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원로시인 성찬경 시인의 신작 시집. 밀핵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시인만의 용어인 요소시要素詩, 일자일행시一字一行詩와 그 궁극의 형태가 되는 일자시, 절대시 등 지금까지 한국시단에서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시를 선보인다. 언어의 밀도를 보여주는 순수절대시로 젊은 세대의 실험성을 무색케 하는 난해함과 신선함이 돋보인다. 자유로운 정신과 싱싱한 감각으로 삶의 울림을 옮겨냈다.
1. 한국 시단에 떨어진 원자폭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원로시인 성찬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실험시를 추구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난해함과 신선함이 가득하다. 밀핵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시인만의 용어인 요소시要素詩, 일자일행시一字一行詩와 그 궁극의 형태가 되는 일자시, 절대시 등은 지금까지 한국시단에서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으로서 시에 내재한 의미의 밀도를 드러내 보인다.
시인이 이야기했듯 이번 시집은 우리 시사에서 물리학에서의 특수상대성이론과 같은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며, 그만한 파장과 논란이 예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시집의 시들은 재미있고, 유쾌하게 또한 가볍고 정밀하게 시의 결정結晶과 언어의 밀도를 보여준다.
순수절대시를 지향하는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의미의 다이아몬드’ ‘의미의 라듐’ 같은 시가 ‘밀핵시密核詩’다. 또한 시에서 ‘의미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말을 절제해야 하며 가능한 한 군더더기 말은 빼야 한다. 그리하여 의미의 핵심부분, 심상의 핵심 부분만을 간명하게 남기려는 것이 ‘요소시’의 취지이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결과적으로 낱말만을 모은 시다. 2자 1행 22행 시라 할 수 있는「사랑」(본문 106쪽)과 한국 최초의 1자 1행 시가 된「해」(119행, 본문 108쪽)가 그 보기다.
이론상으로 한 편의 시에서 의미의 밀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려면 말과 글자의 수를 최소화해야 되며, 글자 하나가 시 한 편이 된다면 의미의 밀도의 최대치를 얻게 된다. ‘일자일행시’에서 시의 행수行數를 최소로 줄였을 때 1행이 되는데 이 때는 글자가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일자시一字詩’ 일명 ‘절대시絶對詩’가 나왔다. 이 시집 끝부분에 나오는 시「똥」(본문 128쪽)과「흙」(본문 130쪽)이 그것이다. ‘일자시’ 또는 ‘절대시’는 글자 하나가 동시에 시의 제목이자 시의 내용이 된다.
‘밀핵시’에서 ‘요소시’로 ‘요소시’에서 ‘일자일행시’로 ‘일자일행시’에서 ‘일자시(절대시)’로 ‘절대시’에서 다시 ‘순수절대시’까지 왔고, 이 ‘순수절대시’가 ‘밀핵시’를 끌고 온 성찬경 시인의 실험적 추구의 종점이자 귀착점이 되었다.
2. 느낌에서 언어형상에로의 온전한 이행
――「셋잇단음표에 대하여」(이윤택)
음악은 최고의 감수성이다. 칸트가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선율을 따라잡기란 예삿일이 아니다. 언어로써 선율을 포획하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시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무용조곡 「봄의 제전」을 시적 구성력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윌리암 카알로스 윌리암스 같은 시인이 좋은 사례가 된다. 성찬경은 안톤 부르크너의 교향곡 제4번을 모티브로 하여 자신의 감수성을 독자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 첫 단계는 의문부호로 연결되는 묵상이다.
이상하게 아름다운 그 느낌의 비밀이
나를 놓지 않는다.
지하철에서도 나를 따라다니고
술집에서도
노란색 가로등에서도
신록의 숲에서도
어디에서나 따라다니는데
이 묵상의 깊이는 의미나 힌트로서가 아니라 온몸의 느낌 그대로 발성된다. 시인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밟고 춤추는, 혹은 비대상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된다.
둘,
이어
셋으로.
이상한 노을이다.
따안따안하는 길...이로 타박타박타박.
시인은 선율의 느낌과 함께 움직이면서 생각한다. 〈이상한 노을이다〉라는 느낌이야말로 안톤 부르크너의 교향곡에서 파생된, 그러나 교향곡과는 상관없는 시인 성찬경의 독자적 감각이다. 이 시인의 독자적 상상력은 여기서부터 무한대로 폭발하기 시작한다.
행성. 혜성. 충돌. 몰입. 몸뚱이. 머리
(중략)
0.3 3 3 3 3 3 3 3 3………
(중략)
가열하다. 부드럽다.
숲 속이다. 폭포다. 바람이다.
여기서 의미론적 언어는 해체된다. 이미지의 연쇄반응이 돌출시키는 단어들이 자유롭게 튕겨올라 지면에 탁탁 박힌다. 이 단어와 단어들 사이에 서술적 의미는 지워진다. 이어지는 것은 느낌의 주술적 연계 같은 것뿐이다. 이 느낌의 연계가 닿는 지점은 어디인가.
허사虛辭다. 동사다.
껍질 벗는 영혼이다.
울림이 열림.
이 마지막 부분은 성찬경의 시학 같은 집약적 의미를 지닌다.
