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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자 : 삼전도 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
계승범 ㅣ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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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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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9812054/116981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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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7년 병자호란 패배와 1644년 명제국의 멸망 하늘이 무너지고 인간의 도리마저 잃어버린 세상에서 조선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1636년 12월, 한겨울 위태로운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은 무엇이 두려웠기에 그토록 척화를 외쳤을까? 청군이 포탄을 퍼부으면 성벽은 곧 무너질 것이고, 포탄을 퍼붓지 않으면 성안 사람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것이었다. 어느 한 곳에서도 근왕병의 봉화가 피어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인조는 1637년 정월 초하루에 백관을 거느리고 북경에 있는 명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대체 무엇이 그들이 군신의 예를 다하도록 이끌었을까? 그리고 그해 1월 30일, 마침내 임금은 삼전도로 나아가 오랑캐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후 중원의 황제는 오랑캐에게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적이 천하를 유린하여 인과 의가 끊어지고 충과 효가 무너진 세상에서 이제 조선은 어떤 나라이며,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했나? 『아버지의 그림자』는 조선왕조의 국가정체성이라는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조선의 국가정체성은, 곧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던 양반 엘리트 지배층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였음을 분석하고, 그런 정체성이 당대의 양반 지배 구조와 직결되어 있었음을 여러 측면에서 밝힌다. 또한 오랑캐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삼전도 항복의 후유증이 조선의 국가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한중 두 나라의 다양한 사료를 교차 검토했고, 그 속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록을 조작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 밖에도 1620년대에 임금과 신하가 목숨을 걸고 맞부딪친 주화 대 척화 이념 논쟁부터 1690년대에 온 나라가 국운을 걸고 뛰어든 의리 현창 사업까지, 책 속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살아남아야 했던 ‘새로운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 병자호란, 언제까지 한국사의 비극으로만 둘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병자호란에 대한 이해는 매우 평면적이다. 큰 틀에서 보면 16세기 말에 대규모 국제전인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명이 구축해놓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 틈에서 만주가 성장하면서 패권이 교체되었다. 병자호란은 만주의 후금/청이 중원의 명과 전면전에 나서기 전에 후방의 위협을 제거한 부수적 사건으로서, 이상의 전제 안에서 조선의 상황과 입장을 분석하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 한국사 관점에서 이 전쟁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가 실패하고 결국 오랑캐의 침략을 받게 된 사건’으로, 무엇보다 임금이 성 밖으로 끌려나와 땅에 아홉 번 머리를 찧으며 적에게 무릎 꿇은 ‘삼전도의 굴욕’은 1910년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한국사 최악의 순간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학계에서는 당대의 국제 질서 변동이라는 외부 요인에 주목하여 조선과 청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 출간된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구범진, 까치)은 침공의 당사자인 홍타이지(청 태종)를 주인공으로 삼아 청의 의도와 전황을 정밀하게 재현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계승범의 새 책 『아버지의 그림자』 또한 전쟁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홍타이지’를 지목한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의 앞과 뒤를 더욱 넓고 치밀하게 연결한다. 그는 광해군 재위 후반부에 조정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국왕과 신료 사이의 이념 논쟁에서 시작하여 주화론과 척화론이 어떻게 격돌했는지를 밝히고, 병자호란 시기에 청 태종과 인조가 주고받은 국서를 놓고 일어난 기록 변조 사건과 숙종 시기에 임금과 사대부가 함께 벌인 기억 조작 사건을 순서대로 추적한다. 이를 통해 임금보다 더 중요하고 오랑캐보다 더 두려웠던, 그래서 조선의 종묘사직을 무겁게 짓눌렀던 바로 ‘그것’의 실체를 역사의 전면에 꺼내놓는다. 효치국가의 최종 모델, 군부·신자 관계 먼저 계승범은 광해군 재위 후반부에 외교 노선을 두고 벌어진 척화 대 주화 논쟁의 양상을 주목한다. 1619년 광해군은 도원수 강홍립 이하 1만 4000명의 조선군을 요동으로 보내 명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사르후 전투에서 명군은 후금군에게 궤멸되었고, 조선군도 절반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은 명대로, 또 후금은 후금대로 조선의 선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후금의 압박은 갈수록 거세졌고, 회담 중에 조선의 사신이 구금되고 역관이 살해되기까지 했다. 광해군은 후금과 대화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책이라고 여겼으나, 조정 신료들은 임금의 명을 거부하고 오히려 “변방의 일은 장수에게 일임하고 국왕은 간여하지 말라”거나 “명 황제에게 죄를 짓느니 차라리 성상(광해군)께 죄를 짓겠다”라고 능상하길 서슴지 않았다. 양쪽의 갈등은 1623년 인조반정, 즉 신하가 무력을 동원하여 임금을 쫓아내면서 종결되었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광해군의 주화론과 신료들의 척화론이 정사(正邪) 논쟁 구도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앞서 그는 『모후의 반역』(역사비평사, 2021)에서 광해군 대 인목대비 폐위 논쟁이 마찬가지로 인조반정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 뒤 “이제 효가 모든 가치의 우선순위가 되었고 조선은 효치국가의 길로 들어섰다”라고 의의를 밝혔다. 그리고 이번 책에서는 효치국가의 구조를 조선과 명의 국가 관계로까지 확대한다. 그 주장의 핵심은 황제(君)는 곧 아버지(父)이고 임금(臣)은 그의 자식(子)이 되는 군부·신자 관계이다. 나는 조명 관계를 중국적 질서에서...
