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민속예술에서 전방위적 현대 예술기호로의 생명성,
“설위설경(設位說經)”
★ 김금화, 김유감, 박병천, 장세일의 무(巫)에서
심우성, 무세중, 이애주, 유진규의 예(藝)로 ★
설위설경은 원래 충청도 지방의 무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자 무속인인 법사가 소위 ‘앉은굿’이 벌어지는 ‘경청(經廳)’에 종이로 만든 일종의 무구(巫具)를 설치하고 경을 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종이 무구를 설위설경 또는 그냥 설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번 책에 담긴 설위설경은 굿에 등장하는 신장(神將)이 활약하여 잡귀를 잡아가두는 다양한 판과 틀을 기하학적 문양과 상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전통 무속에서 시작된 설위설경은 자생적 생명력을 획득하면서 설치미술과 무대미술, 공예와 시각 디자인 등에서 전방위적 현대 예술기호로 나타난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여 우란문화재단의 ‘신물지(神物紙)’ 전시기획자(장윤주)와 극단 서낭당의 ‘넋전 아리랑’ 공연 연행자(최일순), 그리고 장세일, 정해남 법사 등 명인들에게 직접 설위설경을 접한 종이공예가(도영미)의 글과 생생한 사진을 실어, 설위설경의 현위치를 예술 현장에서 살피고 있다.
이어서 설위설경의 본래적 의미를 음미할 수 있도록 전문가(우종선)의 논문 “법사와 행술-설위설경”, 설경 예술가 이재선·강창미의 설경 작품 58점과 그 제작과정을 상세히 수록하였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 나타나는 수려한 화보이다. 우리나라 무속의 큰 인물이며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인 김금화·김유감·박병천·장세일의 무(巫)가 1인극, 전위예술, 춤, 마임 등 다양한 현대예술 분야의 대가들인 심우성·무세중·이애주·유진규의 예(藝)로 다시 태어남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설위설경이라는 원형이 굿판 벌이듯 예술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대로라면, 박물관 내에 굿당을 짓고, 그 안과 밖을 이재선·강창미 선생이 설위설경으로 꾸미고, 아울러 나라 안·밖의 큰 예인(藝人)들을 모은 후 전시회를 빌미삼아 한바탕 우리만의 ‘굿’판을 여는 것이었다. -(중략)- 그렇기에 아버지의 막역지기(莫逆知己)이신 ‘무세중’ 선생을 비롯하여 이애주, 강만홍, 유진규, 조성진 등 ‘무(巫)’의 정신을 공연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분들과 해외의 여러 뜻을 함께 하시는 분들께 사전에 연락을 취하고 함께하심을 부탁하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연초부터 터진 ‘코로나’ 역병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상을 뒤집어 놓더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연기되고 취소되기까지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획했던 ‘설위설경’ 전시회는 축소되고 ‘굿판’을 대체할 차선의 방편으로, 이 책을 발간함으로서 부족함을 갈음하고자 한다.
(본문 7쪽, 발간사〈사귀착수(邪鬼捉囚)굿을 펼칩니다〉 중에서)
(설위설경은) 각 민간신앙의 초월적 이야기를 담고있는 이야기 즉, 종교적 내용과 이를 무구로 시각화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현실의 장소에 소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종이 조형이면서도, ‘신’을 의미하기도 하고 구천을 떠도는 ‘넋’이기도, 때로는 ‘악귀’가 되기도 하여 추상적 개념의 대상을 지칭하게 되는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대상 혹은 그 개념을 그에 부합하는 조형으로 구현 한다는 측면에서 어찌보면 설위설경을 비롯한 종이 무구는 현대미술의 설치미술과 맥락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본문 15쪽, 〈신성한 물건, 종이 무구 ‘신물지’〉 중에서)
그런 설위설경을 내가 제대로 만난 것은 작년 공주에서였다. (스승 심우성)선생님의 1주기 공연을 준비하면서 ‘계룡산 설위설경보존회’의 이재선 명인을 만난 것이다. 이제껏 의례 그러려니 했던 ‘설경’들이 무대 위에 펼쳐지자 오묘한 힘이 생겨났다. 그 무대 위에 넋전들을 들고 올라간 나는 이미 일인극을 하는 배우가 아닌 것이었다. 한 장 한 장 마다 의미가 깃든 ‘설경’과 ‘넋전’들의 만남은 이미 온 민중과 겨레가 함께하는 풀이의 무대이자 장으로 탈바꿈 되는 것이었다.
(본문 22쪽, 〈넋전아리랑과 설위설경〉 중에서)
종이공예의 생명은 종이를 오려 무늬를 넣어 붙이는 것이었는데, 특히 전통문양에 관심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심우성 선생님으로부터 장세일 선생님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물고기처럼 ‘설위설경’의 무늬를 배우느라 장선생님을 귀찮게 했다.-(중략)-설경 무늬의 미술적 가치는 무한하다. 우리나라 문양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소위 요즘 말한는 디자인의 원형이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컨텐츠‘로 만든다면 전시미술과 무대미술, 설치미술과 시각디자인의 세계를 풍요롭게 넘나들 것이다.
(본문 26쪽, 〈종이공예와 설위설경〉 중에서)
법사들에게 설위설경이란, 장수들의 진법과 같은 것이다. 경청에 진을 설치하여 잡귀를 가두고 쫓아내는 것이다. ‘팔문금사진’은 진법을 통해 잡귀를 가두고, 신령들의 힘을 빌어 쫓아내는 것이다. 설위설경은 경문의 시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십 수년 동안 만난 많은 법사들은 저마다의 행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 행술들은 같은 것도 있었지만 다른 것들도 매우 많았다. 이는 도제식으로 전승되는 독경과 설위설경의 행법이 지닌 특성 때문일 것이다.
(본문 55쪽, 〈설위설경, 법사와 행술〉 중에서)
한국민속극박물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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