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핸리 모턴 스탠리의 『흑인 동료들이 들려준 기이한 이야기(My Dark Companions And Their Strange Stories)』(New York:Scibner, 1893)를 편역한 것이다. 핸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1841-1904)는 영국에서 출생하였다. 1859년 미국으로 이주한 스탠리는 남북전쟁 참전 이후 뉴욕 헤럴드(New York Herald) 특파원으로 활동하였고, 1871년부터 1872년까지 중앙아프리카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행방불명이 되자 그를 구하는 원정대에 합류해 잔지바리와 탄자니아를 여행하게 되었다. 이후 1890년까지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20여 년동안 아프리카를 탐험하였다. 탐험하는 동안 스탠리는 아프리카 현지인을 데리고 다녔는데, 밤이 되면 모닥불 근처에 둘러앉아 그들이 들려주는 고향의 전설이나 신화를 듣는 것이 주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가 들은 이야기 중에서 흥미로운 것만 묶어서 발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서문에 따르면, 원정을 하는 동안 밤마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듣는 모임은 1875년부터 시작되었다. 모임에는 누구나 와서 듣고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에게는 좋은 옷감을 보상으로 주기도 하였다. 스탠리는 17년 동안 들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메시지가 있고 중앙아프리카인들의 지혜와 구술 문학성을 보여준다고 판단한 이야기만 뽑아 책으로 출간하였다.
책에는 여러 명의 아프리카 친구들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상황까지 적어두어, 이 이야기들이 구술로 전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신이 최대한 들은 그대로 적으려고 했지만 이야기하면서 짓는 그들의 표정이나 흉내 내는 몸짓까지는 글로 재현하기 어려웠다고도 밝히고 있다. 스탠리는 아프리카 친구들이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수줍어하고 기억나는 이야기가 없다며 꺼리다가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이 책은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아프리카인이 직접 들려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번역하는 데도 아프리카인들의 구술 특징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였다. 다만 독자인 한국인들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되어야 하므로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힌다.
역자 서문 1
인간을 창조한 달 5
사자를 이긴 염소와 뱀 23
연못의 여왕이 된 이조카 32
코끼리와 사자의 힘겨루기 47
검비 왕과 돌아온 딸 57
주술사 마팔라를 물리친 마란다 71
키틴다와 그녀의 영리한 개 76
왕자에게 달을 따주려한 왕 81
우간다의 왕이 된 키미에라 90
표범의 두 하인 개와 자칼 116
표범과 개 사이가 멀어진 또 다른 이유 136
교활한 거북과 두루미 142
맹수를 무찌른 꼬마 키바티 159
꾀 많은 토끼와 코끼리의 동업 174
탐험가 사루티의 모험담 185
소년 키네네와 고릴라 197
코끼리의 도시 207
태양이 뜨는 곳을 찾아서 218
인간을 동족으로 여긴 친절한 고릴라 224
인간을 창조한 달
이 전설은 1883년 12월, 바소코(Basoko) 출신의 마타게자(Matageza)가 들려준 것이다. 바소코 부족은 아루위미(Aruwimi) 강이 콩고(Congo) 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얌부야(Yambuya) 급류가 있는 곳까지 오른쪽 강둑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이다. 그는 우리 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는데, 입을 잘 열지는 않았다. 어느 날 모닥불 주위로 어색한 침묵이 계속 흐르자 텐트 관리를 맡고 있는 바루티(Baruti)라는 청년이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부추겼다. 마타게자가 할 이야기가 없다고 버티자 바루티가 말했다.
“마타게자는 똑똑해요. 달이 인간을 처음 만들었다는 전설을 마타게자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에 모든 시선이 마타게자로 돌아갔고 “마타게자! 마타게자!”라며 외쳤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몇몇은 모닥불 앞에서 불만 쬐고 있는 그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끌고 나왔다. 우리는 그에게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좋은 옷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못 이기는 척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마타게자는 우리가 처음 들어보는 인간 창조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아주 아주 옛날, 세상의 모든 땅은 단물(sweet water)로 덮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이 마르고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풀과 약초, 식물이 땅 위에 돋아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식물은 크고 작은 나무로 자랐고, 물은 개울과 강, 연못과 호수로 변했다. 비가 내리면 개울의 강물이 흘러내려 연못과 호수의 물은 항상 깨끗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은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연못 가에 나타났다. 두꺼비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살았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물에 있는 어떤 성분이 두꺼비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늘에는 달이 은은한 빛을 비추며 떠 있었고, 달빛이 비치는 대지 위에는 두꺼비 한 마리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과 두꺼비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달이 두꺼비에게 말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땅에서 나는 열매를 먹고 살 수 있게 하겠습니다. 땅에는 그 생명체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풍부하니까요.”
