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욱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 『허물』. 첫 번째 소설집에서 가망 없는 세계를 믿음직한 필체로 묘사했던 저자는 이번 소설집에서 고독과의 싸움, 혹은 존재의 확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뱀을 키우는, 늙고 외로운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허물》에서 부유하는 소통 부재의 인물들, 그들의 내면에 도사린 죽음의 그림자를 밟아가는 수술실의 메스처럼 집요하고 서늘한 문장들을 엿볼 수 있다.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천강문학상 소설대상, 문학나무 신인작품상, 2015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가 김주욱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 첫 번째 소설집에서 가망 없는 세계를 믿음직한 필체로 묘사했던 그가 두 번째 단편소설집 《허물》로 돌아왔다.
표제작 <허물>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뱀을 키우는, 늙고 외로운 여자의 이야기이다. 특화된 미용 기술 덕분에 변두리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여자. 미용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싹싹한 남자 헤어디자이너를 전면 유리로 힐끗힐끗 훔쳐보면서, 관리 되지 않은 자신의 몸매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여자. 그 여자는 자신의 은밀한 공간에 뱀을 키우면서 허물벗기를 소망한다. 늘 꿈꾸던 그것으로의 변태를 시도한다.
소설은 인간과 뱀의 공간 속에서 독특한 교감을 형성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적인 묘사로 현장성을 확보한 미용실이라는 공간은 뱀의 사육이라는 또 다른 구도와 얽히면서 꼼꼼한 리얼리티를 확보해 나간다. 소설 속을 부유하는 소통 부재의 인물들, 그들의 내면에 도사린 죽음의 그림자를 밟아가는 문장들이 수술실의 메스처럼 집요하고 서늘하다.
고독과의 싸움, 혹은 존재의 확인
김주욱 소설은 고독과의 싸움을 주제로 한다. 아니, 존재의 확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적확한지도 모른다.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에서 플라스틱 사출기로 만들어지는 인형은 <허물>에서의 주인공과 뱀의 관계처럼 또 다른 자아의 몸부림을 잘 나타낸다. 그는 현실을 의식의 세계에 접목한다. 그리하여 현실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고자 한다. 이 면밀한 문장들이 생명을 얻어 날개를 다는 순간까지, 그의 소설은 고독해질 각오를 한 것만 같다.
김주욱의 소설은 우리 문학에서 보기 힘들었던 존재론의 형이상학을 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좀더 근원적인 세계를 탐구하려는 갈망이 곳곳에 잠복되어 우리를 긴장시킨다. 좌절된 현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근래 보기 드물게 처절하다. 전편에 흐르는 의식의 연기緣起 아래 내면의 갈등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토록 아픈 일상이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고, 이 집요한 글쓰기는 상기시키며, 과연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윤후명(소설가), 추천의 말 중에서
김주욱의 단편소설집은 공장해고 노동자, 디아스포라, 현대인의 불안 심리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표제작 <허물>은 파토스적 분출이 소설 속에 잘 그려져 있어 의미 있는 소설이었다.
-경기문화재단 단독출판 선정작가 심사평 중에서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
추억의 여자만
한 가닥의 터럭
개새끼
고백
우리 사이
허물
추천의 말
작가의 말
이대 앞 미용실을 관두고 옮긴 곳이 신사동에 있는 미용실이었다. 경력을 부풀려 초급 디자이너가 되었다. 강남으로 왔다는 중압감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했다. 신사동 미용실은 큰 가정집을 고쳐 입구에 정원이 있었고 내부 치장이 화려했다. 연예인을 단골로 확보한, 어느 정도 알려진 곳이었다. 남자 원장은 항상 패션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그의 시술 가격은 직원보다 세 배는 높았다. 하얗게 칠해진 건물에 정원이 화려해서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실내에는 원장이 헤어스타일을 담당했던 영화의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고,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들의 헤어스타일이 클로즈업되어 액자로 장식되어 있었다. 원장은 마법사처럼 군림하며 직원들을 움직였다. 고급 미용실답게 격식이 달랐다. 내가 커트 중에 떨어뜨린 빗을 다시 사용하려 하자 깜짝 놀란 스태프가 새 빗을 건넸다. 손님이 없다고 아무 데나 앉을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원장의 마법에 걸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았다.
-p.193 <허물> 중에서
“넌 머리가 그게 뭐니?”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괴물을 욕실로 끌고 갔다. 괴물을 거울 앞에 세우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세련되게 바꿔보자.”
나는 가위로 머리숱을 쳐내듯이 괴물의 몸에 대고 가위질을 했다. 가위를 크게 벌려 울퉁불퉁한 살덩이에 대고 살짝 그어보았다. 깜짝 놀랄 만큼의 아픔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나는 점점 가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빨간 머리칼이 미세하게 일어났다. 머리칼은 수분을 머금고 있어야 커트가 쉽다. 나는 스프레이로 울퉁불퉁한 덩어리에 물을 뿌렸다. 푹푹거리며 물방울이 퍼졌다. 빨간 머리칼이 물방울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p. 229 <허물> 중에서
김주욱 [저]
동양화를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소설창작을 시작해 제15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제5회 청강문학상 소설대상, 2015년 봄호 문학나무 신인작품상, 제 23회 전태일 문학상을 받는 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4년에 자전적경험을 토대로 한 장편소설 『표절』을 2016년엔 소설집 『미노타우로스』를 발표하는 등 현실문제에 등돌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기 걸음을 내딛는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을 수상하였고 2016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 창작지원사업 단독 출판에 선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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