맞는 ‘사가독서’(賜暇讀書)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저자는 특히 고전 속에 함유된 역사성과 문명의 발전사에 독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목록을 고르고 독서안내를 썼다고 말한다. 《시작하는 글》 책 속에서 만난 위대한 인간 정신들 마침 학교에서 1년 기간의 안식년을 얻었다. 안식년은 본래 유대인의 안식일 제도에서 확장되어 나...온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이름 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다. 사가독서제를 최초로 시행한 세종은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골라 특별휴가를 주어 마음껏 책을 읽고 학문연구에 전념케 했다. 유독 세종 치세에 학문과 예술이 크게 융성했던 근저에는 사가독서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안식년을 스스로에게 준 사가독서의 기회로 삼기로 하였다. 누구나 꿈꾸는 일이겠지만 1년간의 느긋한 책읽기는 나의 로망이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그동안 수업과 실험과 논문작성에 매달려 제대로 독서할 여유를 내지 못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른 일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독서를 하기로 작정한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고통이 있었다. 학교에서 작은 벤처 기업을 시작하였는데, 시작하자마자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돈 때문에 마음이 새카맣게 탔고, 나를 떠나가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신기루 같은 성공을 좇다가 깊은 좌절감에 빠진 나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책 속에서 길을 찾는다고 하면 진부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책을 펼쳐들었고, 책 속에서 고뇌하는 위대한 인간 정신들을 만났다. 그리하여 다시 만난 예수, 공자, 백범 김구, 간디, 크리슈나무르티 등 고양된 정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깊은 감동으로 읽었다. 세르반테스, 빅토르 위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위대한 작가들의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위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빨간 밑줄을 수없이 그으며 책 속에 빨려들어 갔다. 어릴 때 읽었던 명작을 단순히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예순에 읽는 고전들은 나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의 현실적인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엄청 달라진 나를 느낀다. 독서는 확실히 나를 변화시켰다. 구덩이에 빠진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인생의 고통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었다. 나의 시냅스들은 활기차게 다시 연결되면서 지식들이 손을 맞잡았고 앎이 주는 기쁨 때문에 내 얼굴은 빛났다. 나처럼 구덩이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회복의 시간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감히 내가 읽은 책들을 여러분에게 권한다. 고전을 뜻하는 클래식이란 말은 위기에 빠진 인간정신을 구해주는 책이나 예술작품을 일컫는다고 한다. 실제로 고전작품들은 위기에 빠진 나를 건져 올려 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건져 올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료들이 나의 독서 리스트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의 독서 리스트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느낀 소감까지 함께 전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스무 권을 골라 여기 후기를 적었다. 선정한 책들을 쭉 늘여놓고 보니 인류의 기나긴 역사성과 문명사가 거기 있었다. 이 스무 권의 책을 독자들이 따라 읽으면 독자들도 나처럼 적지 않은 지식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하버드 인문학 서재》에 버금가는 독서 리스트를 만들고 싶었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는 20세기 초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한 찰스 엘리엇(Charles W. Eliot)이 만든 독서 리스트를 말한다. 당시 대학교육을 받은 자는 성인 인구의 3%에 불과할 때였다. 그는 자신이 권장한 51권의 책을 읽으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졸업한 것과 동일한 교양을 쌓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엘리엇은 이를 ‘5피트 책꽂이’라고 명명하였고, 이후 ‘5피트 책꽂이’에 포함된 책들은 미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솔직히 나도 《하버드 인문학 서재》에 소개된 51권의 책을 우선 읽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할 수도 없고, 구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화 코드와 맞지 않는 책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적합한 ‘5피트 책꽂이’리스트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엇은 책 서문에서 “최초의 역사 시기부터 19세기에 근접한 시기까지 관찰하고 기록하고 발명하고 상상하는 인간의 진보에 대해 온당한 관점을 얻을 수 있게 읽기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쓰고 있다. 나는 이 목표를 고전 문학작품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명작들을 골라 현재의 한국인에게 맞는 ‘사가독서’(賜暇讀書)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책을 쓰면서 특히 고전 속에 함유된 역사성과 문명의 발전사에 독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뜻은 거창하였지만 나의 자질이 너무 척박하여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문학적 접근이 내게 너무 벅찼다. 이 책을 쓰느라고 끙끙거리다 놓친 많은 일들과 소홀하게 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래도 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좋은 책을 끊임없이 공급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1. 세상의 시작_ 《성경》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고전은 《성경》이다. 그래서 나의 사가독서(賜暇讀書) 첫 번째 책을 《성경》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성경》은 천지창조에서부터 예수 사후 시대까지 장구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성경의 기초 위에서 서구 사회의 법률, 윤리, 사회제도가 성립되었고, 성경은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으며 인류의 진보와 역사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특정 종교의 것으로 치부하여 펼쳐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양인으로서 손실이다. 성경을 읽지 않고 인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고, 성경을 통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성경을 모르고서는 인류의 공통 유산인 예술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숨겨진 보물과 같은 존재이다. 성경의 발견 《성경》을 크게 둘로 구분하자면,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쓰인 것을 구약(히브리 성서)이라고 하고, 예수가 탄생한 이후에 쓰인 것을 신약(그리스도 성서)이라고 한다.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은 대개 9~10세기경 사본들이었다. 