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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층의 하이쎈스 
김멜라 ㅣ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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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 페이지수/크기/무게
332page/129*189*26/460g
  • ISBN
9788936439088/893643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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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정보
  • “우린 없는 사람이고, 여긴 없는 층이야.”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김멜라의 첫 장편소설! 수상한 간첩 할머니와 강한 불도저 손녀의 기묘하고 따스한 동거 맑고 따스한 상상력과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소외된 세계를 비추며 평단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효석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잇따라 수상한 작가 김멜라의 첫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가 출간되었다. 군사독재 시절 간첩으로 몰려 상가 건물에 숨어 살던 할머니 사귀자와 희귀병을 앓던 동생을 먼저 보낸 손녀 아세로라의 이야기로, 세간의 이목을 벗어나 마치 ‘없는 층’에서 ‘없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뼈아픈 현실을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슬픔과 두려움 앞에 저마다의 배짱을 내미는 사귀자와 아세로라의 강인한 면모를 그려내며, 밝고 즐거운 에너지를 자아낸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기억하는 일이 남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가슴 저릿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 “처음부터 그랬어. 주소는 못 만들었어.”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의 비밀스러운 교습소 부모가 횡령 사건에 휘말리며 가족 모두가 흩어지게 된 상황, 아세로라는 부모를 떠나 할머니 사귀자의 ‘명필 교습소’에 머물게 된다. 허름한 남산빌리지 상가 건물의 201호에는 사귀자, 202호에는 아세로라가 살게 된다. 할머니 사귀자는 온두라스 음식을 좋아하고 늘 곱게 화장을 하며 봉긋한 머리 볼륨을 유지한다. 말다툼을 할 때도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고 누구에게나 ‘슨생님’ 하고 꼬박꼬박 존칭한다. 교습소 소파에 누워 나초 먹는 것을 좋아하고 ‘할머니’라는 말에는 질색하는 사귀자는 어쩌다 해마다 겨울이면 빌리지에서 흘러 온 ‘똥물’이 동파되는 낡은 상가에서, 제대로 된 주소도 없이 살게 된 걸까. 한편 손녀 아세로라는 동생 칭퉁이를 잃었다. 칭퉁이는 희귀 면역질환을 앓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온갖 과자는 물론 고기나 정제곡물도 먹을 수 없었고 때로는 햇볕에도 피부가 짓물렀다. 빛과 물과 음식들은 칭퉁이 몸에 반점을 만들고 가렵게 했다. 아픈 것보다 치사한 것이 싫다는 칭퉁이는 누나 아세로라에게 몰래 먹지만 말아달라고, 초콜릿을 먹는다면 자기 앞에서 먹어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날 부모는 돼지갈비를 몰래 먹고 돌아와 방향제를 뿌리고 서비스로 받은 요구르트를 숨겨둔다. 아세로라는 칭퉁이를 배신한 부모를 사랑할 수 없다. 칭퉁이를 보내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에 괴로워하던 아세로라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배를 때리고 물건들을 헤집어놓아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교습소 물건들을 헤집던 어느 날, 아세로라는 ‘노란 종이’ 한장을 발견한다. 종이에는 ‘하이쎈스’라고 불리던 간첩 사씨가 소시지 부침 등으로 하숙생들을 꾀어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이쎈스는 할머니의 필명. 그날 이후 아세로라는 할머니를 간첩이라고 믿고 그동안 내뱉던 반말도 거둔 채 사귀자의 행적을 살핀다. 젊은 시절 남산 아래서 남편과 함께 ‘큰별하숙’을 운영하던 사귀자는 비싼 소시지 부침을 노릇하게 구워 반찬으로 내놓는가 하면 손끝이 야무져 하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하숙생들은 사귀자를 ‘하이쎈스’라고 불렀다. ‘하이’의 의미는 잘 몰라도 센스가 좋다는 칭찬에 사귀자는 입이 벌어지곤 했다. 하숙생들 중에서는 순영 학생이 가장 예뻤다. 부탁을 해도 맨입으로 하는 법이 없고 하숙비를 밀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데다 명문대를 다니는 순영 학생. 사귀자는 자신의 딸 샛별이도 순영 학생처럼 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순영 학생은 사귀자에게 ‘명필’이라며 종종 글씨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기계로 쓴 것보다도 잘 쓴다고 추켜세우며 고급 루주를 쥐여주며 해 오는 부탁에, 사귀자는 몇번인가 글씨를 써주게 된다. 까막눈 사귀자는 그저 그림 그리듯 순영 학생이 보여주는 글씨를 따라 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김일성 만세’라는 말이 있었다니…… 계속 궁금해하고 계속 아파하면서 살아가기 등기부에 등록되지 않은 건물에 살면서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숨을 죽이고 빛이 새어나갈까 커튼을 치는 사람들, 아픔을 호소해도 그 아픔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사람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말하다 소리 없이 사라진 사람들까지. 소설은 세상에 의해 ‘없는 존재’가 되어 지워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명랑함으로 풀어낸다. 숨어살지언정 자신만의 스타일은 멋지게 뽐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더라도 또다시 ...
