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온통 푸릇푸릇한 세상이다. 꽃샘추위도 지나고 꽃가루가 날리고 있다. 따뜻한 봄바람을 기대했건만 지구온난화 탓인지 봄볕의 따스함은 언제부턴가 봄옷을 준비했다가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가 다시 여름옷을 찾게 된다.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공원을 걷다가 마주한 꽃잎이 가련하다. 시골에서는 아버지가 나무를 깎고 다듬어 놓은 울타리를 따라 강낭콩이며, 수세미며(지금은 여주라고 부름)오이 가지 온갖 채소들까지 골고루 자라고 있었다. 봄이면 울타리를 따라 드나드는 길목에 갖가지 꽃들이 자라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지천이던 고향이었다. 어머니는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우리 식구 여섯 아니지 언니들은 부천으로 자취를 하러 간 때이니 남동생 둘과 다섯 식구의 세숫물을 받아놓으시고 아침상을 내오셨다. 마당 한 구석에 자리한 장독대에는 어머니가 담가 놓으신 된장이며 간장이며 고추장이 가득했던 그곳이 충주댐으로 가라앉게 되고, 몇 푼 안 되는 보상금을 받아 언니들이 살던 부천으로 이사 올 무렵까지도 필자인 나는 철이 없었다. 추억이라고 하기는 너무 가슴 아프고, 기억 속의 한 편이라고 하기는 뭔가 낯 선 잘 어긋나서 삐걱거리는 기억의 단편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 누군가는 기억과 추억의 간극이 그리움이라 했다. 그러므로 기억이나 추억이나 그리운 건 매 한 가지 아닐까. 지난날을 돌이켜 회상하면 흐뭇해지기도 하지만 온 몸이 짜르르한 것이 슬픈 감정인지 그리운 감정인지 모호한 기분이 온 몸을 휘감는 건 여전하다. 그것은 필자인 나도 그렇지만 점점 기억의 조각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더 그런 것 같다. 어머니가 처음 막내더러 아침 상 대신 캔 맥주를 꺼내어 먹으라고 했을 때는 무슨 일인가 싶고 심장이 벌렁거려 놀랐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우연처럼 반복이 되고 부터 가족들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고 의사의 치매진단을 받았을 때가 벌써 수년 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렇게 잘 잡수시던 회도 못 자시고 탕수육도 마다하시고 당뇨로 고혈압으로 불룩한 배를 안고 먼저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다가 보내드리고 나니 그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필자인 내가 지은 이번 제 4시집의 맥락은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독자에게 건네는 독백 같은 말, 그리고 꽃과 더불어 자연 속에 숨은 바람 그리고, 그리움의 저 쪽에다 퍼붓는 애잔한 그리움의 말이 대체로 실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시골이 고향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고, 공부를 썩 잘한 사람도 아니어서 변변한 학창시절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넷째 딸로서 세 언니의 동생, 그리고 두 남동생의 누나로서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면 참 이기적이었다. 언니들에게도 동생들에게도 변변한 동생노릇, 누나노릇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성인이 되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기정사실화 된 것이 아이를 위한 삶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첫 째는 열 달 꼬박 뱃속에서 건강하게 나와 배탈 한 번 걸리지 않았건만 둘째는 뱃속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조산기에 부종이 생기고 힘들게 생기더니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아이가 생겼을 무렵에는 뉴스소식도 동반자살이니 하는 맥 빠지는 뉴스가 연일 나와서 더욱 힘들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보는 일이 숨통을 조이고 호흡을 가쁘게 하여 아무 일이나 하게 되고 손에 잡히는 뭐든 읽고 쓰고 따라한 것이 지금의 필자가 되었다. 첫 시집 『연꽃홍수』를 2014년에 내고, 2016년에는 두 번 째 시집 『크크라는 갑』을 부천시문화예술발전기금을 받아 내고, ...

