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전 시를 통해 문학과 권력의 관계를 살펴보다
〈한시의 비밀〉은 시를 통해 중국 문화의 원형을 다시 살펴보는 책이다. 시는 시인이라는 개별자가 자신의 감회와 바램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라는 유기체 속에서 매개 콘텍스트로 유통될 때에는 전혀 다른 작용을 할 수 있다. 중국은 일찍부터 시와 노래의 이러한 속성을 알아차리고, 이를 개념화하여 통치에 이용하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와 노래를 재조명하며, 왜 고대 중국인들이 시를 그토록 중시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단순하게 문학의 한 장르로 시를 보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시가 통치를 위한 효용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심미적 차원과 인식 및 커뮤니케이션 기능이라는 폭넓은 차원에서도 활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중국 시의 발전과 시의 시대적 역할을 고찰하며, 비판적 시각에서 중국 고전 시가의 본질과 그 흐름을 다시 짚어본다. 권력이 시를 왜곡한 최초의 원형을 '시경'과 초사로 보고, 그 갈등의 발원과 실제를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문화에서 노래와 시가 갖는 본질을 탐구하고, 중국 문화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하였다. [양장본]
시는 시인이라는 개별자가 자신의 감회와 바램을 노래한 것이지만, 그것이 중국 사회라는 유기체 속에서 매개 콘텍스트로 유통될 때에는 전혀 다른 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천심은 민심을 통해 그 모습을 들어내고, 민심은 노래가락을 통해 그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니, 천하를 꿈꾸는 자여 어찌 노래를 등한시할 수가 있겠는가? 이 권력과 노래가 연출하는 애증의 쌍곡선이 중국 문화의 특질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만이, 시집이 경전이 되고(詩經), 2,500여 년 전에 이미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노래를 수집하고(國風), 고위 관료를 뽑는 데 시짓기로 성적을 매기고(과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시인이 혁명가가 되는(모택동) 그런 문화 지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 인터뷰〉〉
〈한자는 중국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욕망하는 천자문〉에 이은 권력과 문화의 관계를 구명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어떤 점에 중점을 두어 저술하셨습니까?
이 책에서 내가 특별히 득의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적인 인물로 여겨온 공자를 매우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파악한 점이다. 다시 말해 공자는 사상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요, 음악가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책에서 자세히 분석해 놓고 있지만, 공자를 감성적인 사람으로 전제를 해야 그의 언행들에 대하여 수긍이 간다. 공자를 이성적인 인물로 그린 것은 후대 유학자들의 왜곡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지만, 그 ‘공자’는 바로 후대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수요에 따라서 만들어낸 공자이다. 그래서 이치로 철저하게 무장시킨 공자이기 때문에 그 이치가 사람들을 억압함으로써 ‘그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는 이상한 역설이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것이다.
공자가 “순임금의 음악을 듣고는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라든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등의 언행이 수긍되는 것은 바로 이 흥을 느낄 줄 아는 감성 때문이다. 따라서 흥에 죽고 사는 사람이라면 존재론적 삶을 뒤흔드는 문제에 대하여 굴원처럼 죽음으로 맞서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노래의 이 위대한 힘을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파악했기 때문에, 훈고라는 형식을 만들어 음악을 길들여왔던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책머리에
프롤로그/ 노래하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기네
제1장 왜 시를 통해 중국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가
1. 중국인에게 시는 무엇인가
2. 시의 관념화
3. 음악과 디오니소스
4. 소리란 무엇인가
제2장 고대 중국 시의 모습과 낭송
1. 충서 - 음악의 시작
2. 청각적인 감응을 중시한 유가와 감성적인 공자
3. 음악의 통치적 기능
4. 음악 속의 언어, 또는 시
5. 낭송의 의미론
6. 훈고학：음악의 소외
제3장 시경의 비흥과 주문휼간
1. 상징과 음악
2. 시경의 권위와 기능
3. 부·비·흥에 대한 재해석
(1) 흥
(2) 비
(3) 부
4. 주문·휼간
(1) 주문·휼간의 의의 /
(2) 훈고의 기술art：미자
(3) 감응의 이치화
제4장 다시 읽는 굴원과 초사
1. 굴원의 일생과 초사에 대한 전통적 인식
2. 초사의 문학성
(1) 문학의 본질
(2) 상징과 피안의 세계
(3) 굴원의 욕망
3. 이소와 주문·휼간
4. 발분의 진정한 의의
5. 역대 권력과 이소
에필로그 / 시와 노래야말로 소외당한 자들의 외침
찾아보기
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중국의 명시를 최소 일백 수 정도는 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얼마 전 북경에 갔다가 칭화淸華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우리 학생들을 시내의 대중음식점에 불러 모아 격려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시 이야기가 나와, 평소 내가 강조한 대로 돌아가며 그동안 중국에서 배운 시 한 수씩 외우기로 했다.
그때 한 학생이 당나라 왕발王勃의 ｢두소부지임촉주杜少府之任蜀州｣를 외우다가 갑자기 다음 구절이 생각나질 않아 당황해 했다. 그러더니 무의식적으로 마침 서빙하던 여종업원에게 다음 구절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종업원은 웃으며 그 자리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 내 벗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을지니. 헤어질 이 길목에서, 아이와 아낙처럼 수건을 적시지 마세나(海內存知己, 天涯若比鄰. 無爲在歧路, 兒女共霑巾)”라고 나머지 구절을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시경의 시는 원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악곡을 붙였던 가사다. 논어를 비롯한 고대 문헌에서는 공자가 시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그 시를 인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가 중시한 것은 기실 가사보다는 악곡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꾸욱꾸욱 물수리 關關雎鳩
황하 모래톱에서 우는데 在河之洲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대장부의 좋은 배필일세 君子好逑
올망졸망 마름풀 參差荇菜
이리저리 찾노라면 左右流之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자나 깨나 그리네 寤寐求之
이렇게 시작하는 시경 ｢관저關雎｣를 평한 공자의 저 유명한 “｢관저｣ 시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關雎樂而不淫 哀而不傷)”라는 구절은, 사실 악곡을 겨냥해서 한 말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왜냐하면 속된 말로 썰렁하기까지 한 가사만 본다면 공자의 이런 극찬에 가까운 평어에 수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리따운 아가씨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그녀를 얻어서 잘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 뭐 그리 슬프고 즐겁단 말인가? 공자의 평어는 ｢관저｣ 시에 붙여진 악곡이 연주되었을 때 그 감각이 불러일으키는 감응이 그렇다는 말로 보는 것이 실제에 가까울 것이다.
김근 [저]
인천에서 자라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계명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거쳐서 지금은 서강대학교 중국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중국 언어학이고, 주요 연구주제는 언어와 이데올로기이며, 특히 권력으로서의 문화에 관심이 많다. [한시의 비밀], [욕망하는 천자문], [한자의 역설], [한자는 중국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예란 무엇인가] 등의 책을 썼으며, [여씨춘추], [설문해자통론]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권력은 궁극적으로 상징계의 장악에서 비롯된다. 상징계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운명의 본질이 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운명의 원형을 [주역]에서 찾아왔으므로, 이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주역]과 [춘추]를 다시 조명하고자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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