달의 제안을 두꺼비가 가로챘다.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내가 만들겠습니다. 그 생명체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당신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어요, 나는 땅에 속해 있고, 당신은 하늘에 속해 있잖아요.”
“물론 당신이 그 생명체를 만들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만든 생명체는 잠깐 살다 죽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창조하면 나의 좋은 본성을 갖게 되겠지요. 우리가 만든 피조물이 고통받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면 슬프지 않겠어요? 그러니 두꺼비님, 창조의 권한은 내가 가져야 해요. 그래야 피조물이 완전함과 영생을 누릴 수 있어요.”
“달님, 나도 당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있으니 질투하지 말고 그냥 내 방식대로 하게 해줘요. 내가 생각해 온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게요. 생각을 정말 많이 해봤어요. 그러니 제발 내 생각대로 하게 해줘요.”
“당신이 그렇게 피조물 생각을 많이 한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생각을 바꾸고 내 말을 따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그들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할 수 있어요. 나 자신 조차도요. 당신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면 당신처럼 허약한 생명체로 만들어질 것이고, 당신과 같은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달님, 화가 나셨군요. 그렇다고 내가 당신 말을 따르진 않아요. 땅에 사는 생명체는 나의 피조물로 만들 겁니다. 하늘에 떠있는 당신...은 당신 왕국이나 신경 쓰세요.”
그런 말이 오고 간 다음 날, 달님이 하늘에서 잠시 사라졌다. 그 사이에 두꺼비는 거대한 수정체를 만들어 잘 키운 후, 자신을 닮은 두꺼비 같은 남자와 여자 한 쌍을 만들었다. 이들이 땅을 밟고 사는 우리 인간의 최초 형상이었다. 달은 분노에 차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자신이 가져야 할 창조의 특권을 두꺼비가 가져갔다고 생각한 달은 두꺼비를 벌주려고 잠시 하늘을 비웠다가 다시 나타나 두꺼비가 있는 연못으로 갔다. 그 위에서 눈부시게 강한 빛을 내뿜으며 달이 외쳤다.
“정말 끔찍하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진정하세요, 달님, 나는 그저 내 권리를 행사한 것입니다. 나도 그럴 권리가 있어요.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요. 이미 다 끝난 일입니다.”
“당신은 당신과 내가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자만심이 당신의 지혜를 흐리게 하고, 내가 경고했던 것을 잊어버리게 했어요. 설령 내가 당신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을 주었다고 해도 당신은 그보다는 잘했어야 했어요. 당신은 나보다 더 열등한 존재예요. 그러니 당신이 만든 것은 나보다 못할 수밖에 없어요. 당신이 만든 생명체가 가엽군요. 분별력도 없고, 통찰력도 없고,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는 단순한 동물에 불과해요. 그들은 보고, 숨 쉬며 살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생명은 한 번 살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불쌍해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겠군요. 내가 긍휼한 마음으로 당신이 만든 저 피조물을 조금이라도 개선 시켜보겠습니다.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고, 지능을 줘서 괴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존재하는 한, 당신에 대한 내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아 저들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으니, 당신이 만든 저 생명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먼저 사라져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달은 이렇게 말하고 두꺼비에게 다가가 강렬한 열기를 내뿜어 두꺼비를 태워죽였다. 이후 달은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타오르는 분노의 열기를 식혔다. 웅덩이의 물은 너무 뜨거워져서 마치 불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같았다. 달은 쉭쉭-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겨 있었다.
잠시 후 달은 웅덩이 밖으로 나와 두꺼비가 만든 생명체를 찾았다. 마침내 남자와 여자를 발견하고 가까이 오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두려워하며 숨어버렸다.
이 모습을 보고 달이 미소를 지었다. 얼룩이나 흐릿한 부분 하나 없이 맑고 환한 빛을 발하며 달은 두꺼비가 만든 생명체들이 자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만족해하며 말했다.
“가여운 것들. 두꺼비는 내게 많은 일을 남겨두었구나. 저들을 땅 위에서 살아갈 최초의 생명체로 만들려면 해야 할 일이 많겠군.”
