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몸을 만나온 여정
수학과 몸이 만드는 ‘예술적 풍경‘을 책 속에 담다
기록집 〈수학하는 몸〉은 2022년부터 시작된 궁리소묻다의 궁리프로젝트 〈건축무한다면각체-0에서부터 몸까지〉 중 첫 번째 과정의 기록입니다. ‘수를 감각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이 프로젝트의 첫 출발점이었고, 지난 1년 동안 궁리원(참여 예술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각할 수 있는 수의 세계를 탐구해왔습니다. 몸의 움직임 속에서, 의식 속에서, 우주의 운행 원리 속에서 수의 원리들을 찾아보려 했던 작업 과정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수학과 예술?
보통 ‘수학’ 이란 단어에 사람들은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예술’이란 단어에도 거리감을 느낄 수 있죠. ‘수학’과 ‘예술’ 두 단어는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각각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 강원도 화천 예술텃밭에 수학과 몸을 서로 만나게 하려는 시도를 한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궁리소묻다는 화천 예술텃밭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예술적 발견들을 모색하는 공연예술 리서치그룹으로 2022년 한해 동안 ‘수학하는 몸’을 주제로 한 탐구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수학’ 의문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다.
이 책의 반은 통합 리서치 및 워크숍이 끝난 후 진행된 개인 리서치에 관한 기록입니다. 수학과는 거리가 멀던 예술가들이 어떻게 수학을 만났으며 어떤 방식으로 수학과 몸의 연결성을 탐구했는지 자세한 기록들이 담겨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수학을 이런 방식으로 만난다면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독자분들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수학하는 몸에 참여한 모든 예술가와 스태프뿐만 아니라 수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모든 분들이 수학을 왜 탐구하게 되었는지 그 궁금증을 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의 의미를 재탐구하다.
궁리소묻다의 대표이자 연출인 배요섭은 “예술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대놓고 다시 물어야할 때”라고 말합니다. 예술가는 지금 여기가 어디쯤인지 아주 약간 앞서 짚어주며 약간 높은 차원을 오가며 두리번거리는 사람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눈에 보일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예술가라 칭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술가들이 모여 수학과 몸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는 것은 어떤 유의미한 발견을 만들어냈을까요? 수학과 몸 그리고 예술 그 사이를 왔다 갔다하며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과정들을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창과 ‘수학’이라는 창을 통해 우리의 ‘몸’을 들여다 본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자연수의 움직임에서 초월수의 움직임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프롤로그_수학은 어디에나 있다_배요섭
● 몸이 수학을 만나온 여정_배요섭
● 이야기 하나_수학을 느끼고 아는 존재로서의 신체
● 이야기 둘_수학이 필요한 순간
● 이야기 셋_연속성과 무한에 대하여
● 0에 다다른 몸_즉흥 움직임 워크숍_기록 김예은
● 개인 리서치 작업
- 라반의 움직임 정육면체에서의 허수의 세계로_하지은·이종무·최수진
- 대수학이 될 수 없는 사태들의 집합_배소현
- 움직임 선택의 확률_공준
- 몸-의식 원론_황혜란
- 몸과 우주의 운행원리; 때를 아는 철든 몸_나경민·박선희·김도완
- 미분화된 몸을 움직임 확률로 들여다보니_신재환
- 시간에 대한 몸의 수학적 상상_장현준
- 신체마임코딩알고리즘_이은지
- 자연의 설계도; 스스로 생겨나는 무계획의 패턴_이주야
● 에필로그
● 참고문헌
● 프롤로그_수학은 어디에나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아이가 말을 하게 되고, 사물의 이름을 익히게 되면서 나와 나 아닌 것들을 구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어느 때부터인가 수를 세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하나 둘씩 접어가면서 떠듬떠듬 셈을 한다. 셈이 익숙해지면 셈을 다른 사물들에 적용하기도 한다. 크기가 다른 사과들도 하나, 둘, 셋으로 구별하고, 친구들도 하나, 둘, 셋이라는 숫자로 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과 다섯 개의 다섯과, 친구들 다섯 명의 다섯이 같다는 것도 배운다. 사과 다섯과 친구들 다섯을 더하면 어찌되었든 열이 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된다. 친구들이 떠나고 혼자 남게 되면 나 하나만 남은 것이 되고, 사과를 다 먹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되면 이제 사과는
없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는 없다는 것을 영零이라고도 말할 줄 알게 된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모두 숫자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곧 숫자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수학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학은 우리 몸에서부터 나왔고,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수학은 땅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나무와 꽃에도 있다. 달과 해의 운행에도 있고, 행성과 별들의 움직임에도 수학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만나고, 상호작용하고,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원리를 사람들은 ‘수’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그 수들이 관계 맺는 방식을 사람들은 수학이라고 하였다. 사실은 그렇게 분별하여 말하기 전부터 인간은 수의 원리를 느끼고 알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수라고, 수학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근대에 와서 인간들은 숫자를 사용하고, 숫자를 대신해서 표기할 수 있는 다양한 문자의 체계를 발명하여 수학을 복잡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어려운 궁지로 수학을 몰고 갔다. 하지만 그런 혼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학자들은 단순하고 명료한 어떤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로저 펜로즈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것 한 가지는, 세계가 아주 놀라운 정확도로 수학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물리적 세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연 법칙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물리적 세계는 거의 증발해 버리고 단지 수학만 남는다. 물리 법칙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수학과 수학적 개념의 세계로 점점 더 몰입하게 된다.” 더 나아가 수학자들은 현실 세계가 먼저인지, 수학적 개념 세계가 먼저인지 교묘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십수 년간 몸을 탐구해오던 퍼포머들과 2021년 ‘즉흥수행법’이라는 일련의 탐구작업을 하면서 문득 수학을, 수를 떠올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움직임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그 순간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속에서 어린 시절 숫자를 알아가면서 느꼈던, 지금은 망각 속에만 남아 있는, 그런 비슷한 깨달음의 경이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적 경험이 주는 경이로움
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즉흥이라는 것은 촘촘한 인식의 층위들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매번 무엇을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즉흥은 언제나 새롭고 집요하고 자극적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항상 궁금했었다. 무엇이 그런 움직임을 생성해내고 있는 것일까. 보고, 듣고, 느끼고, 또 느끼는 그 몸들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낯선 말과, 움직임과,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순수하게 되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수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막연한 직감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근거로 확인하고 싶었다. 수학을 알게 되면 몸에 대해서,
몸이 만드는 비경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될 거라 믿었다. 수학을 몸으로 한다는 말이 어딘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한번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팬로즈의 말처럼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물리적 요소들 이면에 수학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이 포진해 있는지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모리타 마사오의 『수학하는 신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 제목에서부터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책에서 ‘수학한다’는 것이 내 신체와 환경을 횡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세상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체와 환경을 횡단하는 일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행위를 연결시키는 일일 것이다. 신체를 몸으로 치환해서 다시 써본다.
궁리소묻다 [저]
궁리소묻다는 화천의 예술텃밭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여러 장르 예술가들과의 창작작업을 이어가는 공연예술리서치그룹이다. 연구, 훈련, 아카데미 등을 통해 축적된 새로운 발견들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생명과 비생명, 의식과 비의식의 경계를 오가며 ‘몸’의 근원을 찾아 궁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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