성경 연구가들은 더 오래된 성서 사본을 찾아내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세기 독일인 성서 수집가 콘스탄틴 폰 티셴도르프(Konstantin von Tischendorf)가 있었다. 그는 원전의 언어로 신약성서를 재구성하려는 열망에 빠져 있었다. 원전을 찾기 위해 여러 나라의 도서관과 수도원을 찾아 고대의 두루마리들을 헤집고 다녔다. 1844년 티셴도르프는 마침내 이집트 시나이산 기슭에 위치한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광주리에 담긴 구약성경 양피지 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어 성경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구약으로서 4세기경에 필사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를 ‘시나이사본’이라고 한다. 티셴도르프의 집념이 시나이사본을 발견하였다면 이보다 훨씬 오래된 사본인 ‘사해사본’은 1947년 베두인 목동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두루마리 성경들은 AD 70년경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쿰란 지역에 사는 에세네파 유대인들이 동굴 속 항아리에 숨긴 것으로 전해진다. 사해사본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사해사본에서 흥미로운 것은 완벽히 보존되어 있는 <이사야서>이다. 이렇게 전해 내려오던 구약성경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언어로 번역될 필요성이 차례로 생기게 되었다. 우선 가나안 지역이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하에 들어가고 히브리어가 사어가 되자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시급해졌다. 성서의 가장 중요한 초기 역본은 BC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다. 25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특히 그리스의 모든 고전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당대의 자랑거리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히브리 성경에 관심을 두었고, 이를 그리스어로 옮겨 왕실 도서관에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왕실측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믿을만한 히브리어 사본과 실력 있는 언어학자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뽑아 72명을 보냈고, 이들의 손에 의해 그리스어 역본이 탄생하였으니 이것이 《70인역(譯)》 성서이다. 이 그리스어 번역본은 지중해 전역과 그 외의 지역에서 읽혔는데, 예수 당시에 읽힌 구약성경도 이 《70인역》이었다. 그 후 로마제국이 가나안 지역을 지배하면서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작업을 행한 사람이 히에로니무스였고, 이 라틴어 번역본을 《불가타 성경》이라고 한다. 4세기 때였다. 라틴어 불가타(vulgata)는 ‘일반적인’ ‘대중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로, 불가타 성경은 민중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라틴어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불가타 성경》은 7세기 영국 북부 수도원에서 신학자인 수도사 비드(Venerable Bede)에 의해 영어로 번역된다. 그러면 구약성경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권수와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까. 먼저 AD 90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만든 《히브리 성서》가 있다.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AD 70년) 유대인들이 강제로 흩어지게 되자(디아스포라) 유대교 지도자들은 유대교 재건에 뜻을 두고 구약성서를 재정리하였다. 이들의 손에 구약성서의 내용이 66권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널리 사용했던 유대교 경전 《타나크》의 그리스어 역본에는 《히브리 성서》에 없는 몇 권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시나이 사본에도 똑같이 수록되어 있었다. 고대의 가장 권위 있는 역본이라는 불가타 성경을 번역할 때 히에로니무스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구약성서에 실제로는 히브리 성서에 없는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외경’(外經, Apocrypha)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로 번역에 포함시켰다. 그 후 불가타 성경은 공식적인 성서로 인정되었다. 구약성경에서 히브리 민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경전은 《오경》이다. 히브리어로 ‘토라’ (지시, 지침의 의미), 그리스어로 ‘오경’(다섯 개의 두루마리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들은 구약성경의 첫머리에 있는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다섯 권을 일컫는다. ‘오경’이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체험한 하느님과의 만남과 가르침이 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경은 유대인의 종교 규율뿐만 아니라 식생활과 의학, 개인위생, 공중위생 등 생활 전반에 대한 규정과 지침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경은 유대인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여기 포함된 십계명은 유대 율법의 핵심이다. 십계명에 함유된 덕목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오늘날 근대 법률체계의 모태가 되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장기간 이산의 아픔을 겪으며 전 세계로 흩어졌지만, 이 율법에 의해 민족성을 일치시키고 자신들의 고유한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바빌론 유수_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구원 구약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해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역사적으로 모세가 이끈 애급 탈출사건이 BC 1500년경에 일어났고, 그 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 솔로몬 시대에 가장 융성한 국가를 이루었다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된다. 약 200여 년간 두 나라는 역사의 부침을 거치다가 BC 722년, 아시리아의 살만 에세르 5세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한다. 그로부터 130년 뒤인 BC 586년, 남유다도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왕에 의해 멸망된다. 잔인한 통치로 악명이 높았던 아시리아는 특히 각 민족의 정체성을 소멸시켜 반란의 근원을 도려내는 강압정책을 썼다. 그런 정책 때문에 사마리아에 살던 북이스라엘인들은 다른 정복 지역 주민들과 피가 섞이게 되고, 그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예수 생존 당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 민족의 혐오감이 심했음이 성경에도 나타나 있다. 예수는 이 편견을 깨기 위해 말씀 중에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를 들고(루카 10:30-37),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다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영원한 생수 이야기를 나눈다(요한 4:7-30).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던 남유다 사람들도 얼마 후 포로로 바빌론에 끌려간다. 포도 농사를 지을 최소한의 인력만 예루살렘에 남기고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붙잡혀갔다고 하니, 유대 민족의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빌론 유수는 유대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때 유대 민족 사이에는 지도자, 특히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대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하느님의 백성인 유대 민족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는가 하는 통렬한 반성 속에서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하였다. 