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이 책은 시인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시를 통해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시집이다. 시인이 얼마나 진지하게 삶을 관찰하고 통찰하려 노력하는지 시집을 읽는 독자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을 툇마루에 앉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겨서일까, 힘들게 지나왔던 격랑의 시간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하고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적어 내려간 글이 시가 되었다. 양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절절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픔이 없었을까.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절제된 시적 언어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다.

삶의 연민 혹은 서정의 미학 백소연(시인, 극작가, 칼럼니스트) 키에르케고르는 각 개인의 삶이란 여러 길 가운데 하나를 완전히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실제적으로 그의 그러한 사고는 실존적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누군가 느닷없이 “당신은 몇 살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좌우 이치 당연한 것임에도 따분하게 혹은 막막하게 상대를 마주할 때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요?” “시를, 글을 왜 쓰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쉽게 응하지 못하는 경우 허다하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마땅한 이유가 저장되어 있음에도 전혀 마땅한 것이 되지 못하고 체험한 답을 당당히 내놓지 못해 얼버무리는 경우의 예 말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결국 삶은 시요 시는 삶인 것이므로 나름 정해놓은 답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대충 살면 어때서』 라는 가제목의 신간 시집 원고를 들고 나타난 양우식님의 역설적인 표제가 당혹스러웠다. 나는 양우식 님에게 물었다 왜 하필 『대충 살면 어때서』라는 시집 제목을 표제로 택했느냐고. 그의 대답은 생각 외로 단순명료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친근감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양우식 님은 『그래도 소중한 날들』을 저술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또다시 시인의 삶을 선택, 도전한 것이다. 설익은 듯 무모함이 엿보이고 티 없이 맑은 웃음만 얼굴에 가득 배여 있어 낯설지 않기도 했다. 우선 시를 쓰게 만든 동기가 궁금해 다시 물었다.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두 번째 대답은 역시 자신과 세상 사람들 간의 대화, 즉 소통을 원하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저함 없이 밝혔다. 한 작가의 도전과는 상관없이 발문은 오히려 가벼운 서정을 무겁게 만드는 사족아닐까 싶어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나 끝내 삶에 대한 그의 태도와 열정을 외면할 수 없어 부록을 덧붙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양우식 님의 첫 시집은 내가 처녀시집을 발간하던 때 같이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그만큼 첫 걸음의 의미는 중요한 족적 그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시 걸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함을 밝힌다. 단, 시작은 미래이고 미래는 최선의 희망을 추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옥타비오 파스는 말했다. “시는 의미와 의미의 전달이면서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은 언어를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또 “모든 시편은 유일하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작품에는 시의 맥박이 뛰고 있다. 이 때문에 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연구보다 단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이 더 확실하다.”라고 토로한다. ‘삶’이란 단어를 관찰해보면 ‘사람’이란 의미가 새겨있다. 돌이켜보면 결국 인생은 더불어 사는 울타리다. 두 바퀴의 자전거 혹은 네 바퀴의 자동차는 하나의 동체로 연계될 때 비로소 목적지로 향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혼자의 힘이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벽 바닷가」 전문을 살펴보자. 새벽 바닷가에 갔었지 밤새 바다의 껍질을 벗기고 벗기며 밀려왔을 파도 거친 출렁임 흩어지는 해변의 정갈해진 모래알처럼 삶의 묵은 때 벗겨줄 나의 바다는 어디에 있나 바람으로 밀고 밀어도 이제는 썰물로 기울어야 할 나의 바다여, 남은 시간이여 물이랑으로 말아 올리고 올린 사연마저 아득해지면 한때 고양이처럼 다가와 철썩이던 꿈과 희망들 고뇌의 깊이까지 스러진다 여름 떠나간 9월의 백사장 철 지난 ...내 삶도 그쯤 왔을 것이고 허허로운 썰물도 돌아가고 있겠지 소란스러움 사라진 그 곳처럼 - 「새벽 바닷가」 전문 새벽은 모든 이들의 고요를 불러 모은다. 