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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사와 자연을 균형 있게 삶에 접목한 수필집 ‘풍경을 훔치다’는 풍경첩風景帖이라는 독특성을 갖추었다. 무엇보다 풍경과 어긋나지 않게 생멸을 거듭하는 사람꽃을 글의 오브제로 차용하여 작가적 분盆을 완성한 것이 오민숙의 수필 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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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를 터전으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해온 오민숙 작가가 두 번째 수필집 《풍경을 훔치다》를 상재하였다. 작가는 2005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한 후 《콩잎에 자리젓》 발간에 이어, 두 번째 수필집 《풍경을 훔치다》에서는 이십 년 가까이 묵힌 농익은 서사를 펼치고 있다. 수정처럼 결정結晶화된 작가의 인생록은 마치 회화처럼 붓질하고 조각처럼 다듬어낸 작품처럼 생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풍경을 훔치다》가 작가가 살아온 ‘시간’의 기획전답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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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풍경을 훔치다 시시한 몸짓 15 오늘 16 풍경을 훔치다 19 새벽 하늘 22 제주의 신을 찾아 26 할락산이 웃엄쪄 30 자유인, 보헤미안을 떠올리며 34 길 위의 봄 38 2부 시간 풍경 녹슨 것은 녹슨 대로 45 시간 풍경 47 염색하는 날 50 낼 모레 환갑 54 부메랑 56 질투 59 행복 연습 63 3부 사람 풍경 오묘한 춤 69 좀 아파도 괜찮아 70 귀양풀이 73 부자로 사는 법 77 그녀, 나의 어머니 80 카페에서 84 아이와 어른 88 기억하는 방식 91 미안하다 95 시 유 어게인 99 중산층 별곡 104 제주여성 김만덕 나눔과 도전의 길을 열다 107 4부 돌담 풍경 오뉴월 들녘 117 핑계 119 밑천 122 돌담 풍경 126 이부로二部路왓 130 바람의 섬, 우도를 가다134 시로 물들다 139 절로 가는 길 143 독도를 다녀오다 148 5부 세상 풍경 무단조퇴 155 세화 그곳엔 156 미밋동산 161 병맛 나는 스노비즘 165 사랑해도 될까요 175 문 너머 문 180 자리돔구이 183 멜국 188 더불어 바이러스 191 마늘 까는 여자 195 生과 死를 조망하며 삶을 긍정하는 오민숙의 수필 세계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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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을 훔치다 추석 연휴의 끝자락, 집을 나섰다. 모처럼 자유로운 나들이다. 충분히 지지고 볶아야 나의 추석은 끝난다. 음식도 그렇지만 지지고 볶아대는 속내도 편치 않긴 매한가지다. 동료들과 숲길을 걸으며 하하, 호호거린다. 목젖까지 보이도록 웃어젖히는 게 다들 활기찬 모습이다. 어린 학생들도 곶자왈 탐방에 나섰는지 여기저기서 재잘댄다. 습지에 이르니 속살 비벼대는 속새 위로 때 이른 잠자리가 가벼운 비행을 뽐낸다. 웃는 소리, 재잘거림, 비벼대는 소리, 비행하는 모습이 또 하나의 세상 풍경으로 남는다. 길엎 모퉁이에 피어 있는 꽃생강을 한 컷 담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이다. 아름답기론 양귀비꽃을 당할 게 없다지만 창공을 향해 우뚝 솟은 순백의 꽃생강엔 비할 바 아니다. 맛을 본다며 기어이 잎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달콤하다. 꽃차로 만들어 볼까 하여 정보를 찾아봤더니 식용은 아니라 한다. 그러면 어떤가. 눈만 아니라 마음마저 홀리고 있으니 최고인 게지. 잠깐 쉬어갈 요량으로 가까운 찻집으로 이동했다. 연휴여서일까. 빈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문 닫는 시간까지 기다린대도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어찌어찌 구석에 앉아 또 하하, 호호한다. 오래된 목재를 사용한 인테리어 덕인지 아무 데나 드러눕고 싶을 만큼 편안하다. 통창을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올 듯한 바깥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쏟아 넣었을 주인의 묵직한 시간이 읽힌다. 자유의 날, 저물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지지고 볶는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마침 옆자리 동료가 메밀밭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메밀밭으로 달렸다. 메밀꽃에 제주밭담은 최고의 조합인가. 아찔하다. 하얀 메밀꽃 사이로 맞춤하게 쌓여 있는 오종종한 밭담이라니.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랐다. 