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로 이주한 한국 구석기인들의 고향, 백두산지역과 교류한 구석기시대의 국제적 거점, 보성강유역, 한국과 아시아 구석기학계의 필독서 『보성강 유역의 구석기문화』. 보성강유역에서 지난 33년간 축적된 고고자료와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그 의미를 추구한 『보성강유역의 구석기문화』가 출간되었다.
한국 남부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주암댐 수몰지역에서 뗀석기가 발견된 것은 1986년이다. 그리고 1990년까지 다섯 개의 유적이 발굴되어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이 전남에도 살았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지역사의 상한은 수천 년 전의 신석기시대에서 수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갔고, 보성강은 한국 서남부의 인류거주사와 구석기문화 연구의 시발점이자 모태가 되었다.
그로부터 33년이 흐른 2019년까지 보성강유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유적의 수는 85개로 급증하였고, 그중 13개 유적은 22회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같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수집된 유물은 최소 5만 점이 넘는다. 유물의 대다수는 뗀석기이지만, 희귀한 간석기를 비롯하여 붉은 안료로 쓰인 철석영도 있으며, 불 땐 화덕과 석기제작소도 찾아졌다. 약 10만 년 동안 쌓인 두터운 퇴적층 속의 문화층 연대를 뒷받침해주는 절대연대도 56개나 측정되었다. 현재 순천 월평유적은 국가사적 제458호, 장흥 신북유적은 전라남도기념물 제238호로 지정되어 보성강유역의 구석기문화가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관련 논문은 2019년까지 국내학회지에 26편, 국외학회지에 9편이 발표되었다. 1990년대의 논문은 주로 유적조사 내용을 다루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조사 성과를 종합하거나 개별 석기에 관한 심화된 연구로 발전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보성강유역이 일본열도로 이주한 구석기인들의 고향이며 백두산지역과 교류했던 구석기시대의 국제적 거점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저자 이기길(조선대학교 교수, 전 한국구석기학회 회장)은 1995년 5월, 낙안읍성으로 가족나들이를 가던 중 송광면 구룡리 영봉마을 어귀의 길가 단면에 드러난 찰흙층에서 석영맥암제 홈날석기를 발견한 아래 지금까지 보성강유역의 구석기유적 조사와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동안 참가한 주요 발굴유적만 해도 순천 월평유적(국가사적 제458호), 순천 죽내리유적(전라남도기념물 제172호), 장흥 신북유적(전라남도기념물 제238호), 화순 도산유적, 진안 진그늘유적, 임실 하가유적 등 다수에 이른다.
책의 내용을 보면, 제1장은 보성강유역의 구석기학사, 제2장은 처음 공개되는 30개의 유적을 포함한 85개 유적의 자료집합체(DB : database), 제3장은 발굴유적의 조사 내용과 의의 검토, 제4장은 보성강유역 구석기문화의 주요 양상, 제5장은 밝혀진 성과와 앞날의 과제를 다루었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한국 서남부에서 살기 시작한 첫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그 여행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를 남긴 사람들보다 먼저 보성강유역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도구 제작기술, 붉은 안료를 사용한 정신세계, 그리고 800㎞가 넘는 원거리교류망을 보유한 놀라운 사회성 등 오늘날 우리가 지닌 다양한 능력의 시원과 원형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은 보성강유역에 분포하는 구석기유적 전체에 대한 목록, 연구 결과물 중 국내외논문, 학위논문, 단행본에 대한 목록을 제시하고, 85개 유적의 내용과 관련 사진들을 유적별로 자세하게 실었다. 그래서 1986년 이래 33년간 축적된 성과들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향후 새로운 조사와 연구는 물론 유적의 관리와 활용 등 여러 분야의 참고자료로도 매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유적에는 기존에 알려진 것은 물론이고 이번에 처음 보고되는 유적도 30개나 포함되어 있다. 또 암석학, 물리학, 제4기지질학 등 여러 분야의... 자연과학자와 공동연구로 얻어진 다양한 성과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전체 유적의 크기와 입지 종류 및 구성에 관해 처음으로 분석된 내용도 실려 있다. 이처럼 새로운 발견(discovery)의 소개, 연구방법(method)의 적용, 관점(idea)의 변화는 연구사에서 진전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신북유적과 월평유적에서 발견된 규슈산 흑요석을 근거로 왕인박사로 대표되는 한일교류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슴베찌르개, 좀돌날석기를 비롯하여 일본열도 구석기유적 수의 증감 등을 근거로 일본열도로 이주한 첫 인류의 갈래가 보성강유역의 구석기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가깝고도 먼 한일 양국의 교류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보성강유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에 대한 성과를 집대성한 이 책은 보성강변에서 펼쳐졌던 인류역사의 첫 장을 기술하는 데 ≪삼국사기≫처럼 소중한 원천자료라 하겠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재한 유적과 유물 관련 사진 540여 장, 도면 81개, 표 55개는 유적과 유물의 학술 성격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학술 분야는 물론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등 여러 분야에서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남도에 구석기박물관의 건립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학문적 근거로서, 장차 세워질 박물관의 전시, 교육 등 여러 분야의 기본 콘텐츠로 매우 유용하게 쓰이기를 기대한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남 1980, 1985, 1994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문학사, 문학석사, 문학박사 1985년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1987년 연세대학교 박물관 연구원 1991년~현재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사학과) 교수 1991~2018년 조선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 관장 2014~2015년 한국제4기학회 회장 2015~2016년 호남고고학회 회장 2017~2018년 한국구석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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