또한 시작이다. 어둠을 걷어 올린 동녘햇살은 삶을 위해 동력을 가동시킨다. 밀리고 밀려가는 삶속에서 시인의 바다란 “물이랑으로 말아 올리고 올린 사연마저 아득해”지는 그런 것일 테다. 인생은 바다처럼 깊고 오묘하다. 그 수심을 유추할 수 있는 힘은 심안이요 그 심안은 체험의 깊이 속에서 육화된다. 세상에서 겪은 상처투성이 아픔도 돌아보면 찰나다. 고통스러웠음에도 이루지 못했거나 다가왔다 사라진 것에 대한 연민은 눈사람처럼 커져만 간다. 어쩌면 시인의 지나온 삶은 파랑치는 바다였는지 모른다. 그러한 삶을 이제 객관적 시선의 각으로 바라볼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기에 아픔도 결국 회심 속에 환기된 사랑의 결정체다. 하여 아무리 지난한 체험이라 해도 종국에 스스로 어루만지게 된다. 깨트려지고 몽글어진 몽돌이 되기까지 남모를 참담함을 넘어선 격랑의 시간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모한다. 시인의 바다는 자신을 반추시키는 그 첫 번째 울림이다. 이처럼 바다는 천지를 감싸 안은 모성이며 모든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근원이다. 안으로 깊이 들여다볼수록 오묘하고 숭고하고 따뜻하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 그 흐르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자아의식은 간결한 언어의 압축에 의하여 더 강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로 탄생된다. 특히 「새벽 바닷가」란 시는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찰나에 다가온 감성적 시는 육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감정을 표현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특수한 개성보다도 인간과 인간 간의 소통이며 심안을 들여다보는 원초적 물음으로부터 그 의미는 실려 나온다. 한 땀 한 땀 실을 당겨 수를 놓았지 모세의 바닷길처럼 갈라진 곳 끈적이는 붉은 고통 닦아내고 세상구경 나온 하얀 속살 밀어 넣으며 세 땀 네 땀 여미고 묶어 비밀의 문 꾹꾹 빗장 걸던 날 보아서는 안 될 곳 열어본 죗값으로 욱신거리던 통증 그 호기심 다시 들썩일까봐 붕대로 친친 감고서도 맘 놓이지 않던 밤 봉합 자리에서 빛처럼 새어 나오던 고통 아득한 날 경자년 자시(子時)에 내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도 이런 아픔이었을까 빗장이 열린다는 것은 그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다는 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여행길 떠난 후 아프면서 아물면서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상처 봉합」 전문 시인은 내면의 갈등으로부터 조금씩 눈뜨고 있다. 그것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다짐하며 생을 위로하고 위로 받기 원한다. 시인의 질의는 본능을 쓰다듬는 모성애적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차마 ‘보아서는 안 될 곳’은 무엇이었을까. 그 회심의 무게는 마치 바다의 문에 들어섬 같이 조심스럽다. 양우식 시인의 시는 변혁을 위한 부정과 파괴, 난해의 시로부터 멀어 보인다. 따라서 시적 의도나 수사가 극히 단순하다. 그러한 무의식과 의식, 참된 자아의 인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순수함은 가능성을 탐색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활론적 사고에 한 발 성큼 내딛었다. 이는 어려운 낱말과 문장을 꿰어 자아와 세상을 장식한 상징의 매개 속에 가둬두기를 극구 거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초자연적인 낯설음의 근원은 아니지만, 『성묘』의 전문을 보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결정적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밤 한 톨 때굴때굴 아버지 산소 앞에 상 차렸다 나는 빈손으로 왔는데 밤나무는 제 몸 흔들어 토실한 알밤 모아 아버지 앞에 추석상 올렸구나 밤나무보다 못한 불효여! 에라 꿀밤이나 먹어라 머리에 떨어지는 알밤 한 톨 딱! 꾸중소리에 움찔한 부끄러움 -「성묘」 전문 문학적인 정서는 곧 미적 정서이기도 하다. 제임스는 자극이 되는 사실을 자각한 뒤를 따라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 변화의 의식이 즉 정서라고 말하였다. 정서는 희노애락애오욕과 같은 순화된 인간의 본질적 감정을 일컫는다. 시인은 지나온 날에 대해 자성하며 일면 부성애적인 애증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많은 실존의 언어 중에서 가장 포용하기 힘든 용어는 ‘용서’라는 단어다. 부모 자식간 정을 몰락시키는 사람, 술만 먹으면 허풍쟁이 되는 사람, 부자를 꿈꾸는 사람, 가난을 핑계 삼는 사람,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 사기 치는 사람, 죽음을 경망하게 생각하는 사람, 등 쳐 먹는 사람, 사람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사람 등등 21세기 문명사회는 우리네 삶을 고단하고 슬프게 각인시키고 있다. 딱딱해진 심장을 안고 사랑 없이 살아가는 광풍노도 시대의 실태다.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기 위해 복잡 미묘하게 기계화된 현대사회가 경쟁의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뒤도 옆도 들여다볼 틈이 없다. 시인도 이전에 그랬을까. 거울에 자신을 반추시키듯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작고 작은 자아를 발견한다. “나는 빈손으로 왔는데/ 밤나무는 제 몸 흔들어 토실한 알밤 모아/아버지 앞에 추석상 올렸구나/” 밤나무를 의인화시킨 발상의 전환이다. 