고대 근동을 손아귀에 넣은 바빌론제국도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죽자 쇠퇴의 길을 걷고, 얼마 못 가 페르시아에 망하고 만다. 기원전 550여 년을 전후하여 페르시아제국의 황제 키루스(고레스)가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준다. 이후 유대 지도자와 사제들이 힘을 모아 유대 민족과 유대교를 재건하게 된다. 이 시기에 구약성서 대부분이 정리되고 재편집되어 오늘날과 같은 구약성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오경’도 이 시기에 최종 마무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지창조와 구약성경의 장엄한 세계 <창세기>에는 인류 최초의 낙원인 에덴동산에 대한 설명이 있다. 에덴동산은 비손강과 기혼강, 그리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갈라지는 곳에 존재했던 것으로 묘사된다. 현재 비손강과 기혼강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나는 곳은 페르시아만 부근 고대 바빌로니아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로 ‘강 사이’란 뜻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 지역에 존재하였던 수메르,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는 성경의 천지창조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여 이 지역의 고대문화가 성경의 첫 이야기, 즉 천지창조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티그리스강 북부에는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고 기록된 아라랏산이 해발 5000미터 높이로 솟아 있다. 봄이 되면 설산의 눈이 녹아 두 강은 자주 범람하였는데, 이것이 노아의 방주사건으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세기>에는 히브리 민족의 선조로 기록된 아브라함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아브라함이“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기 12:1)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성경의 무대는 가나안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아브라함은 칼데아의 우르 지역에서 출발하여 티그리스강 상류인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유대 민족과 이슬람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은 흉년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는 뒤에 <탈출기> 이야기로 이어진다. <창세기>와 <탈출기>를 이어주는 인물은 야곱이다. 야곱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그 생애가 가장 완벽하게 기술된 사람이고,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야곱은 어릴 때부터 질투심이 많고 약삭빨랐다. 쌍둥이 형 에사우의 장자 자리를 못내 탐내던 야곱은 사냥에서 돌아온 배고픈 형에게 콩죽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장자 자리를 요구하고, 나중에는 임종을 맞이한 아버지 이사악을 속여 장자 축복까지 받아낸다. 야곱은 형 에사우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간다. 이후 외삼촌의 두 딸과 몸종들로부터 12명의 아들들을 두게 되고, 이로부터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시작된다. 야곱은 외삼촌의 가축을 돌보면서 꾀를 내어 자신의 가축 떼를 점차 늘려 나간다. 외삼촌과의 갈등을 피해 가나안으로 도망가던 야곱은 형 에사우의 진노를 막을 수 있는 온갖 술수를 생각해 내지만, 결국 하느님 앞에 회개하자 하느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려준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인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야곱이 사랑하여 결혼하고자 했던 여인은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이었다. 라헬은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다. 야곱은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과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했다. 그러나 나머지 열 아들들이 요셉을 질투하여 그를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넘긴다. 요셉은 노예와 죄수생활을 거쳐 이집트의 재상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의 선정으로 이집트는 7년 흉년을 무사히 넘기면서 고대 근동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된다. 이를 계기로 히브리인들이 대거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고, 이후 성경 이야기의 중심은 고대 사회의 또 다른 주요 세력인 이집트로 이동하게 된다. 이집트의 선진 문화와 신관(神觀), 문학, 풍습 등은 구약성경 특히 <토라>에서 히브리 민족의 규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이집트인들은 점점 증가하는 외국인인 히브리인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각종 노역에 동원해 괴롭힌다. 히브리인들은 괴로움이 극에 달하자 하느님께 부르짖는다. 그 부르짖음을 들은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히브리인들을 애급으로부터 탈출시키게 된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 <탈출기>_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탈출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탈출기>에 포함된 이야기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려는 의지와 이를 이루기 위한 기적들로 가득 차 있다. 물에서 건져져 이집트 왕자로 자란 탁월한 지도자 모세 이야기와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집트 탈출사건,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는 기적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고,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사건이 있으며, 호렙의 바위를 쳐서 마실 물이 쏟아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약속한‘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아가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목마르고 배고팠으며, 사방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수많은 적들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마침내 출애급을 통하여 가나안으로 돌아가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무대는 다시 가나안이 된다. 사막과 광야와 돌산으로 이루어진 이 땅이 어째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었는지 지금의 지리학적 소견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3~4천 년 전의 가나안을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리스도 이후 첫 세기의 이곳 모습을 ‘농사를 지을 만큼 습기가 있고 매우 아름답다. 나무가 많으며 가을이 되면 들판과 경작지는 열매로 가득 차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지금은 ‘중동의 화약고’로 인류 평화를 위협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오랫동안 인류 문화의 중요한 교두보였다. 