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인문학으로 풀다
비트코인은 세상을 바꾸고,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비트코인은 경제현상이면서 사회현상이다.
기술혁명이면서 생활혁명이기도 하다.
어느 소설가가 비트코인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전 세계가 하나의 화폐를 사용하고,
중앙집권적인 화폐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청년과 여성에게로 부의 이동이 신속하게 일어나는 세상,
은행도 정부도 국경도 필요 없는
신개념 화폐가 주인공인 세상을 그릴 것이다.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가상증표, 비트코인 등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세계 3위에 올라섰고, 우리 일상의 곳곳을 파고들었다. 암호화폐는 이제 단순한 투기 상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트코인 열풍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등 다양한 문제가 얽힌 사회현상이다.
비트코인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지만 정작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블록체인, 트랜잭션, 해시, 탈중앙화, 작업증명, 지분증명, P2P거래 등 생소한 개념과 용어가 등장하는데다 기존 화폐의 기능과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지 못한다.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기술적 요소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둘러싼 산업적 측면, 경제적 측면,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생각해보는 국가와 개인이라는 철학적 측면까지, 어느 한 측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은행과 화폐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혁명이지만, 그 복잡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인간과 기술과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역할이다.
이 책은 총 3개의 장과 20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기술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1부 비트코인과 밥〉에서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발행되고, 어떤 원리로 돈이 생겨나고 거래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비트코인으로 밥을 사먹을 수 있는 기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려준다. 경제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2부 비트코인과 김치프리미엄〉에서는 비트코인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경제학적 시각으로 설명해준다. 문화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3부 비트코인 인문학〉에서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으로 바뀌어갈 우리사회의 모습, 그리고 좋은 기술에 기반 한 착한 비트코인이 되기 위한 인문학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비트코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 비트코인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은 있지만 사회문화적 깊이를 원하는 독자, 비트코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고자 하는 독자,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현상들을 분석하고자하는 문화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 비트코인 인문학
2017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비트코인은 온 국민의 화제 거리이다. 최근의 규제 강화로 잠시 냉각기를 맞고는 있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불러온 변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은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있지만 정작 이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블록체인, 해시, 탈중앙화, 작업증명(POW, Proof of Work), 지분증명(POS, Proof of Stake), P2P(peer-to-peer) 등 생소한 개념과 용어가 무수히 등장하는데다 기존 화폐 기능과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지 못한다. 정부의 각 부처에서도 낯선 기술, 낯선 시스템이다 보니 암호화폐를 보는 시각과 이해도가 달라 국민에게 제대로 된 입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지 ‘우리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니까 절대 투자는 금지입니다’라는 식의 입장만 고수했다.
그래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젊고 똑똑한 기술자들이나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기술적 요소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둘러싼 산업적 측면들, 그리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경제적 측면,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생각해보는 국가와 개인이라는 철학적 측면까지, 어느 한 측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은행과 화폐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혁명으로 인간과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여기에 인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가장 오래된 학문인 인문학과 최첨단 기술인 디지털은 상극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둘은 잘 어울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구체적 실체가 없이 모든 것이 가상의 공간에서 전자부호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인문학의 중심인 문학도 디지털처럼 실체가 없고 허구적이며 창의력과 상상력에 의존하고 가상현실에서 작용한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상상을 통해 가상 세계를 창조해 왔다. 현실과 가상 두 세계 사이에서 어느 것이 참된 것이고 헛된 것인지 애매하다는 것의 대표적 사례가 '호접몽'이다.
대표적인 동양고전의 하나인 장자(莊子)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장주는 제자들을 불러 자신이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지난 밤 꿈에 나비가 됐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 즐거워서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보니 내가 나비가 아니고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해보니, 조금 전 꿈에서 나비가 됐을 때는 내가 나인지도 몰랐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지금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의 꿈속의 나인가?” 현실과 꿈이 다르지 않음을 비유한 이야기인데, 실제와 가상이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를 표현할 때 주로 인용된다.
조선후기의 소설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도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꿈처럼 덧없는 가상의 현실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육관대사 밑에서 불도를 닦던 성진은 용왕 생일잔치 다녀오는 길에 만난 8선녀와 희롱하고 나자 세상 부귀에 더욱 마음이 쏠리고 불가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를 들킨 죗값으로 인간세상으로 유배되어 가난한 처사의 아들 양소유로 태어난다. 후에 승상이 되고 두 아내와 ...여섯 첩을 거느려 보지만 인생의 덧없음에 탄식한다. 봄 꿈같은 현실에서 깨어난 그는 다시 성진으로 돌아와 대사에게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친다. 얼핏 이 글은 현실에서 꿈으로 그리고 다시 현실로 오가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상 현실은 꿈같고 꿈은 현실 같이 되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살고 있으면서도 부단히 현실이란 벽을 뛰어 넘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다양한 상상, 문학, 예술, 철학 등의 이론과 작품으로 나타났다.