지천인 꽃 속을 돌담 따라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하며 도저到底한 풍광에 넋을 놓는다. 하얀 메밀꽃 천지가 까만 두 눈동자에 조그맣게 박힌다. 생각을 멈추고 눈으로, 코로, 피부로, 온몸으로 풍경을 담는다. 서서히 손을 움직여 진저리치듯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메밀밭의 고요한 풍경 위로 노을이 번진다. 노을을 등진 나도 풍경이 되었다. 수채화처럼. 새벽하늘 바삐 현관을 나선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컴컴하다. 센서 등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현관을 통과했다. 오전 7시, 비로소 나의 출근길이 열린다. 한겨울 아침 해는 아직 잠이 덜 깬 걸까. 구름 속에서 하품하며 눈 비비고 있는 모양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더디 뜨는 해를 독촉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아스팔트에 깔린 어둠을 가르며 차는 시내를 벗어나 동쪽으로 씽씽 달린다. 아침을 맞으러 나선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여러 대의 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제 길을 달린다. 일터에서 아침을 맞기 위해 새벽 찬 공기를 밟는 것이리라. 동트는 시각이 늦은 겨울엔 운전의 목적이 일터인지 아침맞이 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직장인 대부분에게 ‘일’과 ‘아침’은 한 묶음일 테지만 말이다. 달리고 또 달려도 이를 수 없는 곳, 빈 하늘을 향해 시선을 매달아본다. 다다를 수 없는 하늘을 아쉬워하며, 길 위의 나는 또 어느 지점에선가 차를 멈추겠지. 동이 막 트려는가. 해가 드디어 잠에서 깨나 보다. 붉은 색조를 스카프처럼 길게 두른 하늘이 제주섬을 감싸고 있다. 검붉은 구름을 헤치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일출의 웅장한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서쪽 하늘 한쪽으로 보름달이 동그랗게 떠 있다. 동쪽 하늘의 해보다 ...희미하긴 하지만 엇비슷한 크기다. 이를 어쩌나. 동쪽엔 해, 서쪽엔 보름달이다. 꿈처럼 어리둥절해졌다. 새벽길을 한두 번 다닌 것도 아닌데, 처음 보는 광경이다. 낮과 밤, 동시에 한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 해와 달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이들은 함께다. 달의 밝기가 해의 밝기에 미치지 못한 탓이었나. 해가 진 후에야 달이 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하늘의 해와 달은 늘 함께였는데 오로지 해만 바라봤던 게다. 그리 길들었기 때문일까. 해와 달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킬 뿐인데,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했었다. 이분법적 사고가 비단 이뿐일까. 흑백 사이엔 그들만이 아니라 여러 중간색이 있어 세상을 다채롭게 물들일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두 개의 지점인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도 많은 사람과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 옳고 그름도 정반正反을 포함하여 그들 사이에 있는 다양한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일, 그 속성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분화된 흑백논리에 갇힌 채 고집스럽게 눈감지는 않았던가. 다양성을 회색이라 폄훼貶毁하지는 않았던가. 생각과 행동은 놓여 있는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해와 달의 위치에 따라 아침이 되기도 하고, 밤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백을 넘긴 편협한 나의 속성이 동서東西에 공존하는 해와 달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자신을 열어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외진 생각의 골짜기에 갇혀 뭇 사연을 흔쾌히 품지 못했다. 아둔한 편견을 되돌아보며 회초리를 든다. 후련한 순간이다. 한겨울 아침, 차디찬 바람이 모질다. 오늘도 몫(일)과 목소리(권리) 때문에 생기는 충돌은 여전한 듯 심심甚深한 뉴스를 전한다. 이 또한 하루의 모습이다. 모진 날씨처럼 속 시끄러운 인간사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잖은가. 일터로 향하는 아침 행렬이 새벽하늘의 해와 달처럼 평상심을 유지한다면, 몫과 목소리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깨닫지 않을까. 공존하는 몫의 연대가 다양한 목소리를 품을 수 있는 완충적 지대가 되듯 말이다. 함께 모습을 드러낸 해와 달은 오늘도 무심히 새벽하늘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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