가나안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중간 연결지로서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고대에 일어난 제국들을 생각해 보면 그 지역적 중요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고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뿐만 아니라 아시리아제국, 바빌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오스만 투르크제국 등 주요 강대국이 연이어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영어의 뿌리인 알파벳 글자를 만들고 고대 근동에서 무역으로 최고의 부를 축적했던 페니키아인의 도시 티루스(두로)와 시돈이 이곳에 있었고, 요한 묵시록에서 최후의 전쟁으로 일컫는 므깃도(그리스어로 아마겟돈)도 이 지역에 있었다. 이만하면 고대 가나안 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탄생과 신약성경의 시작 <탈출기>에서 여러 차례 만나게 되지만 구약성경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하느님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존재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행복이란 하느님을 알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류구원을 위해 외아들 예수를 인간 세상으로 보낸다. 여기서부터 신약성경의 세계가 시작된다. 예수 탄생 이야기는 성경에 기이하고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먼저 마리아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이지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구세주를 잉태하게 될 것임을 알리자 당황해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구세주를 낳은 마리아의 순명은 그 후 후손들로부터 최고의 흠숭을 받게 된다. 마리아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던 중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는다. 하늘에 별이 가득한 밤이었다. 동방박사들이 반짝이는 별의 인도를 받아 막 태어난 예수를 경배하러 온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가지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인류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날을 노래하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예수의 삶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지대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목자 잃은 양 같은 인류의 모습에 깊은 연민과 사랑을 나타내었고, 열렬히 하늘나라를 알리고 인류 구원을 설파하였다. 예수의 능력은 수많은 기적으로 나타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1만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이 나타났을 때 방황하던 유대 민족은 그를 진정으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예수가 설파한 왕국과 민중이 추대하고자 했던 왕은 서로 차원이 달랐다. 예수는 하늘나라를 이야기하고 민중은 빵을 생각했다. 결국 예수의 인기를 시기한 유대 지도자들, 특히 대제사장과 사제들이 예수를 모함하여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빌라도는 예수의 처형에 끼어들어 자기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결연히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과 후손들이 지겠다고 빌라도 앞에서 외쳤다(마태오 27:25). 그 죄에 대한 벌일까. 그 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도로부터 핍박 받고, 나치에 의해 6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 그리스도교는 세상의 많은 종교들처럼 사라져 버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망과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모여 있는 제자들이 놀라운 성령 체험을 하게 되고, 이는 그리스도교의 불길을 다시 살리는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성령 체험은 십자가상에서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절대적인 증거로 간주되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는 메시아로서 그리스도의 위상이 확고해졌다. 예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사도 바오로의 열성적인 전도활동에 의해 예수의 언행과 사상이 서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전파되었고, 결국에는 로마에까지 기독교 사상이 전파되기에 이른다. 당시 유대 지역을 지배하던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불순한 세력으로 보고 이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들은 가나안 지역을 떠나 이탈리아 반도, 터키, 그리스, 유럽, 이집트, 심지어 아시아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땅 밑으로 스며들고 사막 속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사자 굴에 던져지고 십자가에서 불태워지는 온갖 압박이 가해졌지만 그리스도교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순교자들의 피를 먹고 활짝 꽃을 피우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교가 역사 전면에 나타나게 되면서 인류 역사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인류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그 전후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BC는 ‘before Christ’로서 그리스도 이전을 나타내고, AD는 라틴어 Anno Domini로서 Anno는 ‘in the year’를, Domini는 ‘of the Lord’를 뜻하는 말로서 그리스도 이후를 나타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부흥은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부패의 씨앗이 된다. 세력이 커지면서 세속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된 교회는 급속히 부패되기 시작하였고,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에 휘말렸다. 11~12세기에 성지를 쟁탈하기 위해 벌인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인류 문명사의 수많은 우여곡절이 그리스도교로부터 파생되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 구교와 신교의 갈등 등 종교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봉합될 길이 없어 보인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가운데 두고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오 13:44) 위는 예수가 하늘나라를 설명할 때 사용한 비유이다. 하늘나라는 전 재산을 털어 사야할 숨겨진 보화요, 최고 품질의 진주라고 말한다. 나는‘하늘나라’에‘성경’을 대치하고 싶다. 한마디로 성경은 숨겨진 보화요, 최상급의 진주이다. 삼촌에게 쫓기며 형 에사우를 만나야 하는 절박한 순간에 하느님을 외쳐 부른 야곱처럼,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괴로움이 극에 달한 히브리인들이 하느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진짜 위기에 빠져 어디에서도 출구를 발견할 수 없을 때, 하느님을 외쳐 부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절망에 빠진 자, 홀로 외로움에 처한 자, 그리하여 하느님께로 향하는 자는 진정 하느님의 손을 붙잡고 절망에서 벗어나올 수 있다고 성경은 알려준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한다. 참고도서 1. 《성경》,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2005 2. 《성경의 탄생》, 존 드래인 지음, 서희연 옮김, 옥당, 2011 3. 《성경과 오대제국》, 조병호 지음, 통독원, 2011 4. 《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2008 5. 