  • 1부 ㆍ 그리기 좋은 아세로라 봄, 는개 · 동거인 · 동거란 뭘까 · 겨우살이 · 남산의 가물치 · 도끼 연습 · 츱츱이 · 다한증 수배자 · 피의 뿌리 · 분노의 뿌리 · 생명의 뿌리 · 아픔의 뿌리 · 집이 불타면 · 죄인들 · 서울로 · 빌리지의 개들 · 빌리지의 웃음 많은 고양이들 · 그 여자 · 톱질하는 여자 · 얼굴이 시드는 기분 2부 ㆍ 사귀자의 하이쎈스 화장의 쎈스 · 이름의 쎈스 · 쎈스는 빌어먹을 · 오케바리, 나이스바리 · 소시지를 부치는 쎈스 · 하숙방을 돌며 · 양봉과 음봉의 혈자리 · 부아 덩어리들 · 오란씨 한병, 루주 하나 · 남대문의 뭉칫돈 · 남산으로 · 사귀자의 뿌리 · 농담의 뿌리 · 그런 말씀 마셔요 · 하숙집의 별 · 너럭바위 · 꽃핀 날 · 꽃 진 날 · 꽃이야 피거나 말거나 · 끝내자고, 다시 살자고 · 살 궁리 · 죽으라는 소리 · 원수와 손잡고 3부 ㆍ 없는 층의 간첩 훈련 빌리지의 오후 · 은신처, 아니 무덤, 아니…… · 선글라스 끼고, 판탈롱 · 하이쎈스의 수칙 · 눈동자 안쪽부터 · 새벽 꿈 · 옥상 정원에서 · 정보 수집과 동향 파악 · 탕탕탕의 맛 · 말통 작전 직전 · 말통 작전 · 토바올치 시간 · 간첩 해고 통보 · 왜 자꾸 남산으로 · 사나운 말년...
  • 아세로라가 보기에 ‘미(美)’ 자가 붙은 말치고 사람을 우습게 만들지 않는 말이 없었다. 청순미, 볼륨미, 과즙미. 그러나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아세로라의 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장미였다.(46면) 아세로라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을 칭퉁이라 불렀다. 그애는 큰 벌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면 까르르 웃었으니까. 칭퉁이는 섹스의 결과가 아닌 그 주변을 맴도는 웃음 같았다. 아세로라는 한번도 동생이란 존재를 꿈꾸지 않았지만 칭퉁이 앞에선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그애도 그렇게 웃어줬으니까. 그런데 왜 그애는 웃지 못하고 아파해야 했을까.(51면) 하지만 단지 그애가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처럼 초콜릿과 라면을 먹는 것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젤리를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몸이었다. 편의점 앞을 지날 때면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사람을 넋 놓고 바라봤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지나가는 아이는 단지 손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을 뿐이었지만, 칭퉁이는 가슴에 총을 맞았다.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처럼 멈춰 섰다.(55면) 아세로라는 자동 센서가 꺼진 주차장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세로라의 집은 점보다 더 작아졌다. 칭퉁이가 떠나고 그애의 몸이 화장장에서 사라졌을 때 아세로라의 집도 같이 불탔다.(59면) 아세로라가 빳빳하게 코팅된 노란 종이를 집어 들었다. 테두리가 갈색으로 빛바랜 종이는 네모나게 접힌 자국이 있었다. ‘남산 보고’라는 붉은 글자 아래 ‘신문보도안’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뒷장에는 노트를 찢은 종이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가로획이 길고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듯한 필체. 동거인의 글씨였다. 아세로라는 노란 종이를 앞뒤로 보며 글자들을 비교했다. 동거인이 쓴 글자는 앞의 한자를 한글로 풀이해놓은 것이었다. (…) 하이쎈스. 동거인의 필명 하이쎈스. 신문보도안에는 하이쎈스 사씨의 죄목이 이어졌다.(94~95면) “하숙생들이 당신을 뭐라 부르는 줄 알아?” 어느 날 마주앉아 양말을 개던 남편이 사귀자에게 말했다. “하이쎈스래. 당신더러.” (…) 사귀자는 코를 벌름거리며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 학생이 참 매너가 굿이야.” 사귀자는 복주머니처럼 잘 접은 양말들을 바구니에 넣으며 말했다. “오케바리, 나이스바리.” 일 맛의 가락을 타며 사귀자가 바구니를 들고 마루로 나갔다. 그런데 ‘하이’는 뭔 뜻일까. 하이, 안녕, 그런 건가? 사귀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차례차례 양말 주인들의 방문을 두들겼다.(115~116면) 사귀자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루주 뚜껑을 열었다. 작달막한 통을 돌리자 해당화처럼 환한 자줏빛 루주가 꽃향을 내며 부드럽게 솟아올랐다. 척 봐도 브랜드 달린 고급 루주 같았다. 사귀자는 주책맞게 이러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앞이 뿌예졌다. 그 루주가 그런 일을 불러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영 학생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을 때 전에 써줬던 것보다 큰 종이가 바닥에 깔려 있어 내심 놀라긴 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순영 학생은 사귀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자가 가득한 종이를 손으로 짚어가며 똑같이 따라 써달라고 했다. 사귀자는 한획 한획 정성을 들여 썼다. 그 글자 중에 ‘김일성 만세’가 있는 줄도 모르고.(133면) “아주머니, 앞으로는 아는 글자만 쓰시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글자 따라 쓰지 말고, 아주머니가 진짜로 아는 것만 쓰고 살아요.” 그 남자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사귀자는 되묻고 싶었다. 제가 아는 게 뭔가요. 진짜로 아는 거, 좋은 게 뭔가요.(185면)
  • 김멜라 [저]
  •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이 있다. 문지문학상, 2021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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