이번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살아오면서 느꼈던 풋사랑이라든가 오래 묵혀둔 사랑에게 말을 건네는 작업을 하였다. 특히 「묻지 않아도 아는 일」에서는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시집살이하던 이야기를 담았다. 함께 감상해보자. 치매라는 엉성한 녀석들이 소설 같은 세상사를 에멜무지로 묶어두고는 조상님의 선물이라며 던져주더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남동생 형제를 데리고 애보기로 부엌데기로 살다가, 버팀목이 되어 만난 남편과 홀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들과 단칸방에서 복작거리며 옹골차고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린 거며, 날마다 빈 솥바닥 박박 긁어가면서 손발이 닳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바람 잘 날 없는 육남매를 허리 펼 줄 모르고 키운 일까지, 그런 집안에 얼마나 사설이 많았을까. 묻지 않아도 된답니다. 기억나지 않아도 기억한답니다. 그러니 이제는 편히 지내라 하고. -「묻지 않아도 아는 일」 전문 읽으면서 문득 하시다 스가코의 『오싱』이 떠오른다. 엄마의 모진 삶을 단편으로 짧게 끝내서 아쉽지만 아마 시인이 아니고 소설가였다면 『오싱』보다 더 한 아주 진한 감동의 서사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의 삶은 자체가 고되고 대단했는데, 돌이켜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어머니는 치매로 인하여 편하게 말년을 보내시라는 신의 계시 같이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시 내용처럼 짓게 되었다. 1부이야기는 이쯤에서 하고, 상상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필자가 시인의 눈으로 본 세상이야기를 담은 2부 이야기를 해야겠다. 필자는 태어나면서 육남매의 넷째로, 밑으로 남동생 둘이 태어나는 바람에 사랑을 받을 만한 위치는 못 되었다. 어쩌다 호되게 병치레라도 할라치면 그때서야 엄마의 정성어린 손길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소풍을 가든, 졸업을 하든, 미술로 큰 대회를 나가든, 부모님이 필자인 나를 응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혼을 하고도 딸에게 뭘 어찌해야 사랑을 주는 건지, 어떻게 표현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고, 그저 해야 할 엄마의 도리를 다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필자는, ‘너 참 대단하다.’라는 말을 어쩌다 듣는데 부끄럽다. 장애가 있는 딸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애한테 제대로 사랑을 한 걸까 하는 반성이 늘 부끄럽게 했다. 부끄러운 필자에게 장애를 키우는 일은 가끔 볼쏙이 스스로 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무척이나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딸에 대한 서류를 떼러 아이와 함께 갔을 때,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서 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같이 동행을 했음에도 담당자는 아이와 필자를 오래도록 붙들어두고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묻고는 하였다. 결국에는 다른 분이 나와서 양해를 구하였고 일이 잘 마무리 되었지만 지금도 생각할수록 화나는 일이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물론 불합리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또 그것들은 화를 돋우게 한다. 