허사虛辭다 ― 시는 관념이 아니다. 시는 의미가 아니다. 시는 서술적 구조가 아니다. 시의 핵은 일체의 의도성과 당위형과 청유법이 배제된 세계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허사이기 때문이다. 동사다― 시는 고정화된 이미지가 아니다. 박제된 상상력의 가공품이 아니다. 시는 움직이는 실체적 느낌이며, 끊임없이 파도치며 흐르는 일상 속의 삶의식이다. 껍질 벗는 영혼이다― 누드. 그렇다. 시는 삶의 원초적 다이나미즘이다. 일체의 현상적 노예근성과 습관을 벗어 던지는 그 자리에 남는 울림이다. 울림이 열림―이 깊이로서의 울림은 수평공간으로 확산된다. 지상의 삶으로 퍼져나가면서 무조건적인 감동을 획득한다. 여기서 우리는 〈열렸다〉는 삶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3. 매력 있는 시, 재미있는 시를 읽는 즐거움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이경호)
이 시의 매력은 우선 인간의 모든 감각을 한 사물의 모습에서 찾아내는 데에 있다. 2행과 4행의 〈가〉와 〈보다〉를 각각 하나의 행으로 처리함으로써 1행과 3행의 〈그림자 버스〉와 〈실물 버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한 점도 재미있고 〈약간 흐린 날이라〉를 괄호 안에 넣음으로써 버스에 대한 묘사가 설명의 상태로 느슨해질 수 있는 점을 방지한 점도 돋보인다.
이 시의 중요한 의미상의 징후는
논을 마구 쓸고 가도
풀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마구 훑어도
검은 흙 한 톨 튀지 않는다.
에 있다. 시인은 단지 버스의 그림자 속에서만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그림자의 의미망을 포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달리는〉 동작이 〈풀 하나 흔들리지〉 않게 하며, 〈흙 한 톨 튀지〉 않게 하는 시각적 완벽성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소리 하나〉 내지 않는 청각적 완벽성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각적 완벽성은 다시 높고 낮은 장애물을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버스의 그림자를 악보 음표의 높낮이로 보게 만들고 버스 그림자의 〈둥그스럼〉한 모양이 매끄럽게 이동하는 모습은 시각적·청각적 완벽함을 갖춘 〈신동의 악보〉로 비유되고 있다. 그 다음 행의 ‘착 붙어/논을 핥는다.’는 표현은 바로 이 시의 백미와 같은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버스의 그림자가 논 위로 포개어진 채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음식을 핥고 있는 혀의 모습을 발견해 낸 것이다. 시각이 자연스럽게 미각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논을 핥는 혀의 맛을 〈전내기 진간장〉이라 표현함으로써 지극한 맛의 효과까지 표현해내고 있다.
다음 부분의 ‘논과 그림자 버스는/알몸과 알몸’이라는 표현도 절묘하다. 그림자와 논이 완벽한 평면으로 겹쳐진 모습 속에서 촉각을 통한 관능적 낌새를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의 네 행, 즉
납작한 밀착이다.
철저한 천착이다.
완벽한 이별이다.
흔적은 무구無垢다.
에 이르러서는 촉각과 시각의 결합된 모습 속에서 관념적인 의미까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감각과 관념, 혹은 감성과 지성의 결합은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언뜻 부자연스럽고 낯설게 보이지만 이러한 결합이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통합된 감수성의 표현은 오히려 싱싱하고 입체적인 의미를 구성해 독자에게 보여 준다. 이러한 표현기교의 효과에 대해서는 영국의 대비평가인 엘리어트가 이미 논한 바 있거니와 시인의 전공이 영문학인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표현기교에 능숙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우리는 사회적인 현실의 무게에 항상 짓눌려 있고 그러한 현실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시나마 사물의 조그마한 현상 속에서 삶의 순수하거나 기이한 진실을 목도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유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 세밀한 현상에 대한 공교롭고 치밀한 관찰태도가 나름대로의 문학을 대하는 태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허황되고 경직된 사회적 목소리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의 기율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찬경이 보여주는 시의 매력은 나름대로의 입지점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이다.
1 셋잇단 음표에 대하여
서시
점이 진리다
5: 18
풍선날리기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
주문 없이는
하루하루가
금강산 깊은 품이
경악선
셋잇단 음표에 대하여
2 논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어가 한 번
미시시
재미에 신들리면
미요한 동기에서
삼계를 ？躍？
저 두엄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가
상대성 원리와 사랑
현실과 시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3. 요소시
요소시
기로서
기
기는
기로
기를 뿜는 것이 기쁨이라던가
요소체
동사로 쓴 시
다 오라
무지무지하게
4 똥
조립완구
먹고
사랑
해
한
학(일자일행십칠행시)
밝
님
일자일행시
활짝
똥
흙
용어풀이와 팔레트 걸어놓기- 성찬경
느낌에서 언어 형상에로의 온전한 이행 - 이윤택
매력 있는 시, 재미있는 시를 읽는 즐거움- 이경호
성찬경 [저]
1930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보성중학(6년제)과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경복중학교 영어과 교사를 거쳐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한국시인협회장, 가톨릭문인협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역임하였다. 36년 "문학예술"에 시 '미열'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66년 첫 시집 [화형둔주곡]을 발간한 이래 [벌레소리 송송] [영혼의 눈 육체의 눈] [거리가 우주를 장난감으로 만든다] 등 12권의 시집과 시선집 [육체의 눈 영혼의 눈] 평론 [시어로서의 우리말 서설] 등을 펴냈다. 구상, 박희진 시인과 더불어 공간 시낭독회를 30여 년 이끌어왔다. 한국시협상, 서울시문화상, 월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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