가상(假想)은 말 그대로 픽션(허구, 상상, fiction)의 세계이다. 시와 소설은 물론 음악, 미술, 연극, 드라마 등 모든 문예창작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상현실이다. 우리 인간이 그동안 문학과 예술이 그려낸 가상세계를 통해 많은 희망과 감동, 위안을 받으며 살아왔듯이 앞으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가져올 가상의 세계도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미래로 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은 이렇게 자유와 평등을 가능하게도 해주지만 동시에 거품과 단절, 그리고 찰나성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예컨대 비트코인이 어느 국가의 통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돈세탁, 탈세, 범죄수익 은닉 등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 분실이나 사고 시 책임을 지는 기관이 없다는 점, 이외에도 탈세, 투기, 사이버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에 경계와 경고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암호화폐, 빅데이터, 공유경제, 가상·증강 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첨단 기술들의 총합인 4차 산업혁명시대는 상반된 것이 공존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오늘, 인간과 기술 사이를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을지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의 과제를 풀기 위해 과거로 눈을 돌려 해법을 찾는 다면 우리는 어떠한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인본주의(人本主義)전통은 그 답이 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늘 기계와 물건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을 사용할 사람을 우선시했다. 길이와 넓이를 재는 우리의 계량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치수를 재는 정확한 잣대 없이 살아왔다. 셈을 빠르고 정확히 하는 데에 필수적인 계산기구가 서민층은 물론 국가기관에서조차 실용화 되지 않았다. 기술 혁명에 필수적인 명확한 도량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연히 저울이나 신식 계량기가 있는 요즘에도 시장에서는 저울이나 계량기는 그냥 장식품인 경우가 많다. 그저 손이나 키, 심지어는 손가락 마디를 이용하여 길이를 어림짐작한다. '한 치 걸러 두 치'라고 조금만 거리가 멀어도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건만, '뼘', '촌', '치', 그리고 '길'이란 단위를 사용하여 멀고 가까움을 표시하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자주 쓴다. 몇 미터, 몇 킬로미터로 표시하는 '길이'라는 말의 어원도 '사람의 키 정도 되는 길이'를 나타내는 '길'에서 나왔다는 설(說)이 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길이나 크기를 나타내는 우리말에는 황당한 표현들이 많다. ‘백발이 삼천 장’, ‘천 길 낭떠러지’, ‘구만리 장천’, ‘골백번 죽고 죽어’, ‘혀가 만발이나 빠졌다’, ‘열길 물 속’, ‘키가 팔대 장승같다’ 등등이 그렇다.
이어령은 미터법의 예를 들어 서양의 계량법은 인간의 생활 경험에 토대를 둔 척도가 아님을 보여준다고 한다. 지구의 적도에서 극까지의 거리를 천만분의 일로 잘라내어 한 단위로 설정한 것이 1미터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실제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척도이다. 그러나 십리라는 단위는 인간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고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척도의 단위라는 것이다. 십리라고 하면 사람이 걸어서 한 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리고 대체로 한 동네에서 이웃 동네까지의 거리가 바로 십리에 해당된다. 한국인의 애창곡인 아리랑에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가사를 만약 미터법으로 고쳐서 ‘4천 미터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고 하면 이 노래의 전체 분위기가 깨지고 만다. 십리, 백리, 천리란 말은 단순히 거리를 재는 수학적 단위라기보다 꽃이니 구름이니 하는 경험적인 정서가 깃들어 있는 생활 언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보통 사람이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양을 말하는 ‘한 홉’, 인간이 혼자 누울 수 있는 최소단위인 ‘한 칸’이 있다. 서양의 계량법이 인간의 실제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척도라면 한국인의 것은 인간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고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척도의 단위라며 인간위주로 고안된 지혜로운 계량법이라 주장한다.(『푸는 문화 신바람의 문화』,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3)
이처럼 정확히 한 금, 한 금 따지지 않고 눈대중으로 길고 짧음을 표현하는 말이 많다 보니 우리의 사고방식도 대체로 두루뭉술하다. 한국인들은 대화할 때 ‘그렇다’, ‘뭐하다’, ‘거시기하다’처럼 말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아무거나 시켜요’, ‘적당한 시간에 와’, ‘대충 알아서 주세요’, ‘좀 뭐하거든 그만 두어요’ 등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여 말뜻을 흐림으로써 에둘러 말한다. 이야기를 분명하고 똑 부러지게 말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말하거나 두루뭉술하고 불투명하게 표현한다.
또한 ‘두세 시 쯤’이라든가 ‘네다섯 시 쯤 만나자’는 식으로 시간약속을 하고, 가게에서 과일을 살 때 역시 ‘서너 개 쯤 주세요’라고 명확하게 필요한 숫자를 대지 않는다. 양에 대한 개념도 ‘짜장 곱배기’라는 말처럼 모호하다. 이러한 비논리적 표현은 치밀, 정확을 요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이 때문에 과학기
정수현 [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The University of Sydney 비교문학 석사, 연세대학교 국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출간한 저서로는 『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 『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 『살맛나는 한국인의 문화』, 『비트코인시대-인문학으로 푼 암호』, 『한국문화 특수어휘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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