이 시는 그런 화나는 여러 가지 일들과 당사자들에 대한 분노를 능소화를 빌려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어쩌다 중고서점에서 울고 있는 필자의 시집들을 데려와 하나하나 열어보다가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필자를 무척이나 어여쁘다하고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문인 중 한 사람이 싸인 조차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중고시장에 내다 판 것이었다. 우연히 구입한 그 시집이 그렇게 덩그러니 울고 있을 때 필자는 능소화의 꽃잎을 열어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확 그냥 막 그냥 덮쳐...버릴 테야. 물어보지도 않고 두드리지도 않고 불쑥, 함부로, 멋대로, 침묵을 건드렸어. 화악 마, 제대로 보여줄 테야. 물어보기 전에 두드리기 전에 대뜸, 볼쏙이, 무시로, 놀래줄 테야. 담장을 넘은 주홍빛 능소화가 지나던 경적소리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면서 소리치고 있다. ？！ -「화(花),악(？)」 전문 다 함께 소리 질러 보자고 하는 능소화의 외침은 어느 날 나에게 와서 외쳐댔다. 그런 고로 이 시집에서는 필자 나름의 성격도 나온다. 3부를 이어서 보면 필자의 아픈 이야기를 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필자에게는 차지증후군이라는 특이한 질환을 앓는 둘째딸에 대한 연민이 실려 있다. 속으로 바라는 희망 목록도 될 수 있지만 희망은 이루어질 가능성보다 이루길 바라는 꿈일 때 희망이라는 말로 가슴에 품는다고 한다. 품을 수 있는 희망이었으면 말하지도 않았겠지만 한때는 그런 희망을 꿈 꾼 적도 적잖이 많았다. 다시 뱃속에 집어넣어 정상으로 될 수 있으면,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하는 가망 없는 엉뚱한 희망을 가진 적이 여러 번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식의 아픔이, 이제는 작은 웃음으로 바뀌어 말하고 있다. 너로 인해 엄마가 웃고, 너로 인하여 삶을 의미 있게 살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손발을 오라로 동여매고 허벅지에 다듬잇돌을 올려놓고 심장에 돌덩이가 얹혀 있듯 옴짝달싹 못 합니다. ？ 아이의 맑은 눈 다시 볼 수 있을지 내장을 하나하나 예리한 면도날로 노려내고 후비는 듯 미어집니다. ？ 하느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부처님도 어쩌지 못하지요. 아픈 자식 수술대에 밀어 넣은 어미 가슴 옥죄는 이야기입니다. -「아프다」 전문 그 아이가 병원에 누워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종일 피를 뽑고 각 종 검사를 받는다고 찬 시트에 누워있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느꼈던 심정을 고스란히 가감 없이 담아놓은 시이다. 어느 부모인들 안 그러랴. 아프게 울리는 마음속에 감히 표현해보지 않은 감정을 옮기면서 다함께 공감해주길 바란다. 마지막 4부에서는 필자와의 인연이 연루된 이야기들로 읽는 이들에게 삶을 살면서 조금씩은 정리된 삶을 보여 주고자하는 마음으로 담아놓았다. 고된 나날이라 말하는 과거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매달린 매일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회색빛 구름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시간의 관절이 녹고 주름의 강물이 흐르며 달팽이 같이 느리게 기어가는 기어와서는 가뭇없이 데려가는 잡으려는 자에게는 더 가혹한 -「시간은 늙는다」 전문 특히 이 시는 반년 조금 넘은 삶을 살아오면서, 어린 아이들과 청년들이 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가져야하는 보편적인 시간을 주제로 말을 건네고자 하였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효도를 하기에도, 즐겁게 살기에도, 빠듯한 시절이 지금도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필자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으로 마무리를 대신하려한다. 