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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 수십 년 동안 동서양 철학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고조되었던 다원주의에 관한 다양한 철학적 관점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공약불가능성, 상대주의와 같은 연관된 주제들과 함께 다원주의의 윤리적, 미적, 종교적, 인식론적, 과학적, 그리고 사회정치적 의미들을 더 깊고 폭넓게 다룬다. 이 책은 전남대학교 철학과 BK21플러스 횡단형 철학전문인력양성사업단이 ‘동서양 횡단: 다원주의의 철학적 관점’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2017 국제 철학적 횡단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들과 본교 철학과 교수들의 다원주의 관련 논문들을 함께 모은 책으로, 다원주의를 둘러싼 동서양의 철학적 관점들 간의 더 풍성한 횡단적 대화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머리말 / 노양진 / 5 제1부 제1장 인본주의적 세계주의 / 필립 J. 아이반호 / 10 제2장 문화다원주의와 인정윤리학 / 정미라 / 52 제3장 동서양의 현상학 / 사카키바라 테츠야 / 80 제4장 아킬레스와 거북이 / 김 수 라스무센 / 103 제2부 제5장 다원주의, 동양과 서양 / 에드워드 슬링거랜드 / 130 제6장 들뢰즈와 양자역학의 도가적 횡단 / 이승종 / 173 제7장 심즉리(心卽理)의 출현 / 이향준 / 211 제3부 제8장 일본의 종교 다원성 고찰 / 미노와 켄료 / 248 제9장 동아시아 불교의 두 얼굴 / 조윤호 / 271 제10장 화엄사상에서 ‘부분’과 ‘전체’의 의미 / 고승학 / 303 제11장 분별(vikalpa)에 관한 인지언어학적 접근 / 김현구 / 331

제1장 인본주의적 세계주의 필립 J. 아이반호(홍콩, 홍콩성시대학교) 강현정 역 1. 서론 고전적인 동아시아 윤리학 전통이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그 전통이 명시적으로 자연주의적인 색깔을 띠고 있거나(예를 들어 순자) 아니면 하늘이 정해 놓은 자연 질서가 인간의 근본적인 규범적 기준이라는 사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맹자, 장자). 전자는 최근 유형의 자연주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이고 있으며, 후자는 그러한 관점에 쉽게 포용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 전통에 대해 호의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방식의 기술을 현대적인 구성철학(constructive philosophy)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윤리학에서 자연주의는 현대 영미철학에서 큰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으며 다양한 범주의 경쟁적이면서도 때로는 양립 불가능한 형태, 예를 들어 진화론적 윤리학(evolutionary ethics), 도덕적 토대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 도덕적 모듈성 이론(moral modularity theory), 감수성 이론(sensibility theory)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연화된 윤리학 이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 되고 있는 문제가 흄(David Hume)과 무어(G. E. Moore)의 글에서 발견된다. 전자는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낼 수 없다 - 혹은 최소한 그러한 입장을 취할 경우 설명이나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 는 주장을 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어떤 자연적 특징이나 성질이 얼마나 유쾌한 것이고 매력 있는 것이든 간에 우리는 그 특징이나 성질에 대해 도덕적으로 좋은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를 물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열린 질문 형태로 논증을 구성한다. 나는 이 논쟁과 관련한 다양한 국면에서 제기된 복잡하고 흥미로운 주장들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제안하려는 것은 행복주의(eudaimonism)를 근본적인 윤리적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그러한 극도의 날카로운 비판들은 완전히 반박되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무디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대다수의 현대 서양철학자들은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에 대해 논증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만으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 글에서 그 논쟁의 전면으로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윤리적 견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정당성은 그 견해가 사람들을 잘 살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데 근거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넓은 의미에서 잘 산다는 것은 타인들, 다른 생물이나 무생물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창조적이며 반성적으로 풍부하게 만족하며 사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 가정은 상당히 방어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행복주의를 우리의 도덕적 기준으로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어려운 도전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자연주의적인 윤리체계는 인간 본성이나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또는 대부분 규범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자연주의적인 윤리 체계가 근본적인 윤리적 상대주의를 수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자연주의적 윤리체계는 무엇이 좋은 인간 삶을 구성하는가를 정의하는 좋음의 바구니에다 너무 적게 혹은 너무 많이 집어넣는다. 