  • 책머리에 - 05 1장 프롤로그: 왜 국가정체성 문제인가? - 13 2장 광해군 대 말엽 외교 노선 양상과 정사 논쟁, 1618~1622 - 29 후금과의 국서 교환 문제 - 32 요동 난민과 징병 칙서 - 42 존호 문제 - 55 정사 논쟁의 의미 - 59 3장 정묘호란의 동인과 목적, 1623~1627 - 63 정변 후 조선과 후금의 관계 -68 맹약의 내용으로 본 침공 목적 -73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조선 정책 - 82 침공의 의미 - 90 4장 척화론의 양상과 명분, 1627~1642 - 93 정묘호란과 척화의 이유 - 96 병자호란과 척화의 논리 - 102 존주의 모습들 - 114 척화론의 의미 - 119 5장 전쟁 원인의 기억 바꾸기, 1637~1653 - 131 국서의 교체와 ‘이상한’ 축약 - 135 침공 이유의 변개 - 138 병란의 귀책사유 변경 - 147 기록 조작의 의미 - 156 6장 북벌론의 실상과 기억 바꾸기, 1649~1690 - 161 효종 대 북벌 논의의 실상 -164 나선정벌 조선군 사령관의 심정 - 170 북벌의 성공 사례 만들기 - 181 기억 조작의 의미 - 185 7장 에필로그: 조선의 국가정체성과 ‘아버지의 그림자’ - 191 척화론: 조선은 왜 질 줄 알면서도 전쟁을 불사했을까? - 195 자구책: 역사 기억의 조작과 ‘조선중화’라는 자기...
  • 현대인이 보기에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조건 싸우자는 주전, 곧 척화론이 헛된 명분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다수의 위정자에게도 그것이 과연 헛된 명분론에 지나지 않았을까? 무엇과 대조해 볼 때 헛되다는 얘기인가? 조선왕조라는 나라를 기준으로 볼 때 헛되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항상 나라를 가장 중시하는가? 목숨이나 명예, 재산이나 기득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나라야 망하건 말건 자기 잇속을 먼저 생각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따라서 척화론을 헛된 명분론이라 몰아세우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판단 기준과 논증이 필요하다. 국가를 개인으로 축소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목숨을 기준으로 삼아 헛되다는 뜻인가? 하지만 지금도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자살률은 한국이 세계 1등인 지 벌써 오래다. 그렇다면 자살은 모두 헛된 행위일까? (「책머리에」, 6쪽) 솔직히, 조선 후기 정치·지성사의 흐름은 병자호란이 남긴 충격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그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자기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벌이니 소중화니 하는 시대적 담론은 삼전도 항복과 명청 교체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자구책의 대표적 사례였다. 엄밀히 말해서, 조선왕조는 수명을 다하고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갈 때까지도 후유증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항복의 후유증이 그토록 오랫동안 심각하게 작용한 이유는 그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날 치욕 정도가 아니라, 조선왕조의 국가정체성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라는 전쟁 그 자체보다는 삼전도에서 행한 항례가 조선 조야에 훨씬 더 크고 깊은 충격을 주었다. (「1장. 프롤로그: 왜 국가정체성 문제인가?」, 22쪽) 1622년의 칙서 거부 사건은 광해군의 외교가 은밀하게 명을 속이는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명을 기피하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의미했다. 이 시기 광해군의 태도는 꽤 단호하여, 칙서를 아예 받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 사신들이 받아 온 칙서의 영칙례를 자꾸 연기하며 사신과 칙서를 영은문 밖에 무한정 머무르게 하였다. 정변을 맞아 강제 폐위당할 때까지도 두 통의 칙서를 5개월이 넘도록 받지 않고 있었다. 조선 역사에서 칙서를 이렇게 오랫동안 도성 밖에 방치한 왕은 오직 광해군뿐이다. 감군이 한양에 머물던 바로 그 시간에도, 황제의 징병 칙서는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후금에는 우호적인 답서를 보내라고 독촉한 광해군의 태도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2장. 해군 대 말엽 외교 노선 양상과 정사 논쟁, 1618~1622」, 52~53쪽) 조선의 사대부는 도통이니 학통이니 종통이니 하며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통을 따지는 주자학 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그에 대한 평가가 정론과 사론으로 갈렸다면, 그 문제는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기 어려운 사안임을 뜻하였다. 대명 사대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조선 양반 엘리트의 눈에 ‘중립’은 그 자체로 군부의 나라에 등을 돌리는 패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문제의 핵심은 정책 대결이 아니라 조선의 ‘국가정체성’ 논쟁이었다. 또한 이것은 최근 한국 사회의 한미 관계와 한일 관계 논쟁 및 대북 정책 논쟁과도 흡사한 면이 있다. (「2장. 해군 대 말엽 외교 노선 양상과 정사 논쟁, 1618~1622」, 61~62쪽) 누르하치는 서부 전선에서 명과 대치하는 중에 후방의 조선을 공격한다면 조선의 태도도 더욱 분명해질 테고, 그리하여 앞뒤 두 개의 전선에 갇히는 꼴이 되면 후금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
  • 계승범 [저]
  • 1960년생으로, 1984년에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서 7년간 역사 담당 교사로 근무했다. 1990년에 공부를 재개하여 서강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 University, UCLA에서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가르쳤고, 2008년부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다. 박사학위논문은 'In the Shadow of the Father'이며, 'The Posthumous Image and Role of Ming Taizu in Korean Politics', '광해군대 말엽 외교노선 논쟁의 실제와 그 성격',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Confucian Perspectives on Egalitarian Thought in Traditional Korea' 등 1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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