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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건네는 마음 : 처방전에는 없지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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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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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92776910/119277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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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방전 너머의 아픔을 매만져 보는 일” 건네는 약에 마음을 조금 얹습니다 약사가 마주하는 색색의 알약 같은 순간들 약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유쾌한 기분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어찌 됐든 약국은 아픔을 떨치기 위해 찾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어둑한 마음을 가진 채 문을 열어서일까? 그곳에서 우리를 반기는 약사의 이미지가 그다지 밝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할 수 있겠다. 문학수첩의 에세이 시리즈 ‘일하는 사람’의 열네 번째 책 《약 건네는 마음》에서는 어쩌면 흐리게 보였을 수 있는 그래서 쉽게 지나쳤을 법한 약사의 일과 삶을 담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병원과 약국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에게 약을 건네면서 서로 얽힌 마음들에 관해 말한다. 누군가는 “하루 세 번, 식후에 먹어라”는 말의 기억을 안고 약사가 하는 일이 별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약사는 기계적인 대답을 하고, 무표정하게 약만 건네면 되는 편한 직업이 아니다. 소아과 개인병원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일하는 저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진땀을 흘리고, 약을 빻느라 늘 안구건조증을 앓는다. 또한 약사가 오로지 자신뿐이기에 혼자서 조제실에 약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체크하고 재고를 파악해 주문을 넣는 일도 도맡는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일이 그렇듯, 역시나 가장 어려운 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약사는 약만큼이나 사람의 눈을 자주 바라보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눈을 마주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된다. 투약대에 발을 턱 올리고는 자신의 증상을 봐달라는 할머니, 엉뚱한 약 이름을 말하며 약을 찾아달라는 손님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딸기약’이 들어있지 않으면 약을 먹지 않겠다는 아이까지 말이다. 우리에게 약사는 몸이 아파 경황이 없어서, 약국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회색처럼 무미건조한 사람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약국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고 오는 색색의 알약 같은 사람들”(16p)이라고 말한다. 처방전에 적혀있는 약 이름 너머 기록되지 않은 환자의 아픔을 두드려 보고, 처방된 약에 마음을 조금 얹어서 건네는 약사의 하루하루를 통해 따뜻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약사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집 세탁소 아주머니는 손님들에게 뽀송한 변화를 선사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치킨집의 사장님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위안을 준다. 그리고 이들처럼 약사 역시 세상에 퍼진, 잘못된 약에 대한 선입견들을 고쳐나가야 한다. (〈매일매일, 희박한 승률의 싸움〉, 35쪽)에서
  • “일상 속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을 만나다” 서투른 실수를 이해하는 나와 당신의 말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또 고민을 한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암벽을 등반하듯 실수와 고민을 꼭 붙들고 한 발씩 천천히 나아간다. 저자에게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그래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던 시간이 있었다. 저자는 병원에서 새벽을 견디며 졸린 눈을 비비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뒤돌아보아야 했던 야간당직약사로 일하던 때를 캄캄한 터널 같던 시기라고 말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약사의 일상은 그야말로 혼이 쏙 나갈 만큼 정신이 없다. 처방전을 인쇄하는 프린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데 그렇게 출력된 하루치 처방전이 어지간한 사전보다 두껍다. 이 처방전을 서너 번씩 체크하는데, 아이들이 먹는 약일 때는 체중에 따라 복용하는 양까지 계산해야 한다. 또 병원은 언제나 긴급한 상황이 만연해 있어서, 이 모든 과정을 압박과 재촉 속에서 진행해야 한다. 많은 직업인들이 다양한 실수를 저지르지만, 약사의 실수는 어쩌면 사람의 목숨에도 맞닿을 수 있기에, 그 압박감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압박감 속에서 저자 역시 몇 번 미끄러진 적이 있다. 바셀린 통을 열어보지 못해 아기의 입술에 새빨간 포비돈요오드가 발려 보호자를 기겁하게 했다거나, 인슐린주사기를 제대로 검수하지 못해 선임 약사가 환자의 집에 찾아가 고개를 숙이게 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질러 왔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걸 포기해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지금 와서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을 것”(26p) 같던 일들 앞에서 저자의 손을 붙잡아 주었던 건 환자들의 따뜻한 이해였다. 모든 실수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예전만큼 가깝지 않다고 느껴지는 오늘날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위로보다 “그럴 수가 있나?”라는 의문 섞인 질타를 더 내뱉기 쉽다. (…) 추운 겨울, 밖에서 눈사람이 되어버린 이의 어깨에 올려주는 외투 같은 말, 두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프지 않게 들어온 주삿바늘 같은 말.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113쪽)에서 《약 건네는 마음》은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담은 약사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서투른 실수를 이해하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려는 우리의 이야기다. 환자의 배려는 저자의 마음에 가닿고, 저자에게 도착한 마음은 약사로서의 신념이 되어 다시 다른 환자들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 신념은 코로나 시기, 공적 마스크 공급을 포기하고 싶었던 숱한 순간들마다 저자를 건져 올리는 힘이 됐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어르신의 말들을 여러 번 혼자서 되뇌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러한 저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실수를 핑계로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닌지, 한때는 반짝였던 초심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비록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약사는 아니지만, 실수와 고민을 꼭 붙잡으면서 힘든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무기력과 합리화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하는 순간을 선사한다.