《문명이야기》, 동양문명 1-1, 윌 듀런트 지음, 왕수민·한상석 옮김, 민음사, 2011 2. 그리스 신화의 탄생_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서구 문명의 두 기둥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정신이다. 앞에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교 정신이 어떻게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서구 문명의 또 하나의 원류인 그리스 문명의 뿌리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가독서의 두 번째 자리에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두었다. 그리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해양에서 발흥한 해양 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의 시작은 에게해의 섬 크레타에 그 기원을 둔다. 크레타 섬에는 지중해 항해가 시작된 BC 4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명은 전설적인 왕 미노스 치세 때 최고의 번영을 누린 것으로 알려져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BC 1900년경, 이곳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으로 유명한 미노스궁이 세워졌는데, 이 궁전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라비린토스 미로와 일치한다고 한다. 1894년, 영국인 고고학자 아더 에반스(Arthur J. Evans)가 미노스 왕국의 크노소스 궁전 터를 발굴함으로써 크레타 문명의 존재는 역사적 사실로 밝혀졌다. 당시 미노아의 배들은 지중해 곳곳을 항해하면서 값비싸게 통용되던 청동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구리와 주석을 구하였고, 상당한 부를 향유하면서 수준 높은 문화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찬란했던 미노아 문명의 몰락은 BC 1500년경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인 아카이아인이 남하해 오면서 시작된다. 당시 흑해 북부 스텝지대에 살던 이 유목민들은 위력적인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정복자들은 크레타 문명을 파괴하고, 군사적으로 막강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명 양식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것이 미케네 문명이다. 미케네 문명은 BC 1500년경부터 특색 있는 청동기 문화를 이룩했고, BC 1200년 사이에 꽃을 피우게 된다. 청동제 무기는 귀하기도 했지만 무거웠기 때문에 전시에는 체격이 장대하고 무기 사용이 능숙한 영웅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두각을 드러낸 인물들은 그리스 역사에서 영웅으로 자리매김하였을 것이다. BC 1200년경이 되자 이번에는 도리아인이라는 새로운 침입자가 북방에서 내려와 미케네 세력을 유린한다. 도리아인들은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철은 청동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청동기 중심인 미케네 문명은 철기 문명으로 대체된다. BC 8세기가 되면 그리스 세계는 확실한 철기시대로 들어선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 전쟁은 BC 12세기에 미케네인들이 헬레스폰토스 해협 입구에 있는 트로이를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실제로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시작이 지배적이다. 이 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북방계 전사인 아카이아인들은 청동제 무기로 무장한 채 끊임없이 해안지방을 약탈하였는데, 트로이 공격도 이러한 일련의 약탈행위의 연속선상에서 보는 관점과 슐리만이 발굴한 바와 같이 당시 상당한 부를 누렸던 트로이의 전략적 위치를 탐한 때문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어쨌든 10년을 끈 이 전쟁은 고대 그리스 역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었고, 그에 따른 많은 이야기들이 신화와 전설이 되어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다 BC 8세기에 이르러 장대한 서사시로 기록되게 되니 이것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였다. 트로이 전쟁이 낳은 대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모두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그리스 신화에서 온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라는 전쟁 영웅이 고국의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트로이 시는 현재 터키 아나톨리아 서부 끝 지중해를 마주한 곳에 위치해 있다. 에게해와 흑해를 잇는 헬레스폰토스 해협(현재의 다르다넬스 해협)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릴 지역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트로이가 얼마나 번성을 누렸는지는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 히사를리크(Hisarlik) 언덕에서 ‘프리아모스의 보물’ 로 지칭한 상자를 발굴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이 드러났다. 슐리만 이전까지 트로이는 전설 속의 도시,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가공의 도시로 인식되어 있었다. 트로이의 발굴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굴사건으로 기록된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읊은 시인은 호메로스로 알려져 있으나 호메로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실제인물이었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전해지는 말처럼 그가 장님이었는지 확실치 않다. 단지 BC 850~700년 어느 기간에 소아시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오디세이아》에서 알키노스왕이 오디세우스를 환대하는 잔치를 베풀 때‘데모도코스’라는 음유시인이 등장해 트로이 전쟁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나온다. 그의 노래를 듣고 오디세우스는 고국에 가지 못하고 방랑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감하여 눈물을 흘리고, 왕 앞에서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오디세이아》의 주요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전쟁의 원인은 세 여신의 질투에서 비롯되었다. 올림포스 산에서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난 여신이 있었으니 바로 ‘언쟁과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였다. 에리스는 무엇이 이 세상을 분쟁 속으로 몰아넣을지를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의 질투심이었다.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라며 황금사과 한 알을 던지고 떠났다. 이때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 여신이 있었으니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 그리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세 여신은 서로 사과를 차지하겠다고 다투다가 그 심판을 애꿎은 목동 파리스에게 맡긴다. 파리스는 사실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었지만,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꾼 불길한 꿈 때문에 이다산에 버려졌는데 신화에 주로 이용되는 플롯대로 양치기가 이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키웠다.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각 매혹적인 제안을 하지만 젊은 파리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의에 혹해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바친다.