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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에서의 한 달 
히샴 마타르, 신해경 ㅣ 열화당 ㅣ A Month in Si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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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
2024년 05월 01일
  • 페이지수/크기/무게
168page/117*188*15/322g
  • ISBN
9788930107853/8930107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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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요구하는 그림 너무나 많은 전시와 관련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자신의 눈으로 차분히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우 틈을 내 미술관에 가서도 그 오랜 시간을 견뎌 우리 앞에 당도한 그림들을 잠깐씩 훑어보고 나올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예술도 빠르고 많이 경험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림은 왜 그려져 왔으며,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일까. 리비아계 영국 작가인 히샴 마타르(Hisham Matar)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찾아간다. 그는 하나의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는데, 서너 달은 기본이고 일 년이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버지의 행방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채 사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한 번에 하나씩 그림을 본다. 이런 방식으로 보면서 많은 이득을 얻었다. 바라보다 보면 그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림이 시간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림은 점차 그에게 삶의 물리적인 거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거처가 되었다.
  • 묘지 없는 애도자 마타르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Jaballa Matar, 1939-?)는 리비아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물로 지목되면서 1979년부터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90년 3월 카이로에서 납치되어 리비아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96년 6월 29일 이곳 정치범들이 대량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생사불명 상태로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가 납치되었을 때 마타르는 열아홉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때부터 시에나파 그림들은 그에게 피난처이자 외부 세계와 만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삼십 년 가까이 흐른 뒤 그는 마침내 이 그림들의 고향을 찾는다. 그가 시에나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버지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록한 『귀환(The Return)』의 집필을 마친 즈음이었다. 그가 하필 시에나파 그림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시에나 화파는 13-15세기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번성한 화파로, 그 시조라 불리는 두초 디 부오닌세냐, 고딕 양식을 접목한 피에트로와 암브로조 로렌체티 형제, 타데오 디 바르톨로, 마테오 디 조반니 등이 대표적 화가이다. 비잔틴도 아니고 르네상스도 아니며, 피렌체 화파처럼 극적인 느낌도 없는 그 그림들은, 어딘가 어색하지만 인간적이고 세밀하면서도 정서적인 묘법으로 마치 변종처럼 홀로 존재한다. 마타르도 처음에는 그 그림들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그림들에서 흔히 보이는 대칭적인 구도와 노골적인 시선이 무례하고 적대적으로 느껴졌고, 기독교적 관례와 상징이라는 은둔 세계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보러 갔다. 그리고 그 그림들의 색, 섬세한 형태, 정지된 드라마가 점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타르는 몇 달에 한 번씩 내셔널 갤러리로 두초의 〈수태고지〉나 〈눈먼 사람을 치유하다〉를 보러 간다. 시에나로 떠나기에 앞서 마타르는 ‘진정으로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반어적으로 질문하는’ 그림인 〈눈먼 사람을 치유하다〉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완성된 것을 보여주기보다 보는 이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듯한 시에나파 그림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림의 완성에는 감상자의 해석이 필요하다는 그런 예술의 초기 사례라고나 할까. “그림이 보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인간이 공통으로 겪는 경험이 예술가와 보는 사람, 예술가와 대상 간의 계약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 새로운 협업 형태가 어떤 창작의 가능성을 주는지 그 그림들이 묻고 있음을 우리는 간파할 수 있다.” 시에나의 알레고리 속으로 시에나에 온 마타르는 캄포 광장의 푸블리코 궁전으로 향한다. 이탈리아가 통일된 국가가 되기 전에는 세습 군주가 지배하는 여러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는데, 시에나는 시민 통치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 도시는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 시에나 정부가 주축이 되어 스스로 세금을 결정해 거두고 법을 만들어 강제했다. 부유하고 잘 통치되는, 당시 기준으로는 민주적인 곳이었다. 13세기에 시에나 공화국의 정부 청사로 지어진 푸블리코 궁전은 그 행정의 중심이었다. 현재는 시청과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에는 많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마타르가 이곳을 여정의 첫 장소로 택한 이유는 시에나의 남다른 근원부터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살라 데이 노베(Sala dei Nove), 즉 ‘아홉의 방’에는 암브로조 로렌체티가 완성한 ‘알레고리’와 그 결실의 풍경들이 세 벽면을 채우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좋은 정치의 알레...
  • 두초의 문 방의 형태 머무는 곳 다윗과 골리앗 갑옷? 무슨 갑옷? 벤치 『흔적』 미술관 경비원들 푸른 리본 앉기 신앙의 문제 불 〈터키식 목욕탕〉 천사의 곤경 〈낙원〉 옮긴이 주 도판 목록
  • 히샴 마타르 [저]
  • 1970년, 뉴욕에서 태어난 히샴 마타르는 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리비아에 가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카다피 정권의 눈 밖에 나면서 가족들과 함께 이집트의 카이로로 도피한 그는 그곳에서 열다섯 살 때까지 살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했다. 1990년, 아버지가 리비아 비밀 경찰에 납치되었을 때 히샴 마타르는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스무 살짜리 대학생이었다. 이후 '인디펜던트'지 등에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회한, 남아 있는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술회하는 에세이를 기고했던 그는 데뷔작 '남자들의 나라에서'를 통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사랑의 시"를 써냈다.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22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유럽의 품격 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 신해경 [저]
  •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공공정책학(국제관계) 석사과정을 마쳤다. 생태와 환경, 사회, 예술, 노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어떤 그림』, 『풍경들: 존 버거의 예술론』, 『야자나무 도적』, 『사소한 정의』, 『북극을 꿈꾸다』, 『발전은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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