  • 1장. 약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 나의 약국 이야기 … 9 만약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 18 매일매일, 희박한 승률의 싸움 … 28 정수리 대신 눈을 … 36 이 약, 드셔보셨나요? … 43 2장. 알약 하나로 이렇게나 우당탕 약사는 약장수가 아니기에 … 53 이름 잘못 말하기 대참사 … 62 속임약효과에 속지 마세요 … 70 가짜들이 너무 많아 … 79 라포르, 믿을 수 있는 … 87 부메랑은 돌아온다 … 95 3장. 이러다 내가 약 먹을 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 … 105 이토록 위험한 알레르기 … 114 바셀린에 얽힌 추억 … 122 ‘불량’이라는 글자 … 131 말하지 않아도 아나요 … 139 4장. 약국에도 감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서울남자, 스위트 가이 … 149 사실 다 알고 있거든? … 157 공적 마스크의 비극 … 164 약 공급책 할머니 … 173 우주의 중심에 놓는 … 182
  • 처음 약국을 열었을 때 맞췄던 흰 가운이 조금 탁해졌듯, 내 심장에 콱 박혔던 그 메시지도 조금 느슨해졌을 수 있다. 그래도 언제나 대문을 나설 때면 살짝 놓았던 비타민을 다시 그러잡는, 저 집념 강한 아이처럼 한 번 더 마음가짐을 바로잡고는 한다. _11쪽, 〈나의 약국 이야기〉에서 그래도 눈이 오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친구를 부르지 않아 고민 없이 약국에서 일했더라면, 약사 일을 지금처럼 오래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고민은 또 다른 흔들림을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정체가 밝혀지곤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로 하루하루 어두워져 갔던 나는 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서야 가까스로 제 목적지를, 아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_27쪽, 〈만약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말은?’이란 물음에는 답변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말은?’이란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들다. 원하는 말과 할 수밖에 없는 말 사이에는 나와 너의 관계와 감정, 입장과 이해라는 무수한 변수가 있기 때 문이다. (…) 약도 마찬가지다. 같은 약이라도 사람마다 약효가 다르게 나타나고, 약의 가짓수가 추가되면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_61쪽, 〈약사는 약장수가 아니기에〉에서 살면서 모든 믿음에 보답해 오지는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실망감을 안겨줬을 수도 있다. 실은 모든 믿음을 안은 채 놓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유리병 속에서 미약한 빛이나마 흔들 수 있다는 게 좋다. _88쪽, 〈라포르, 믿을 수 있는〉에서 물론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한다면 그것만큼 혈압을 높이는 원인도 없다. 그래도 그런 상황이 아니라 타인의 용서 앞에 내가 입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고 싶다. 추운 겨울, 밖에서 눈사람이 되어버린 이의 어깨에 올려주는 외투 같은 말, 두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프지 않게 들어온 주삿바늘 같은 말. “그래, 그럴 수 있지.” _113쪽,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에서 불량식품을 달고 살던 나는 불량의약품이라면 치를 떠는 약사가 되었다. 간직했던 걸 잃어버린다는 건 언제나 사람을 조금 슬프게 하지만, 불량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약사는 뭔가 이상하니 아쉬움은 뒤로하기로 한다. 그래도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교와 병원을 거쳐, 약국에 오기까지 내겐 수많은 단어들의 새로운 뜻이 생겼다. 약은 물론이고 책임이라든가 도덕 혹은 돈이라는 단어에 이르기까지 선망의 장소에 있었던 때와는 달리 새로운 단어의 뜻들을 손에 넣게 되었다. _138쪽, 〈‘불량’이라는 글자〉에서 특히 말해줄 것, 상대가 미리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먼저 말해주는 게 중요하다. 이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에게 “어이구, 거긴 넘어지기 쉬운데 조심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조롱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말해주는 일은 “나는 당신을 이렇게나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와 같다. _140쪽, 〈말하지 않아도 아나요〉에서 “근데 오빠, 여기 딸기약 들어있어?” 큰일이다. 어떻게 하지…. “응, 있으니까 걱정 마. 그렇죠, 선생님?” 아뿔싸. 가만히 있던 내게 공이 넘어왔다. 순간 약사윤리강령 5조를 준수해서 진실만을 말할 것인지, 아니면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거짓말을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애초에 없는 걸 있다고 하면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환자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까지 3초를 넘기면 안 된다. 망설이는 약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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