플라톤이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 먹고 살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능력 넷째, 남과 겨루어 한 사람 정도는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라고 말한 것처럼 필자는 조금 모자라고, 덜 성숙되었고, 많이 부족한 시인이다. 조금은 부족하고 약간은 모자란 상태로 이루어진 시일지라도 좋은 마음으로 어여삐 여겨 많이 읽어봐 주시면 좋겠다. 정령 시인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인이다. 인간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무생물과도 소통하며 그 대상을 정령화(化)하여 이미지를 구축해냈다. 또한, 이 시집 『구름이 꽃잎에게』에서 자신을 낱낱이 드러낸 ‘깨복쟁이’가 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에게 던져진 운명 앞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실존(實存)을 위한. - 박희주(시인, 소설가) 『구름이 꽃잎에게』는 시가 영혼의 대화이며 올바른 자아를 형성하는 내면의 울림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시속에서만 볼 수 있는 정령 시인의 서정과 은유, 삶의 통찰, 시적 어휘가 얼마나 신선하게 청아한 울림을 남기는가. 읽는 내내 마음을 정화하는 선물이 된다. - 홍명근(시인, 미디어저널 대표)

제1부 달빛은 요요하게 요요히 그와 그녀는 사랑하는 사이다 녹턴 달빛은 요요하게 요요히 뽀르뚜가ㆍ가 떠난 날 매미 소래포구 일몰의 소론 묻지 않아도 아는 일 낙화별곡 삭발 백만송이장미원 사월 구름이 꽃잎에게 차 한 잔 사는 건 다 같다 기다립니다 개양귀비 설마 제2부 화(花), 악(？) 화(花), 악(？) 아카시 꽃 한 움큼 경고문ㆍ1 경고문ㆍ2 꽃의 비밀 산수유 꽃눈 다 터지도록 댓글 고추 시가 우르릉 발 없는 말 계량일지 가을 풍경 연 꽃눈깨비 날리는 날 맴 책상과 시인 어머니 제3부 무작정 웃었습니다 고백 서랍 속에 묻다 이별 그 후, 감기 행복한 왕자ㆍ1 행복한 왕자ㆍ2 당부 토끼풀의 꿈 무작정 괭이밥 아프다 바람이 속삭이는 말 시시때때로ㆍ1- 순딩이 시시때때로ㆍ2- 동창회 시시때때로ㆍ3- 금옥이 시시때때로ㆍ4- 울엄마 시시때때로ㆍ5- 아버지 시시때때로ㆍ6- 우리집 제4부 덕분에 웃는다 세상 살다 보면 有念有相(유념유상) 황혼 꽃과 바람 창문 다행이야 인연평설 엄마와 달 컨베이어 오순 씨의 코다리 지하철 현장학습 시간은 늙는다 덕분에 웃는다 사랑이란 게 그런 거더라 편지 추억이란 정 시인의 말

？제1부？ 달빛은 요요하게 요요히 그와 그녀는 사랑하는 사이다 조각달이 구부러진 언덕길 지나 구름 뒤에서 내려온다. 새들이 놀다간 전선줄에 가만가만 다가가 모로 앉는다. 보다 못한 구름 툭 치며 말 걸어도 노란 궁둥이 씰룩인다. 한 곳에 북 박아놓고 보름밤 살 냄새 지긋이 맡는 듯 한 소절 아리랑 콧노래 부르다가 두 소절 아라리요 듣다가 기다린다는 부푼 몸이 바람에 실려 오다 전선줄에 걸리고 보고 싶다는 처진 눈빛이 달의 오금에 매달려 흔들리면 달 토끼 덩더꿍 달뜬 공이질에 시나브로 둥둥 달아오른다. 녹턴 어둠이 빚은 달이 잘게 부서지면서 잔 별꽃을 만든다. 달로 빚은 별꽃들이 은하에 쓸려서 대지를 내달린다. 은하에 쓸려와 풀이 돋고 잎이 나며 어둠의 꽃이 핀다. 어둠의 꽃들이 달이 낳은 별꽃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은다. 주위의 모든 것들은 너를 중심으로 돌다 돌아 나온다. 혼탁한 중심이 흔들리면 너를 중심으로 어둠은 부서진다. 아늑한 그곳에서 도르르 어둠의 부스러기들이 흔들린다. 너의 중심이 흔들리고 너는 흔들리며 어둠을 쫓아간다. 달빛은 요요하게 요요히 달이 밤새 들썩이며 피운 들꽃의 요요한 움직임에 홀린다. 꽃들이 흐드러진 들길을 달빛이 흔들리며 따라 걷는다. 달빛들이 허벅진 들꽃을 즈려밟고서 밭두렁을 건너온다. 달빛들이 여기저기서 꿈틀대며 요요한 강물을 건너온다. 꽃들이 흔들거리면서 달빛을 보고 하나둘 꽃잎을 피운다. 