이렇게 말한 달은 생명체를 붙잡아 자신이 목욕했던 물웅덩이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한때 두꺼비의 집이었던 곳이었다. 달은 그들을 물속에서 부드럽게 씻기고, 도예가가 도자기를 빚을 때처럼 이리저리 만져서, 지금 우리와 같은 남자와 여자처럼 만들었다. 남자는 넓은 어깨와 두꺼운 가슴, 커다란 골격, 단단한 몸집을 갖게 되었다. 여자는 가슴팍은 더 얇고 허리는 가늘게 만들었고, 몸 가운데에 있는 엉덩이를 가장 넓고 풍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고 나서 달은 남자는 바테타(Bateta), 여자는 한나(Hanna)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바테타야, 이 땅과 나무, 약초와 식물, 초원을 보아라. 전부 다 너와 네 아내, 한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너와 한나가 한 몸이 된 후에 낳게 될 너의 자녀를 위한 것이다. 내가 너를 위대한 존재로 다시 만들었다. 너는 필요한 것을 찾아내어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이런 판단력과 분별력을 준 이유는 해로운 것은 피하고 유익한 것은 잘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네가 지혜로워지려면 반복해서 훈련을 꼭 해야 한다. 지혜로워질수록 너는 이 땅의 소산물을 더 풍요롭게 취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와 네 아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다. 두꺼비가 너를 위해 처음 만든 것들은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너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다. 가장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도끼와 불이다. 너는 나무를 가지고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나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재료지. 그것을 패려면 도끼가 필요하단다. 이제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좀 만들 테니 잘 지켜보아라.”
달은 물웅덩이에 있는 검은 진흙과 물을 섞어서 짓이기고 주물러서 둥근 형태의 그릇을 만든 다음 불에 구워 바테타와 한나에게 주었다.
“이것은 조리할 때 쓰는 그릇이다. 여기에 물을 먼저 부은 다음, 무엇이든 먹고 싶은 것을 안에 넣어라. 그리고 불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시간이 좀 지나면 물이 끓으면서 음식이 익어 먹을 수 있게 되지. 뿌리나 구근 같은 채소도 이렇게 익히면 맛도 좋아지고 영양가도 훨씬 많아진단다. 겉으로 봐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 중에 무엇이 진짜 먹을만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중요한 문제란다. 만약 무엇이 해로운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면 내게 물어봐라. 내가 바로 가르쳐주마.”
첫 번째 가르침을 주고 하늘로 올라간 달은 높이 올라 바테타와 한나,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었다. 달빛은 외로운 두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달이 하늘로 올라가며 위치가 바뀌자 그 모습을 보면서 바타테와 한나도 일어나 달을 따라갔다. 그러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가 쓰러져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쓰러져 있는 나무의 둘레는 높이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나무를 따라 걸어가 보니 끝에 둥근 구멍이 있었다. 커다란 동굴처럼 높아서 그들은 몸을 굽히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뒤, 잠이 온 바테타는 바닥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아내 한나가 나뭇가지를 올려놓자, 불은 활활 타오르며 커다란 나무 둥지의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 바테타가 한나의 손을 잡고 나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고 둘은 같이 바닥에 누웠다. 하지만 바닥이 딱딱해서 이내 불편함을 느꼈다. 바테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나무 근처에 있는 식물의 크고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잔뜩 따서 돌아와 바닥에 펼쳐서 두툼하게 깔았다. 한나가 그 위에 올라가 구르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부드럽고 매끄럽게 깔린 잎사귀 위에서 기분이 좋아진 한나는 팔을 활짝 벌려 외쳤다.
“바테타, 와서 내 옆에서 쉬어요.”
두꺼비가 만든 형편없는 미완성 작품이었던 인간을 달이 너무나 완벽하게 개선해 주어서 비록 만들어진 생애 첫날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성숙한 남녀였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한나는 쌍둥이를 낳았는데, 한 명은 아들이고 다른 한 명은 딸이었다. 그들은 바테타와 한나를 꼭 빼다 닮았다. 바테타는 너무 기뻐서 아내인 한나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바테타는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고 아이들을 배불리 먹게 해줄 만한 것들을 정신없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내 한나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바테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오 달님이시여, 당신이 만든 바테타의 말을 들어 주소서! 아내가 기진맥진해 누워 있는데, 입맛이 까다로워져서 맞춰주기가 어렵습니다. 태어난 아이들은 아내 몸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다 보니 아내의 힘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습니다. 오 달님이시여, 지상으로 내려와서 그녀의 입에도 맞고 힘도 생길 수 있는 과일이나 약초가 무엇인지 보여주소서.”
구름 뒤에 숨어 있던 달이 바테타의 소리를 듣고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나와서 말했다.
“그래, 바테타야! 내가 너를 도우러 왔다.”
달이 가까이 다가오자 바테타는 황금빛 바나나 열매를 달에게 보여주었다. 바테타와 그의 아내가 첫날 밤 동굴 바닥에 깔았던 잎이 바로 바나나 잎사귀였다.
