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 미국이 선택한 개혁 혁신주의. 어느 시대건 화두는 개혁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젊은 제국'으로 세계사 무대에 급부상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흔히 '혁신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시기 미국의 개혁 정책 속에는 향후 미국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다.
왜‘백색국가’인가
이 책 『백색국가 건설사』는 부제가 말해주듯, 미국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추적한 책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전 분야에서 일어난 혁신주의운동은‘개혁’의 다른 이름이다.
‘개혁’의 사전적 의미는 제도나 기구 등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이다. 미국의 혁신주의는 개혁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운동이었다. 혁신주의 개혁의 본질은‘향상’이었다. 개혁과 향상. 이 둘은 잘 어울리는 말 같지만, 여기에“누구를 위한”이란 수식을 붙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나”라는 문제의식 아래 혁신주의를 추적했고, 그리하여 내린 결론을‘백색국가’라는 한 단어로 함축하여 드러냈다.
‘백색국가’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당시 주요 행사장 중 하나였던‘백색도시White City’에서 가져온 말로, 미 제국이 지향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표상한다. 이 아름다움과 가치가‘백색’이 아닌 것은 배재했음은 물론이다.
미국이 선택한 개혁의 본질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개혁은 철저히 백인 엘리트의 사회적 사명으로 추구되었다. 그들은 개혁 주체였지 대상은 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한 사회정의는 필연적으로 사회통제를 수반했다. 개혁 대상은 곧, 통제의 대상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각 분야에 걸친 개혁 대상은 크게 빈민, 식민지, 외국인, 저능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슬럼개선운동과 백색도시, 만국박람회, 서부개척 및 흑백분리, 이민법, 우생학 등은 이 개혁 대상들을 개선 내지‘향상’시키려 한 혁신주의 개혁의 실체였다.
혁신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
물론, 개혁 주체들은 이 개혁 대상들과 정반대 지점에 선‘이쪽’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마거릿 생어, 제이콥 리스…….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인 루스벨트는 대표적인 혁신주의자로서, 미국의 대외관계사에서는 종종‘제국주의자’로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다루는 혁신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한 몸에 구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뉴욕의 슬럼철거운동과 행정 개혁을 주도한 그가, 대외적으로 미국의 대외 전쟁을 이끌며‘강력한’팽창 정책을 펼친 제국주의자였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혁신주의와 제국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둘 다 최종 목표가‘더 강력하고 위대한 미국의 건설’이었기 때문이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에서 발표된 프레더릭 터너의‘프런티어 이론frontier theory’은 제국의 길로 들어선 미국의‘포고문’같은 것이었다.
백년 전 결정된 미국의 정체성
강력하고, 위대한, 미국의, 건설. 이 낯설지 않은 단어 조합은, 혁신주의가 오늘날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정체성 형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 혁신주의를 관통하는 기본 원리는‘통합과 배제’였다.
본래 국내 정책과 대외 정책은 무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둘 다 하나의 정치체가 지닌 세계관과 이념의 산물로, 동시대의 국내 상황과 국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탓이다. 따라서 혁신주의 시대에 제국주의가 공존했다는 사실에서 혁신주의가 지향한‘새로운 정체성’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그것은‘비미국적인’것을 밀어내고,‘미국적인’것으로 통합하여 새로운‘미국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차례
■ 감사의 글_ 9
■ 서론_ 백 년 전 미국이 선택한 ‘개혁’_ 10
혁신주의운동의 3가지 배경
혁신주의운동의 4가지 목표
미국의 혁신주의 연구
혁신주의와 제국주의의 공존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나
1 오만과 편견의 슬럼개선운동
누가 그들을 ‘다른 절반’이라 불렀는가?
19세기 말 대도시 슬럼가 풍경 _ 31
“다른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_ 35
<뉴욕 공동주택법>에 감춰진 ‘절반’의 진실_ 40
상류층 여성이 주도한 ‘세틀먼트하우스 운동’_ 48
흑인들이 다시 공화당으로 돌아간 까닭_ 59
혁신주의가 거둔 절반의 성공_ 64
2 백색도시 환타지
미국의 도시계획과 정원도시운동
도시계획의 화두로 떠오른 ‘아름다움’_ 69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백색도시’_ 73
고통 위에 덧칠한 아름다움_ 79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지향한 ‘정원도시’_ 86
가든시티의 자본주의화 혹은 미국화_ 94
3 제국주의 전시장, 만국박람회
19세기 후반 미국의 식민 팽창과 타자 만들기
프런티어 이론과 ‘제국’의 탄생_ 101
박람회가 펼쳐 보인 제국주의의 내면_ 107
“정복은 하나님이 내려준 사명”_ 112
필리핀 점령은 미 국민들의 선택_ 117
‘타자’의 서...열화_ 122
필리핀 전시장이 입증한 미국의 ‘문명화 사명’_ 127
4 내부의 타자 만들기
서부 남부 식민지 합병에 작용한 ‘통합과 배제’의 원리
미국사, 끝없는 팽창의 역사_ 137
미국의 꿈을 분배한 <자영농법>_ 140
서부 개척의 논리와 이데올로기_ 144
대법원이 용인한 흑백분리 정책_ 150
흑인 린치에 담긴 미국의 불안과 개혁주의_ 156
도서판례가 확정한 ‘시민권 없는 미 국적자들’_ 162
인종주의와 혁신주의의 결합_ 166
5 ‘이민 천국’의 이민 제한법
인종주의와 배외주의의 산물, 이민법과 국적법
인간 평등 부정한 ‘사회진화론’_ 173
배외주의의 첫 결과물 <중국인 이민금지법>_ 176
가난한 유럽계 이민도 ‘부적합’ 판정_ 181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인종 분류_ 185
전쟁과 혁명이 불러일으킨 공포_ 190
강화된 국적법, 닫힌 ‘대문’_ 195
6 인종 개량의 신화
세계 최고 국가 건설을 위한 ‘자기검열’
‘부적합자’를 강제 거세하는 <단종법>_ 203
우생학과 혁신주의의 잘못된 만남_ 210
계급 인종 차별로 변질된 산아제한운동_ 216
우량아 선발대회의 비밀_ 222
■ 에필로그_ 230
■ 주석_ 238
■ 찾아보기_ 250
박진빈 [저]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사. 대표 논문으로 [전후 미국의 쇼핑몰의 발전과 교외적 삶의 방식] [카트리나 재난이 알려 주는 미국 도시의 현재] [20세기 초 필라델피아의 인종 분리와 흑인 빈민 주거문제]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백색국가 건설사] [도시로 보는 미국사], 옮긴 책으로 [원더풀 아메리카] [빅 체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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