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현 시집 [삐].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외로움이라는 긴긴 밤을 꼬박 새우며 맞는 아침. 박시현은 오늘날, 거의 일상화된 고통을 그만의 투박하고 따듯한 문체로 감싸고 있다.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외로움이라는 긴긴 밤을 꼬박 새우며 맞는 아침.
죽음과 이별. 삶은 그렇게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박시현은 오늘날, 거의 일상화된 고통을
그만의 투박하고 따듯한 문체로 감싸고 있다.
그렇게 그의 시는 아픔이다.
이 아픔을 통해 다른 수많은 아픔들이 치유되길 빈다.
1. 길
네가 오는 방식
모과나무
공장장
틈
나는 못 따라가는 속도
등대
바람을 본 적 있다
고향집
보석 세공사
혀
과메기
사소한 운명
월동
돌고래 쇼
자리끼
고로쇠
너라는 우주에서 길을 잃다
꽃샘추위
거미
그리움 그 지독한 힘으로
길
2. 그런 어른
실크로드에 뜬 마음
문학회 사람들
없는 사람
이불을 버리며
지구의 오르가즘
몽골에 가자
안경을 꺼내며
축제
내가 내 아버지로 태어나면
J에게
삐
그런 어른
어시장
브리즈번의 밤
시인
태성반점
낭만에 대하여
강
분신(焚身)
나의 계획
간현역에서
3. 페루는 지금 몇 시인가요
쥐며느리
취객
천천히 와주라, 봄
다슬기 원룸
봄이 오면
자식 농사
고모
구직
목욕탕에서
당신은 나의 것
존재의 조건
내가 혼자 되는 날
살아있다는 것의 모순
화장터에서
빙고 게임
사랑아 죽어라
철새
사람 섬
네가 고프다
택시에서
페루는 지금 몇 시인가요
4. 폭격기 딱정벌레
사무라이
익숙하다는것
너라는 시간
우표
외발 호랑이
그대가 나를 비운 사이
평소에 있었던 일
서시
폭격기 딱정벌레
유기농 사람
겨울 강
9.5
대감이 ...되다
한강
서울 여자
인생 역전
커밍아웃
누나라는 발신자
외로움
밥식해
여든다섯쯤 되면
‘작가의 말’
나에게는 나 아닌
모든 것들이
시이고 시인입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에게서
말을 빌려 씁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표지글’ 중에서
박시현의 시는 깨끗하다. 몇 군데 덜어내거나 산문성을 배제해야 의미 확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아쉬움이 툭툭 눈에 띔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해내는 직시가 좋다. 의연하다.
몽골에 가서 “소의 피를 마시고”, “순록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잠자던 매를 띄”우는 힘 있는 시들을 읽으며‘ 이 친구 정면 돌파를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아깝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대낮에도 “도벽이 꿈틀거리”면 언어의 금고에서 훔쳐온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물방울 다이아”, 원석들을 홀로 세공한다는 박시현은 시단에 나서기 위한 또래의 절차를 거절했다. “나를 갉아먹는 이빨을 삽자루로 내려찍거나 군수창고로 끌고 가 온갖 연장들로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른 척” 두는 편이 자기 시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그의 확신이 아마 옳을 것이다.
시적 포즈가 강한 시는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며, 그것들이 파놓은 말의 허방을 피해 걷는 일은 꽤 멀미가 난다. 공연한 시늉을 가지지 않은 박시현의 시가 들길을 걸으며 늙은 시들의 “눈썹 문신”을 위해 불러주는 휘파람 소리에 앞으로도 귀를 기울여 보겠다. ? 조정(시인)
박시현 [저]
1988년 경북 포항 출생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前동국문학회 임원 시모임 ‘동시’ 초대회장 역임
E-mail: waree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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