“오 바테타, 그 과일의 향기를 맡아 보아라. 향기가 어떠하냐?”
“향기롭고 달콤합니다. 오 달님이시여, 달콤한 향기처럼 몸에도 좋다면 아내는 무척 좋아할 겁니다.”
달은 바테타에게 바나나 껍질을 벗겨 먹어보라고 하였다. 망설이지 않고 바나나를 먹어본 바테타는 그 맛에 놀라면서 아내에게 갖다줘도 되는지 물어본 후 집으로 가져갔다. 한나도 바나나를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바로 또 이렇게 말했다.
“달님에게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줘요.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느라 힘이 다 빠졌는데, 이것만으로는 힘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바테타는 바깥으로 나가 한나가 말했던 부탁을 들어 달라고 달님에게 빌었다. 달님은 바테타에게 주위를 둘러보고,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들소가 있어요.”
“바로 그거야, 그리고 그 뒤에는 뭐가 있지?”
“염소가 있어요.”
“역시 잘했어. 다음엔 또 뭐가 보이지?”
“영양이 보입니다.”
“대단하구나, 바테타. 그 사람 다음에 또 뭐가 있지?”
“양입니다.”
“양, 옳지 좋아. 자 그럼 이제 눈을 들어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봐라.”
“닭이 보입니다.”
“정말 잘 말해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고기로 먹으라고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들소는 힘이 세고 사나우니 건들지 말아라. 그러나 염소와 양, 닭은 네가 먹을 것을 주면 가까이 와서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숲에는 동물들이 많단다. 네가 풀을 먹을 수 있게 해주면 네 근처에 와서 지내는 동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염소, 양, 닭 어느 것이든 잡아서 발을 묶고 도끼로 그 머리를 잘라라. 피는 흙에 버려야 하지만 가죽 아래에 있는 살은 먹을 수 있단다. 그것을 불 위의 그릇에 담아 끓이거나 익혀라. 어서 서둘러라 바테타, 그것이 바로 네 아내가 간절히 원하는 고기이고, 한나가 힘을 회복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 어서 가서 잡아먹어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다음날이 되었다. 바테타가 나무 둥지에서 나와 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나무 꼭대기 위에 커다랗고 둥근 모양의 덩어리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덩어리는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밝게 타오르면서 하늘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전에 어렴풋하게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에 걸려있는 이상한 빛 때문에 바테타는 달이 비추는 빛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밝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와 나뭇잎이 밝은 빛의 외투를 입은 것 같았다. 그 아래에는 희미한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가 있는 곳은 달이 떠있을 때보다 더 시원했다. 나뭇잎 아래로 환한 빛이 들어,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롭고 신기한 생명체가 보였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중간 정도의 크기였으며, 작은 것도 많았다. 처음 보는 변화에 깜짝 놀란 바테타가 소리쳤다.
“여보, 한나,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와서 이 이상한 광경을 봐. 너무 놀라운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바테타의 말을 듣고 한나가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한나 역시 눈부시게 밝은 빛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수많은 동물이 그늘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바테타, 이 변화는 무슨 징조지요?”
“나도 몰라, 한나. 달님이 다녀간 후로 다 생긴 일이야.”
“그렇다면 바테타, 달님을 불러서 이 변화가 무슨 뜻인지 물어봐요. 당신이나 아이들에게 무슨 해가 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무서워요.”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는 달님의 지혜가 필요해.”
바테타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달님을 찾아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그늘에 모여 있던 모든 살아있는 것들도 전부 위를 향해 소리를 내 울었다. 사자의 우렁찬 소리부터 쥐의 찍찍거리는 소리까지 다양한 울음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이어졌다. 소리는 전부 달랐어도 의미는 똑같았다.
“달님이시여,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의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우리를 만든 당신만이 우리의 지혜를 끌어내 이 변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달을 향해 빌자, 하늘 저 멀리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이 새로운 빛의 밝기가 희미해질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빛이 사라지면 내가 너희에게 가서 설명해 주겠다.”
그래서 그들은 그 거대하고 신비로운 빛이 내뿜는 따뜻함이 약해지고 사라질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어 그들이 처음 보았던 곳과 반대편으로 그 거대한 빛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빛이 사라진 자리에 달이 나타났고, 온 하늘에 달이 낳은 수많은 작은 빛이 보였다.
바테타가 한나와 아이들에게 달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부드럽게 빛을 발하는 달의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달은 미소를 지으면서 하늘에서
윤유석 [저]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이야기 스토리텔링』(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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