꽃향기에 밀려온 바람이 휘이익 달빛을 당기는 것처럼 달무리 고것 참 요요(搖搖)하게 요요(姚姚)히 걸어온다. 뽀르뚜가 ？가 떠난 날 한순간 반짝이는 빛이 아니라 물이 되고 구름이 된다. 비가 되고 다시 내(川)내(川) 눈에 가득 차고 넘치게 흐른다.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갸름한 턱 굴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넘치고 넘쳐 하염없이 떨어지는 내(川)내(川) 흐른다. 물이 되고 구름 되고 비가 되고 다시 내(川)내(川) 흐른다. 달빛도 휘어져 흐느끼는 밤 별빛도 물초되어 내내 흐른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재재의 비밀 친구 이름 매미？ 한바탕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하늘을 떠도는 흰 구름마저 귀를 막는다. 그해 여름, 한 자락 꽃향기로 머물렀던 그 소년 떠나고 훌쩍이며 돌아서던 플라타너스 길 따가운 햇살보다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에 온몸의 신경세포가 날이 서듯 몸살을 앓았다. 솜털을 간질이는 그 소년의 입김처럼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부는 바람도 멀미 나도록 온유했다. 진초록으로 반짝거리던 그 여름 그 매미 소리 생생하게 내려앉아 더럭더럭 목 놓아 울고 푸르렀던 플라타너스도 덜컥 목이 잘려 낭자한 여름 미생의 기억도 툭툭 부러져 뒹굴고 있다 소래포구 일몰의 소론 갯벌의 하얀 소금꽃이 일몰이 지린 오줌의 흔적 아닐까. 붉은 나문재가 일몰이 싸질러놓은 똥이라는 데 맞을까. 일순간 두 가설이 맞다 아니다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대. 빈 소금창고 안 가설을 입증할 만한 뭐가 있나 몰두할 때, 풍차의 바람을 탄 솔깃한 변론이 갈대숲 사이에서 나왔어. 일몰의 엉덩이에서 붉은 나문재의 똥들이 똑 떨어지더라. 하얀 소금꽃은 일몰이 지린 오줌으로 된 것이라 하더라. 조용히 밀려오던 해거름이 고개를 끄덕였대. 하얀 소금꽃의 흔적을 가리고 붉게 장식하면서. 나문재나 소금꽃이나 한통속임을. 증거인멸의 속절없는 가래질 멈춰버린 수차가 유구무언, 긍정의 표 던지는 순간 대답은 일괄 명료해졌대. 하얀 소금꽃은 오줌 흔적이 맞다 붉은 나문재도 똥이 맞다. 까맣게 속이 타버린 소금창고 대답도 유구무언, 그저 세월만... 아는 일로 꾹 도장을 찍었대. 바로 그때 소란했던 소래포구의 일몰이 철푸덕 앉아, 꾹 참았다 싸놓은 붉은 똥 주변으로 똥똥거리며 벌겋게, 웃던 나문재며 소금꽃을 본 이는 동죽도 농게도 아닌 겨우 알 깨고 나온 셋째 갈매기였대. 묻지 않아도 아는 일 치매라는 엉성한 녀석들이 소설 같은 세상사를 에멜무지로 묶어두고는 조상님의 선물이라며 던져주더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남동생 형제를 데리고 애보기로 부엌데기로 살다가, 버팀목이 되어 만난 남편과 홀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들과 단칸방에서 복작거리며 옹골차고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린 거며, 날마다 빈 솥바닥 박박 긁어가면서 손발이 닳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바람 잘 날 없는 육 남매를 허리 펼 줄 모르고 키운 일까지, 그런 집안에 얼마나 사설이 많았을까. 묻지 않아도 된답니다. 기억나지 않아도 기억한답니다. 그러니 이제는 편히 지내라 하고. 낙화별곡 꽃잎들이 날립니다. ？ 온달과 평강공주가 날아갑니다. 몽룡이와 춘향이도 따라갑니다. 수일이와 순애가 날아갑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도 따라갑니다. ？ 나풀나풀 날아가다가 펑퍼짐하게 자리를 깝니다. 곰비임비 꽃잎 떨어진 자리에 철이와 영희 철퍼덕 떨어집니다. 꽃잎들이 와르르 떨어집니다. 삭발 그녀의 머리카락은 동화 속 여인의 머리카락 황금색으로 변하면 그녀는 여왕이 되고, 갈색으로 변하면 그녀는 추한 여인이 된다. 머리카락 한 가닥에 서러움을 심고, 머리카락 두 가닥에 미움을 담고, 머리카락 세 가닥에 욕심을 뿌리고, 머리카락마다 심고 또 심고 담고 또 담고 뿌리고 또, 뿌리고 하도 많이 반복하니 하얗게 되고 누렇게 뜨다가, 결국 머리카락 하나도 남김없이 밀어 버리기로 한다. 