더불어 자신과 환치시키며 대상과 대조된 시적 형상화를 이룬다. “딱! /꾸중소리에 움찔한 부끄러움/” 한 톨의 밤으로 환치시킨 아버지와 자연, 자연과 나 사이를 꿰뚫어 본 고뇌가 아닐 수 없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사랑과 용서는 일체다. 때로 아픈 알맹이는 사금파리로 상처를 파헤치듯 스스로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러한 결빙의 것들은 나만 아픈 듯 나만 고통스러운 듯 나만 서러운 듯 스스로 소외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상과 분리된 사고는 비참함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이토록 존재는 때때로 부재를 불러오고 부재는 고립을 향하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밤나무란 매개를 앞세워 객관적 시선으로 익살스럽고 능청스럽게 자아를 반추시킨다. 그것은 주체와 대상간의 거리이며 그 거리는 오히려 더 큰 시야를 확장시켜 울림을 선물한다. 웃으면서 말하는 슬픔이 강을 적신다고 했던가. 시인은 객관적 존재로서 존립해야만 했던 자성과 원초적 성토와 질의를 토해 낸 것이다. 철썩! 달려온 파도는 큰 입 벌려 크고 작은 돌을 가득 물고 와그르르 굴려 댑니다. 물고 뱉고, 뱉고 물으며 바다의 혀로 다듬어놓은 아픔 스르렁리는 그 모난 돌 다듬기 위해 달려왔을 파도와 모나지 않기 위해 구르고 굴렀을 돌처럼 나는 삶을 위해 얼마나 굴렀을까요 거침없이 달려왔을까요 살아간다는 것 무엇을 이룬다는 것 고통 없이 이루는 것 없다고 철썩이며 일깨워줍니다. 와그락 거리며 얘기합니다. 삶의 한편에서 아파하고 방황할 때도 온몸을 사정없이 구르고 채찍에 맡기며 깎이고 씻김 견디었다고 돌돌거리며 말해줍니다. 나는 무슨 돌이었을까요 -「황금산 몽돌 해변에서」 부분 ‘그 모난 돌 다듬기 위해 달려왔을 파도와/모나지 않기 위해 구르고 굴렀을 돌처럼/’ 과연 우리는 깎이고 견디며 어떤 몽돌이 되었을까. 모든 글을 단정할 수 없으나, 쉬운 것은 어려운 것보다 더욱 심오할 수 있다. 물론 순수한 감성을 토대로 작가의 의도된 심상을 드러내기란 되레 힘든 문제라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경우에 따라 설명하기 쉽다거나 단순하다고 하여 그 내용마저 밀어내는 우를 숱하게 범해 왔다. 그러고 보면 창작에 있어서 쉬운 것이란 없는 셈 아닌가. 양우식 시인의 시세계는 시가 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절절히 표현하지 않는다고 하여 일생 일대 아픔이 없었을까, 자문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시적 언어는 상처 받은 시인의 말조차 물결로 흘려보낸다. 그는 그 자체가 ‘사랑’이기를 원하는 듯싶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하여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에 대해 ‘이름은 이름일 뿐 실재는 아니다’라고 토로한다. 즉 하늘과 땅이 시작되었을 때 아무 이름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온갖 사물이 생겨나면서 이름이 만들어졌고 그 신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가 숨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말의 ‘겉’과 ‘속’을 표상하는 것인데, 시인의 삶이란 모성애적인 연민은 아닐까. 오랜 습성으로 인한 단정적인 사고는 때때로 각박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음의 「흔적」은 시인이 얼마나 진지하게 삶을 관찰하고 통찰하려 노력하는지 조금이나마 보여준 사례다. 바람 한 점 없어도 머뭇거림 없이 뛰어내리는 것을 낙화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그 자리 꿈틀 자라날 흔적 하나 남겨 놓았습니다. 한 꺼풀 한 꺼풀 벗어던지지 않고 툭 이 모습 그대로 가장 낮은 곳에 누워 세상을 보며 사라지는 것에 대해 작별을 합니다. 찰나의 시간은 길게 흘러도 화려함은 머무를 사이도 없이 떠나온 자리 애벌레처럼 뒤척이며 영글어가는 것마저 봄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는 짧은 꿈이었음을 -「흔적」 전문 해 뜨면 해 지듯 푸르고 싱싱한 날도 잠깐일 테다. 사노라면 속도에 밀려 죽음을 잊기도 한다. 천년만년 살 것 같아도 명암 뒤바뀌는 것은 찰나다. 떠나고 떠나온 것들에 대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순응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본연의 자세일지 모른다. ‘찰나의 시간은 길게 흘러도/ 화려함은 머무를 사이도 없이/ 떠나온 자리/’버리고 버려왔던 일들에 대하여 시인은 ‘애벌레처럼 뒤척이며 영글어가는’ 자아를 발견하고 있다. 존재하나 존재함 없이 사라지는 초침은 흐를수록 늙고 병들어 가기 마련이다. 소리와 시간은 우리네 촉으로 정확하고 적확하게 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다. 그런 한계 속에서 시인은 ‘가장 낮은 곳에 누워 세상을 보며/사라지는 것에 대해 작별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주름은 마침내 재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되어 있다. 시인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욕망에 대한 몸짓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일까. 하루의 노동을 목구멍에 쏘아 올린 대포로 보상 받는다. 조준하지 않아도 대충 겨냥을 해도 목표물에 명중시킬 수 있는 숱한 실전 경험이 있다. 단 한방에 비틀거리는 위력을 보아리 벌겋게 날아오르는 저 화력 좀 보아라 한입감이지 한주먹감이야 -「일잔 일설」 부분 노동에 있어서의 술은 위로의 대상일 수 있다. 현실 문제는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다. 단 한방, 한 탕을 꿈꾸는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가. 