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기창의 수필은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고 감정이 절제된 문장이 화소들을 이끌어 간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첫 수필집 『청매원의 봄』(수필미학사, 2014)과 비교하면 한결 농익은 시선과 부드러운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비유컨대 팽팽하게 긴장된 활시위를 내려놓고 느긋하게 과녁을 응시하는 태도이다. 선생의 농원에 가면 효소를 담은 항아리가 백여 개가 넘는다. 그 항아리 안에는 매실과 과실류, 약초가 식초로 익어가고 있다. 수필 쓰기도 항아리에서 자연물이 익어가는 발효의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매실과 약초가 발효하여 숙성하듯이 두 번째 수필집 『욕망의 사과』에서 노년의 여유와 정신의 성숙한 문양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전체 5부로 엮어져 있다. 1부는 농원 가꾸기와 자연에서 발견한 삶의 이치와 즐거움을, 2부는 일상적 사건에서 사유를 펼치고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3부는 목요장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웃들의 삶을 통해 세상살이의 즐거움과 의미를 추구한다. 4부는 미술관 관람과 문화유적답사를 하면서 공부하고 느낀 것을 펼친다. 5부는 신앙생활과 성지순례를 통해 깨친 종교적 가치와 실천을 담아낸다. 자연과 사람, 예술, 역사와 인물, 종교까지 소재와 문양이 다채롭다. 화자의 삶과 사유의 행보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아가 수필 속에서 한 존재의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수필 쓰기는 치유적 글쓰기에서 출발하여 성찰적 글쓰기로 진화한다. IMF 환란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나락으로 추락하여 방황하던 그의 영혼은 수필을 만나면서 조금씩 치유된다. 자연과 수필은 그의 상처와 분노를 위무해주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다.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로 출근하던 그의 일상은 흙을 만지고 나무를 가꾸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삶과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사유하고, 장터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자기를 성찰한다. 수필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는 단계를 지나 정신적 성숙으로 나아간다. 요컨대 수필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삶의 철학을 궁구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사다리와 같다.
머리말
1부 생명의 신비
잡초는 없다
매화 나누기
뚱딴지
술지게미 추억
가을 단상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생명의 신비
아름다운 여행
남지장사의 봄
2부 매호천변에서
청암사 단풍나무
틈새가 있는 세상
지식 유랑객
염치
기다림의 마무리
매호천변에서
총성 없는 전쟁
사랑의 열매
백년찻집과 아모르파티
3부 상생의 손
다도와 시련
발열 내의
명품 모자
욕망의 사과
어묵 값
약속
생선 장수의 눈물
금풍 국수집
상생의 손
4부 미술관 판타지
찬란한 정원으로
아들은 석수장이
바캉스와 뮤캉스
새-되기
미술관 판타지
노스탤지어
얼굴
항일문학촌
탁영금濯纓琴은 살아 있다
5부 기도하는 인연
핑크 안경
평화의 인사
해 뜨는 곳
동해의 꽃 - 경주 주상절리를 찾아서
가을 타는 남자
기도하는 인연
소렌토에서 생긴 사건
순교자와 현감의 부활
사문진 연가
【작품론】자아와 세계의 행복한 동행│
이기창 [저]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조흥은행을 거쳐 대동은행에서 지점장과 본부 부서장을 역임했다. 퇴직 후 다구 전문점 ‘청백도예’를 창업 운영하면서 농원을 가꾸고 있다.
2010년 한국수필로 등단하였고 수필집《청매원의 봄》을 냈다. 한국수필가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 이후문학회 회원이다.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작품상, 대구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논픽션, 입선)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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