이러한 도전들이 바로 이 글의 주된 관심사다. 나는 대다수의 전통적 견해들이 갖는 편협성과 내 생각에 상대주의의 과도한 방임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 사이의 중간 지점을 고수해야 할, 원리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래에서 주장할 것들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도덕 이론이 인정해야 할 것은, 인간 본성은 실행 가능한 윤리 이론에 필요한 기본 자원을 제공하다는 점과 인간이 이 자원에 의존하고 계속해서 의존할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구별적인 윤리 관점과 전통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이 공통의 자원은 기본을 제공한다. 또한 그것은 모든 실행 가능한 윤리학이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서 일정한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s)과 상당한 정도의 공통분모를 갖도록 만들어 준다. 개인 창조물, 역사, 문화는 다른 형태로 환원 불가능한, 혹은 표준적이고 익숙한 추상적인 도덕 이론과 완전히 조화되지는 않는, 그런 구별적인 형태의 윤리적 삶을 제공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설명은 가치 및 좋은 삶의 형태와 관련해서 환원 불가능한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타인들, 다른 생물이나 무생물과 더불어 건강하고 창조적이며 반성적으로 풍부하게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실제적이면서도 가능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경쟁적인 형태의 좋은 삶의 방식들 간에 흔히 온건하면서도 일차적인 유형의 상대주의 - 우리는 흔히 한 가지 방식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해야 하며, 두 가지 방식으로 다 살 수는 없다 - 가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의 삶을 선택하든 간에, 선택된 그 삶의 형태는 인간 본성의 실제적 특징에서 발생하는 특정의 제약들과 부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내가 주장하려는 견해는 환원 불가능한 도덕적 상대주의지만, 나는 또한 강한 상대주의를 거부한다. 강한 상대주의란 윤리적 체계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평가 대상이 되는 그 체계 자체를 벗어나서는 아무런 평가 기준도 없다고 보는 견해다. 내가 주장하려는 견해는 몇몇 드러나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나는 자유주의적 관용을 일종의 보루로 생각하지만 그러한 관용을 도덕적 이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견해는 ‘인본주의적 세계주의’(humanistic cosmopolitanism)를 지지하고 옹호한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해서 이 글의 나머지 부분들에서 더 자세하고 정확히 설명할 것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제시하겠다. 2. 자연화된 윤리학의 양극단 이 절에서 나는 자연화된 윤리학이 취할 수 있고 곧잘 취해 온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설명하겠다. 나는 이 두 입장을 ‘좁은 극단주의’(Narrow Extremism)와 ‘넓은 극단주의’(Broad Extremism)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윤리학, 곧 넓은 방식으로 자연화된 윤리학의 형태는 좁은 극단주의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오늘날의 자연주의적 표현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원초적 형태의 초자연주의에 대한 반응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흔히 넓은 극단주의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두 입장이 모두 방어될 수 없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는 좁은 극단주의의 좋은 예다. 반면 아퀴나스와 주희(朱熹)는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 각각 형이상학적으로 더 복잡한 해석을 제공한다. 그런 견해들의 출발점은 도덕이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그 견해들의 출발점은 도덕이 삶의 한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그 삶의 형태란 개인과 사회가 번성해 나가고 삶의 의미와 만족, 기쁨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 잘 어울려서 활동하며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가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과 좋은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한 상당히 긴밀한 상관관계를 설정하는데, 그들이 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이란 불가능한, 다시 말해서 지나치게 구체적인 개념이다. 