엘버트 허바드는 “인생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실수를 할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어록이자 선언집으로서 BC 600년경에 만들어진 서경은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고 대비를 하게 되면, 근심이 사라지게 된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정황파악과 분석이 선행될 때 자아도 보다 명확하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일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충 살면 어때서」의 부분을 살펴보자. 망초꽃 지천으로 하얗게 피어나 꽃물결 이는 언덕에 서 있는 것을 보았지 여름에는 초록으로 물들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들 듯 그를 물들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삶은 공갈빵처럼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품이었는지 모른다. 밖으로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안으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 문득문득 머물러 가는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다녔다 이제는 벗을 수 없는 얼굴 나에게 젠더퀴어를 조금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얘기하던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너 네가 나를 잊기 전에 내가 너를 잊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랑이 끝난 것을 알지 못하여 예감의 촉수 접어 두었기에 너의 그 낯선 언어 해독하지 못한 채 지랄 같은 사랑에 머뭇거리다 새 되었지 결의 어긋남도 모르면서 서푼 같은 직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대충 살면 어때서」 부분 인생의 정체성 앞에 직면한 시인은 역설적으로 묻고 있다. ‘무엇이었을까/어쩌면 삶은 공갈빵처럼 그럴듯하게 포장된/거품이었는지 모른다.’ 시인의 고뇌는 쉽지 않은 삶의 역겨움으로 도발을 자극하지만, ‘결의 어긋남도 모르면서/서푼 같은 직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결국 현실 문제에서 멀어질 수 없는 절박한 현대인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는 부분이다. 「대충 살면 어때서」 라는 한 편의 시는 시집 전편을 대표하는 표제이기도 하다. 양우식 시인의 낯설고 어리석고 이치에 맞지 않던 일들로부터의 체험은 단순 그 절망의 나락에 멈춰 서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한 듯하다. 인간은 나 이외의 매개체와 상호 연계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여 누구에게나 그 삶의 방편에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자아를 분열시키기도 하고 회복시키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양우식 시인 역시 실존적 갈등을 그려낸다. 현실과 이상, 꿈과 희망, 오늘과 내일에 대한 불확실한 안목과 기억 그에 준한 미래의 안개가 가져다 준 갈등은 시를 탄생시킨다. 전반적인 시의 특징은 새로운 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아와의 갈등과 회심, 세상과의 조화와 부조화 사이의 혼돈이 내재되어 있다.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 사이에서 ‘나’라는 주체를 찾아나서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작 자신을 들여다보면서도 또 다른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물간의 존립 사이에 객관적 거리가 존재하니 말이다. 사실 한편의 작품은 랑그와 파롤 속에 존재한 표상의 심리를 관통하게 만든다. 그만큼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불러오는 그 무엇이다. 시어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의미는 사물과 이름 사이의 연결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봉선화 연정」, 「별똥별」, 「회상(열차를 타며)」, 「겨울 억새」, 「신기루」, 「청춘은 벚꽃처럼」, 「종이컵1」, 「길이 끝나는 곳에는」, 「빙어」, 「어묵탕을 끓이며」 등을 통하여 한 작가의 체험과 경험 속에 저장된 가치관과 그에 따른 그리움, 슬픔, 꿈 등 기억의 실체를 다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모든 이미지들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 나를 수는 없다. ‘길고 짧음은 대봐야 안다’는 속담처럼 그 사람의 나고, 되고, 든 일면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한다. 어찌 자로 잰 듯 그 속을 쉬이 판단하겠는가. 혹여 누가 알까, 깊은 심안에 뿌리박힌 모난 돌이 낭중지추가 될지 말이다. 서정시의 정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정서와 성격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가치 있는 감정의 형상화로 효과적인 표현을 전달하는 수사적 방법이 서투를 수 있다. 한 권 분량의 시를 읽는 동안 양우식 시인의 시는 솔직히 개성적인 표현이거나 파격적인 문형은 아니었다. 현대적 감각을 살리고 그에 따른 현상을 묘사하는 객관적 사생은 아직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의 성실과 열정에 주목하는 이유다. 밖을 응시하는 시안이 더욱 깊어져 심안과 상반되는 현실에 좀 더 접근하고 새로운 창작의 열의를 열 곱 발휘하는 작가가 되길 기대해 본다.

