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빛 물빛의 절창을 통해 그리움의 파노라마를 엮어내는 강우식의 시집. 짧은 시가 윤회가 될 수 있음을 예사롭게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는 물의 흐름처럼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 없다. 그대로 흘러가기는 흘러가되 그 소리만큼은 순수를 향한 끈질긴 지향을 감추지 않는다.
‘하늘은 인간의 얼굴이요 자연은 하나의 언어라고 했다’는데, 강우식 시인은 어떤 자연 속에 담긴 풍경을 노래하고 있을까? 시인이 이미 펴낸 바 있는 시집 『바보 山水』에 가을과 봄의 사유를 더하여 도서출판 《고요아침》에서 시집 『바보 山水 가을 봄』을 출간했다.
시집은 제1부 가을 별자리, 제2부 봄처녀로 나뉘어져 있다. ‘가을 별자리’라는 부제가 붙은 제1부에서는 하늘과 가을, 가을볕, 풀밭, 가을 소나기 등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시선이 자연이라는 무대로 옮겨져훨씬 넓고 커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2부 ‘봄처녀’에서는 봄에 대한 단상과, 사유의 깨달음, 자연의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시선의 예민함들이 살아있다. 자연만물의 경이로운 간접체험을 통하여 깨닫고 있는 생명의 환희를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장이지 시인은 발문을 통해 ‘하늘빛 물빛의 절창, 아! 그리움의 파노라마’라고 강우식 시인의 시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물의 얼굴을 한 시인’이라는 표현처럼 시집 곳곳에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순진무구의 설레임과 회귀의 유년을 사는 듯한 물빛 얼굴의 투명함이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하늘’에 대한 지향이 애잔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어느 날/줄기는 보이지 않는데 달려 있는 사과들을 보았다.//집에 들어오니/나를 중심으로 아내와 아이들이/사과들처럼 달려있었다.//가장 안 보이면서도/단단한 줄은 사랑이다.―「사과나무 곁을 지나며」
하늘을 두고/스물로 되돌아가서/꽃씨 하나를/그 푸르름 속에 두나니//꽃씨를 구름으로 묻어주고/비로써 물을 주나니//꽃씨들은/구름으로 덮이지 않고/ 비는 하늘에 스미지 못하여/떨어지기만 하나니.//…//하늘을 두고/마음을 비우고자 하여도/가진 것이 너무 많아/비워지지 않는/쉰 가까운 길목에서/내 그대들에게 이르나니.//하늘을 두고/그대들 나이에 꿈을 일구지 않으면/일생을 우러를 하늘이 없나니.//하늘을 두고/사랑도 하고, 학문도/하늘을 두고 하여서/더도 덜도 말고/하늘만큼 되어라. ―「하늘을 두고」
문밖을 나서면/버들개지에 닿아 솜털을 일으키는/봄바람.//밭두렁 쑥부쟁이에 피어 오르는/아지랑이에도/왠지 스무살 적 어지럼증 나느니.//삼동내 살갗 터지던/가슴팍에도/봄바다 은빛 물결,/‘잔잔히 잔잔히 피가 돌도다.//무엇 때문에 나를 깨우는가/봄의 숨결이여.―「숨결」전문
봄날이면/왠지 아리랑 가락이 떠오르는/봄날이면,/북한 여자의/동정 끝 같은 길을/보리밭 둔덕 길을/나는/자연으로, 자연으로/걸어간다.//그리운사람들이가슴속에너무많아서…그리운사람들이가슴속에너무많아서…. ―「봄 소곡」부분
강우식 [저]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성균관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66년 [현대문학]에 '박꽃', '사행시초(四行詩抄)'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75년 제20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74년 첫시집[사행시초]간행 후[고려의 눈보라](창작과비평사 1977)[꽃을 꺾기 시작하면서](1979)[물의 촌](1986)[설연집](1988) [어머니의 물감상자](창작과비평사 1995) 등의 시집을 간행함. 1983년 제15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7년 제6회 펜클럽문학상 수상. 현재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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