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다.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유혹해 낸 파리스는 트로이로 도망가고,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왕은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선다. 그렇게 해서 트로이와 스파르타의 10년 전쟁이 시작된다. -이윤기,《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분노를 노래해 다오, 시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저주스러운 그 분노로 해서,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아카이아 편에게 끼쳐 주었고, 또한 수많은 위대한 용사들의 넋을 저승으로 보내게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들개나 날짐승의 먹이가 되었도다.” 대서사시 《일리아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심인물은 그리스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이고, 사건의 시작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때문임을 알린다.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스틱스 강물에 담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마니 이것이 ‘아킬레우스의 건’이다. 그리스군은 10년에 걸쳐 트로이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그리스군의 두 영웅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그 사연은 이렇다. 즉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얻은 크리세이스라는 여인이 있었다. 크리세이스는 아폴론 신을 섬기는 사제 크리세스의 딸이었던 만큼 아폴론의 저주로 그리스군에 역병이 만연하게 되고, 그리스군은 큰 위기에 빠진다. 아가멤논은 하는 수 없이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고, 대신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간다. 이 때문에 그리스군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끼게 된다. 그는 출정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기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에게 그리스군이 패배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테티스의 탄원을 들은 제우스는 전황을 그리스군에게 불리하도록 만든다. 이리하여 그리스군은 해안까지 밀리고 헬로스폰토스 해안에 놓여 있던 아카이아군의 배들은 불탄다. 그리스군의 패전이 눈앞에 닥치자 아군의 참상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출전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용감하게 싸웠으나 트로이 왕자 헥토르에게 죽게 된다. 이렇게 되자 복수심에 불탄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게 되고, 헥토르와 싸워서 그를 쓰러뜨린다. 헥토르는 파리스의 형이자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장남이었다. 아킬레우스는 그래도 분노가 진정되지 않아서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메어 끌고 다니는데, 트로이 왕은 이를 보고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마침내 프리아모스왕은 밤중에 아킬레우스의 진영을 찾아가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한다. 늙은 왕의 애원에 감동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유해를 돌려준다. 프리아모스가 슬픔 속에서 아들의 장사를 치르는 것으로 《일리아드》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뒤 트로이 전쟁의 종말과 전쟁영웅들의 운명에 대해 알려면 《오디세이아》를 비롯한 그 이후의 작품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트로이 함락 이야기는 그리스군이 후퇴하는 척하면서 두고 간 목마 때문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인간과 신들이 뒤엉켜 만드는 기이한 이야기들 이렇게 《일리어드》에는 인간사의 온갖 사건들이 점철되어 펼쳐진다. 아니 인간사만이 아니라 인간과 신이 뒤엉겨 만들어낸 기이한 이야기들이 그득하다. 먼저 인간들의 면면을 보자.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기 위하여 조국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 철없는 왕자 파리스가 있다. 파리스로 인해 초래된 불행한 운명 앞에서 처자식을 지키기 위한 트로이 남자들의 처절한 사투가 있다. 여기에는 국왕 프리아모스를 비롯해 그 아들인 헥토르, 아이네이아스, 데이포보스, 글라우코스, 사르페돈 등의 장수들이 있다. 그리스군에는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그리스 최고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가 있고, 맹장 아이아스, 계략에 능한 오디세우스, 고문 격인 네스토르 등이 있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여자 포로를 두고 갈등을 겪고, 헬레네 앞에서 메넬라오스와 파리스가 목숨을 건 단독 대결을 벌인다. 거기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가지고 벌이는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아가멤논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귀환하지만 아내의 정부에게 어이없이 살해당하고 만다. 영웅들의 일대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된다.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데는 올림포스의 신들도 일조한다. 자존심 상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군 편을 들고, 황금사과를 거머쥔 아프로디테는 트로이군 편을 들었다. 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을 들었으며, 아폴론은 트로이 편이었다. 제우스는 심정적으로는 트로이 편이었으나 헤라를 의식해서 중립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영웅들과 신들이 뒤엉겨 만들어 내는 이 이야기는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그리스인들의 신화를 더욱 정교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만들어준 것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라고 주장한 근거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리어드》가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했다는 사실 외에, 이 서사시가 지닌 최고의 가치를 들라고 하면 자신이 직면한 운명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 서사시 속의 영웅들은 그리스군이든 트로이군이든 용감하게 전쟁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일리어드》이야기는 처음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때문에 야기된 도입부를 제외하고는 끝까지 영웅들의 전투장면으로 이어진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쟁장면은 대형 스크린으로 3D 영화를 관람하듯 박진감이 넘친다. 《일리어드》에 등장하는 장면 묘사는 탁월하고 사실적이다. “그가 땅 위에 쿵하고 나가 넘어질 때 그의 갑옷이 뗑그렁 소리를 내었다. ” “뾰족한 창의 끝이 뼈를 뚫고 방광을 뚫으니 죽음이 그를 덮쳐서 외마다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목뒤 힘줄을 창으로 치자 창은 이빨 중간의 혀 밑을 뚫었다. 그는 싸늘한 청동창의 끝을 입에 문채 죽어 먼지 속으로 쓰러졌다.”와 같은 묘사는 전쟁의 참화가 고스란히 전해져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호메로스의 필치는 인간 이야기를 할 때 더욱 빛난다. 헥토르의 아내는 전장에 나가는 남편을 만류하며 이렇게 울부짖는다.“헥토르시여, 그대는 내 아버지요, 어머니요, 오빠요, 사랑하는 남편, 저에게 자비를 내리시어 이 성벽에 머무셔서 아들을 애비 없는 자식으로, 부인을 과부로 만들지 마십시오.”