다 내려놓는 순간 백혈병 앓던 머리를 반짝 연다. 백만송이장미원 화르르 불사르고 죽어도 좋을 꽃송이가 백만 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보이는 누구라도 덥석 잡고서, 고백을 해도 따귀 안 맞을 수만 가지 핑계가 섬섬한 우르르 백만 가지 사랑 비법이 터진다는 비밀의 정원 사월 애기 볼처럼 보드라운 꽃봉오리가 천지에 피어납니다. 온 세상 훤한 꽃무더기에 연일 연둣빛 낯으로 놀랍니다. 놀란 연둣빛, 뾰족하게 가슴 저미는 봄 물결 일렁입니다. 노란 꽃보라 날리던 물결 위에도 봄이 어른어른 댑니다. 구름이 꽃잎에게 꽃잎을 등지고 돌아선 나비를 보았습니다. 긴 그림자가 돌담 사이로 사라져가고 고샅길에는 그렁그렁한 꽃잎들이 떠다닙니다. 노란 달이 그루잠 들기 전에 구름이 다가와 꽃잎에게 말을 건넵니다. 꽃잎이 이슬방울로 구름의 말을 대롱거리며 주워 담습니다. 꽃잎 하나하나에 고맙다 구름의 말들이 대롱거립니다. 끌끌한 꽃잎 또 보자 무덕지며 고개 숙입니다. 차 한 잔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우리는 웃음이 납니다. 한 모금을 축이고 서로의 세상을 다 마십니다. 집 나간 남자가 남기고 간 자식도 제 갈 길로 떠났습니다. 두 모금을 마시고 우리는 모두 느긋해집니다. 차 한 잔이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가지고 놉니다. 여자의 흰 머리카락 한 올 주름살 끝에서 흔들거립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우리는 콧노래를 흥얼댑니다. 기나긴 여정이 한가득 일렁입니다. 희끗한 차 한 잔 헤벌쭉 지난한 삶을 주워 담습니다. 사는 건 다 같다 새들이 전깃줄 위에 앉아 맘대로들 떠들어 댑니다.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속살거리며 늘어나는 중입니다. 어머니가 시집갈 딸을 챙기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말쑥한 아가씨와 맵자한 사내의 혼담이 오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와 군대 갈 아들의 덤덤한 송별일지도 모릅니다. 손주와 죽음이 임박한 할머니의 구슬픈 이별일지도 모릅니다. 한낮에도 저리 무수한 말로 새살궂게 지껄이는 중입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새들 세상에서도 많은 일이 생긴 겁니다. 전깃줄 위에 앉은 새들도 고개를 까딱이며 사람들 떠드는 말 듣고는 사는 건 똑같다 할 겁니다. 기다립니다 ？ 기다릴래요. 바람이 불 때를 낙엽이 질 때를 나뭇가지의 작은 떨림으로도 당신임을 알 때까지 기다릴래요. 바람처럼 낙엽처럼 사라질 때라도 우뚝 선 나무처럼 서 있을 당신임을 알 때까지 억만년 지나 먼 먼 뒤안길에서도 끈으로 한 줄 단단히 엮인 것임을 알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마저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의 『나는 기다립니다』에서 인용. 개양귀비 붉은 뙤약볕이 내리쬐는데도 골몰히 붉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 붉음을 따를 수 없다. ？ 붉게 붉어지다가 불그스레 붉히고 있다. ？ 곁이 없다는 것은 속으로 더 속으로 밀어 넣는 아픔 저토록 붉어지게 아무도 몰라야 하는 쓸쓸함이다. 설마 여름내 쉼없이 울어대던 매미가 겨울에도 운다면 설마 차가운 바람도 매미 곁에 앉아 쉬어가겠지. 떠나야 할 초록 잎사귀도 밤새 종을 울릴 거야. 혹 초록 잎사귀가 웃으며 꽃망울을 건드릴 테지. 울긋불긋 꽃들이 얼굴을 붉힐 테고 뒤죽박죽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겠지. 강남 갔던 제비가 제 순서를 잊어버리고 지지배배 놓친 제 순서가 언제인지 따져 묻겠지. 그런 중에도 짝 잃은 매미는 제짝을 찾느라 울 테고 사람들은 매미가 미쳤다고 분명 욕을 해댈 거야. 매미가 우는 법석에 햇볕도 덩달아 눈 위로 기절할 테지. 그럴 리 만무하지만 잠깐 매미울음을 들은 것도 같아.

정령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