1장 낭만에 대하여 새벽 바닷가 바지를 다리며 파랑새는 내 곁에 마네킹의 꿈 상처 봉합 봉선화 연정 낭만에 대하여 가을 속으로 별똥별 성묘 황금산 몽돌 해변에서 회상 탱자 연리목 연리지 겨울 억새 일잔 일설 여름밤의 혈전 주점풍경 술꾼 술 한잔 할까요? 2장 대충 살면 어때서 대충 살면 어때서 신기루 동백이 질 때 일탈을 꿈꾸며 눈사람 어따 폭염 여름 소나기 봄 소망 청춘은 벚꽃처럼 대하축제 종이컵1 종이컵2 길이 끝나는 곳에는 미완성 깊은 밤 얕은 숨 빙어 폭주족 견인 차 3장 야한 상상 어묵탕을 끓이며 겁탈 첫사랑 그년 마술 와인오프너 컵라면 쇳대 심포항 조개잡이 커피 중년의 기쁨 중년의 슬픔 팽이 조개구이 꽃샘추위 4장 흐린 기억 속의 추억 사랑 때문에 환승 꿈속의 사랑 그 바다에는 오후 2시 가끔씩 그대를 알 수 없을 때 페르세우스 November 잊혀진 시절 푸른 시절 그때 그 사람 화양연화 가력도 풍차 소금기둥 애수 흐린 기억 속의 추억 허공으로 날아간 새 미스테리 아네모네 이 낯설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연서 그런 사람 있었을까? [해설...

[본문 발췌] 낙엽 한 장 옆자리에 앉는다 가을날은 그런 것 누군가의 곁에 앉아 그대가 되어 주고 싶은 사랑에 목마르고 그리움에 애달픈 툭 그대 곁에 앉아주는 것 -「낭만에 대하여」 전문－ 한 개만 더 한 번만 더 미소 지으며 뒤돌아 나오던 길 갯고랑에 푹 빠진 발목은 나를 붙잡은 것이었을까? 스무 살 갓 넘어 그대를 만났던 그때도 그랬지 갯벌에서 주욱 미끄러지듯 그 빈틈으로 들어갔다 나온 후 그때 잡힌 발목 지금도 못 빼고 있지 －「심포항 조개잡이」 중에서－ 그대를 추억하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 지나간 사진첩 들추는 것처럼 유행 지난 가요 듣는 것처럼 추억은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고 오래전 골목길 달려가던 바람에게 던져버린 유폐시킨 기억 다시 돌아와 서성거렸지 우연은 우연한 곳에서 우연히 일어났지만 우리는 이만큼 와버렸고 그 세월 저만치 가버렸네 화석처럼 정지했던 시절 도굴당하고 돌아보니 지나간 날들은 사랑이나 추억 아닌 레테의 강으로 흘러버린 시간 마주 앉아 주고받는 그 시절 이야기는 건조해졌으며 한때 비워둔 가슴조차 한 발짝 비집고 들어설 자리 없어졌으니 그대로 인해 타오를 것 없는 나는 푸석거린다. -「그때 그 사람」 전문－

양우식 [저]

전북 완주군 삼례 출생
한국 문학예술 동시부문 등단
대한문학 수필부문 등단
대한문학 시 부문 등단
행촌수필 사무국장 역임
대한문학 작가회 이사
전북수필 회원
전북 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그래도 소중한 날들]

yws1706@jeonjupap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