맹자의 경우 이 상관관계는 일련의 농업적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표현되어 있어서 인간 본성의 참된 특징과 좋은 삶의 관계를 표현해 주기는 하지만 그것을 또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가 맹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든 아니면 주희나 퇴계 이황(李滉)과 같은 신유학에 대해 이야기하든, 인간 본성과 좋은 삶의 관계는 ‘본’(本, root)과 ‘말’(末, branch tips) 같은 은유에 의존해서 기술되어 있다. 건강한 본(뿌리)을 가진 나무는 그런 나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가지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 나가건대, 적절하게 영양분을 공급해서 원숙한 상태가 되면 꽃을 활짝 펴고 특정 종류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씨앗과 표현형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 은유는 어떻게 식물과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성장하는가를 묘사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떤 종류의 삶이 그 각각에게 번영을 구성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차이는 식물과 인간 사이에 큰 구획을 지어준다. 다른 동물의 경우는 인간보다는 식물에 가깝다. 대부분의 다른 동물 종들은 그들이 이끌어가는 삶의 유형에 있어서 거의 변화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이러한 행복한 상관관계는 대부분의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생물학이 크게는 운명이라는 사실에서 결과한다. 문제는, 혹은 달리 말해 나로서는 인간 삶의 가장 훌륭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은 점은, 우리 인간은 그런 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개인적 및 사회적 삶은 미리 프로그램화되어 있지 않고 컴퓨터 하드웨어에 저장되어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어떤 동물도 흔히 사용되는 은유와 같은 방식으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가는 생태가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해 극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동물은 아니지만, 비인간 사회의 본성은 중요하고 근본적인 방식에서 인간 사회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이 항상 잘 이해되어 온 것은 아니며 결과적으로 인간 사회와 비인간 사회에 대해 상당히 잘못된 비유들을 양산해 왔다. 그러한 오해는 흔히 알려져 있는 상상들에 잘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미와 벌에 대해서 그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그런 생각이 맞기도 하지만 그들이 만들고 있는 군집은 인간 사회와 상당히 다르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일부 사상가들은 그런 군집의 질서정연함을 인간 사회의 긍정적인 예로 활용해 왔다. 개미와 벌은 또한 부지런함과 맹렬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해 일부 사상가들은 유토피아적인 사회의 예로서 이러한 공동체를 이상으로 여기기까지 한다. 또 일부 사상들은 유토피아에 정반대되는 사회의 예로서 개미와 벌을 사용하는데, 그런 사회 속에서 ‘아무 생각이 없는’ 수벌은 군집과 여왕의 안녕을 위해서 자기를 순종적으로 희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개미 군집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여왕’ 족속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왕의 자매들로 집결된 불임의 노동자들 무리로 구성되어 있다. 적은 숫자의 생식력 있는 수컷(수벌)은 단지 몇 주의 기간만을 사는데, 이 기간에 그들은 여왕벌과 짝을 맺은 다음 죽게 된다. 개미와 벌의 군집에 대한 이러한 가감 없는 특징은 이러한 사회와 인간 사회 간의 강한 비유가 상당히 왜곡된 사실을 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어떻게 인간 사회가 그토록 적은 숫자의 남자가 단지 몇 주의 기간 동안만 성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죽고 한 여성이 모든 자손들을 배출하고 그 사회의 나머지는 전부 그 여성의 불임화된 자매들로 구성될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왕벌은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지배자가 아니다. 여왕은 군집의 다른 구성원을 이끌지 않는다. 사실상 그 군집의 누구도 우두머리를 맡지 않는다. 각각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맡아야 할 업무를 수행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그들은 활동을 조직화하거나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중심 지휘기관이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러한 군집들을 초개체(superorganisms)라고 부른다. 군집 자체가 단일한 개체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맡고 있는 중심부 두뇌가 없다. 즉 전체 군집이 집단적으로 그 군집의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하며, 각각의 개미가 마치 인간 두뇌 안에 있는 개별의 신경 세포처럼 기능을 한다.

정미라 [저]

전남대 철학과 교수다.

강현정, 안준상, 주선희, 나익주,강규여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