그러자 헥토르는 이렇게 말하며 전장으로 나간다.“나는 아들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것이요, 프리암 왕, 그 많은 내 형제, 많은 용사들에 대해서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요. 내 슬픔은 오직 당신에 대한 것뿐이오.”35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독자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오디세이아》_ 전쟁 영웅의 가혹한 운명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겪는 10년간의 기이한 모험담을 담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일리아드》에서 용맹과 지혜로 그리스군의 승리를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군으로 소개된다. 분노로 틀어진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러 찾아가고, 목마로 트로이 성을 열 계책을 내고, 본인이 직접 목마 속에 숨어들어가 트로이 성을 함락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운명은 주인공인 그에게 너무도 가혹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리스군의 영웅들은 저마다 전리품을 잔뜩 싣고 고향으로 돌아오건만, 이타카 섬의 왕인 오디세우스만은 지중해 바다 위를 한없이 떠돌면서 가족과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향 이타카에는 늙은 아버지와 젊은 아내, 어린 자식이 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린다.《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사랑하는 가족과 고국 품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일리아드》와 마찬가지로 총 2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편에서 4편까지는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의 풍경을 묘사한다. 주인 없는 이타카에는 아름다운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그를 기다린다. 그의 왕국을 노린 각지의 영주, 귀족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구혼 소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왕궁에서 멋대로 살찐 소를 잡아먹고 시녀들을 농락하면서 자기들 중에서 결혼 상대자를 고르라고 페넬로페를 위협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악한 구혼자 무리들을 쫓아내기에는 너무나 어리고 힘이 약했다. 페넬로페는 그들의 요구를 모면하기 위해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야하니 그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는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이면 다시 푸는 생활을 3년이나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혼자 측과 내통한 시녀에 의해 왕비의 행적이 들통나 더 이상 수의를 짤 수도 없게 된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 텔레마코스는 이 모든 재앙을 이기는 방안은 아버지를 찾아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오디세우스를 찾아 필로스와 스파르타로 길을 나선다. 스파르타로 간 텔레마코스는 라케다이몬 궁에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로부터 아버지가 오기기아 섬에 잡혀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5편에서 비로소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등장한다. 그는 님프 칼립소에게 붙잡혀 절해의 고도에서 7년을 지내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전령이 되어 칼립소에게 나타나 오디세우스를 풀어주라는 신들의 결정을 전한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여 눈물짓던 오디세우스는 불사의 영생을 약속하며 영원히 자기와 살자며 유혹하는 님프 칼립소의 요청을 물리치고 고향으로 가기 위해 뗏목에 몸을 싣는다. 이 항해에서 다시 포세이돈이 일으키는 폭풍으로 뗏목이 난파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천행으로 목숨을 건져 파이아키아 섬에 상륙한다. 그곳에서 오디세우스는 공주 나우시카의 도움으로 알키누스왕을 만나게 되고 알키누스왕은 오디세우스를 접대하는 연회를 연다. 잔치 중에 데모도코스라는 음유시인이 트로이 전쟁에 관한 노래를 부르자, 오디세우스는 옛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왕 앞에서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오디세우스의 10년간의 모험담은 비록 9편에서 12편까지의 기술에 국한되어 있지만, 거친 바다와 섬들을 떠돌고 지하 세계까지 내려갔다온 그의 모험은 하도 기묘하고 처절하여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내용을 구성한다. 그가 겪은 모험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고난은 키코네스에서 벌어진다. 그들은 더 많은 전리품을 얻고자 일리움의 동맹국인 키코네스를 공격하였다가 오히려 많은 동료들을 잃고 만다. 태풍에 표류하던 그들은 연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황홀경에 빠져 사는 신비한 종족과 조우하게 되지만 부하들이 그곳에 정착하려고 할 것을 우려한 오디세우스는 서둘러 그 신비한 섬을 떠난다. 다음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무시무시한 거인족 키클로프스족이 사는 땅이었다. 그들은 키클로프스족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폴리페모스가 사는 동굴에 갇히게 되고, 부하들은 차례로 거인 식인종의 먹잇감으로 희생된다.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해 거인의 눈을 찌르고 탈출한다. 이 키클로프스족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귀국을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 다음 행선지는 아이올리아 섬이었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바람의 진로를 넣은 소가죽 부대를 주면서 고향으로 가는 항해를 도와주지만 그 주머니에 황금이 들었다고 오해한 그의 동료들이 소가죽 주머니를 몰래 여는 바람에 배는 광풍에 휩싸여 무서운 식인 거인족이 사는 라모스 섬에 도착하고 만다. 이곳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배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오디세우스의 배 한척만 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동료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항해를 계속한 오디세우스의 배는 아이아이아 섬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태양의 딸 키르케를 만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여 영원히 함께 살기를 희망하지만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오디세우스의 열망을 꺾지 못한다. 그러자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페르세포네와 하이데스의 궁으로 가서 현자 티레시아스의 영혼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충고를 받으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간 오디세우스는 죽은 전쟁 영웅들을 만나 후일담을 듣는다.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안틸로코스, 아이아스 등 《일리아드》를 뜨겁게 달군 명장들이 다시 등장해 저마다 지상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소식에 애태운다. 오디세우스는 어머니의 영혼으로부터 고향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이 무례한 청혼자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과 늙은 아버지가 아들을 기다리며 들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으로 가는 발길을 더욱 다급하게 재촉하게 된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키르케와 이별하고 티레시아스의 영혼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고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족의 섬과 스칼라라는 머리 여섯 달린 괴물과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어마어마한 카리브디스라는 괴물이 있는 좁은 해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이들의 위협을 이기고 천신만고 끝에 지상낙원의 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선원들이 태양신 히페리온의 소를 잡아먹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오디세우스만 혼자 오기기아 섬에 표류하게 된다. 이곳에는 무서운 바다의 님프 칼립소가 살고 있었다. 알키누스 왕은 오디세우스를 공주 나우시카의 배필로 붙잡고 싶어하지만 오디세우스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한 것을 알고는 많은 선물을 주어 그를 이타카로 보내준다. 그 후 13∼24편은 오디세우스의 귀국과 그의 아내에게 구혼한 자들을 응징하는 이야기이다.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을 받으며 침착하게 복수를 계획한다. 거지 행색으로 변장하고 이타카 궁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무도한 구혼자들의 조롱을 끝까지 참으며 그의 아들과 충실한 두 명의 옛 부하의 도움을 받으며 치밀하게 작전을 준비하여 구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아내 페넬로페를 만나 해피엔딩을 이룬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한 진정한 영웅의 귀환 이처럼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주로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검은 바다’라고 표현된 것처럼 바다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중해 권을 무대로 중계무역을 하며 살았던 그리스인들에게 바다는 두렵지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도 이타카에 머물 때는 유약한 어린이였으나, 아버지를 찾아 바다로 나갔다 온 후로는 담대하고 지혜로워진다. 독자들은 검은 바다와 싸우고, 파도와 싸우고,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버티고 서 있는 섬들의 공포를 이기고 돌아오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에게해와 지중해 문명을 이루어낸 그리스인들의 강인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책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많은 어린이들이 거인족 키클로프스, 고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족, 스칼라라는 머리 여섯 달린 괴물과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어마어마한 카리브디스라는 괴물이 사는 바다 이야기를 읽으며 모험심과 상상력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는 《오디세이아》는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그 기괴한 모험담으로 가득 찬 이야기책이 아니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전쟁에 휘말려 가족과 헤어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본다. 《오디세이아》의 주제는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진귀한 모험담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고자 애쓰는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로 다시 드러난다. 오디세우스는 알키누스왕 앞에서 이렇게 자신의 모험담을 시작한다. “인간에게 자기 고향보다 더 좋은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고향을 떠나서는 아무리 호화스러운 집에서 산다고 해도 고향 산천, 부모 형제만큼 좋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헤시오도스의 구분에 의하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영웅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가는 과도기적 시대의 작품이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행해가면서 이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새 시대의 영웅은 엄청난 거구도 아니고, 잔인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자도 아니다. 오디세우스처럼 인간의 목숨을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난을 이겨내는 작은 영웅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 아닐까. 참고도서 1) 《일리아드》, 호메로스 지음, 김병철 옮김, 혜원출판사, 1995 2)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유 영 옮김, 범우출판사, 2011 3) 《세계의 역사 1》.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이산, 2007 4) 《문명이야기》, 그리스문명 2-1, 윌 듀런트 지음, 김운한·권영교 옮김, 민음사, 2011 5)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웅진닷컴, 2001

시작하는 글_책 속에서 만난 위대한 인간 정신들 1. 세상의 시작_ 《성경》 2. 그리스 신화의 탄생_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3. 자유를 지키려는 아테네의 투쟁_ 헤로도토스의 《역사》 4. 철학의 탄생_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 5. 중세 속에서_ 단테의 《신곡》 6. 그리스도교의 혼란_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7. 오스만제국의 추억_ 《내 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묵 8. 라틴 아메리카의 아픔_ 《백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9. 에스파냐의 낭만_ 《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10. 네덜란드의 세기_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데이비드 리스 11. 일본 기독교 박해 시대의 흔적_ 《침묵》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2. 종교적 히스테리의 시대_ 주홍글씨 나다나엘 호손 13. 세상을 바꾼 사람들_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14. 영국의 지성혁명_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과 《자유론》 15. 진화론의 진화_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16. 상호부조론_ 《만물은 서로 돕는다》표트르 크로포트킨 17. 그러면 인간이란 무엇인가?_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18.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_ 《체 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 19. 팍스 아메...

문갑순 [저]

식품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 인류의 진화를 이끌었다는 믿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식품이 지금도 인류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인류의 역사는 굶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관점에서 풍요를 이루기 위해 분투해온 인류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부산대학교 식품영양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현재 인제대학교 바이오식품과학부 교수로 있다. 식품이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에 관심이 많아 이를 식품의 건강 기능성 연구로 확대, 발전시키는 일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나의 사가독서](2015), [콩, 내 몸을 살린다](공저, 200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