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오는 시간』은 임원식 시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이다. 공직을 마치고 사업가로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분이 늦깎이로 오르페우스의 후예가 되어 발행한 시집이 무려 열다섯 권에 이르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른 나이에 문단에 나온 시인도 이만큼의 작품을 낳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낳은 것은 임원식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이 오는 시간』은 “시란 기쁨(delight)에서 시작하여 예지(wisdom)로 끝난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을 입증하고 있다. 프로스트의 시에 대한 명제는 한 편의 시를 두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시인들의 시작 과정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다. 첫시집 『당신의 텃밭』에서 『사랑이 오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 동안 임원식 시인은 시작을 통하여 기쁨의 단계에서 예지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의 해설을 맡은 염창권 시인은 그러한 모습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 임원식 시에 나타나는 자기성찰은 세계구성원을 자신의 내부로 초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 부름을 받는 대상들은 내면화를 위한 환유적 장치이며 견성을 가져오는 도구이다. 대상 호명과 응답의 과정을 보여주는 시,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 존재의 생성과 출발의 모태가 되는 자연에 대한 궁구(窮究)가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소리를 낸다”는 선언적인 명제는 이후의 시행들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견성(見性)의 과정을 응축한다.
『사랑이 오는 시간』은 전통적인 서정시로 이루어진 시집이지만 임원식 시인이 얼마나 말장난(pun)을 잘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던한 시들이 있다. 「토마토가 토토토」와 「설요일」이 바로 그런 시다.
제 몸 챙기느라/ 운동장을 돌고 도는/어른들의 발자국 소리에/장단이라도 맞추는 것일까/귀 기울이면/토, 토, 토... 마, 마, 마, 토, 토, 토.../고것들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토마토가 토토토」부분)
설/설/설/눈이 내리면/한 개의 발자국은/천의 발자국이 되고/발자국은 새가 되어/하늘 속으로 날아간다 (「설요일」부분)
표제작인 「사랑이 오는 시간」은“사랑이라는 말이 있으니/눈도 코도 귀도 있을 터/아름답기는 무엇에 빗댈 수 있으며/머무는 시간은 얼마 동안일까”라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한 마디로 사랑은 이목구비를 지닌 생명체다. 이 시는 “사랑이 오는 시간/그 발자국 소리에/귀 기울여 무엇하랴”로 끝난다. 사랑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은 사랑이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사랑의 발자국 소리를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표사
임원식 시에 나타나는 자기성찰은 세계구성원을 자신의 내부로 초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 부름을 받는 대상들은 내면화를 위한 환유적 장치이며 견성을 가져오는 도구이다. 대상 호명과 응답의 과정을 보여주는 시,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 존재의 생성과 출발의 모태가 되는 자연에 대한 궁구(窮究)가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소리를 낸다”는 선언적인 명제는 이후의 시행들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견성(見性)의 과정을 응축한다. 자연물인 강, 달, 산, 꽃 등의 “서로 다른 소리들이/ 낮게 높게 화음을”을 이루듯, 각각의 대상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음역을 가진다. 이 소리들이 어울려 자연의 화음이 이룬다. 이때 시인이 호명하는 자연물들은 영구한 자연의 질서를 보편적으로 환기시키는 대상들이다. 그의 추구가 변증법에 의탁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호출하여 이를 토대로 자아성찰의 계기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들지 않는 소리들이/ 나를 불러내고 있다”는 언명은, 존재자로서의 ‘나’ 또한 자연의 보편적 속성에 의탁하여 절대자의 부름에 닿고자 하는 희구를 함축한다. (-해설 중에서) 염창권 광주교대 교수, 시인
시인의 말
차례
1부
떠난다는 것
나를 부르는 소리
겨울 아침
단풍 앞에서
가을나무가 되어
자연산은 없다
꽃에서 열매까지
길은 길을 낳는다
사는 계절을 연주한다
모든 길은 곡선이다
자유
잎새들의 노래
길을 돌다
지휘자
알파고 시인
열매는 뿌리가 만든다
매미는 언제 우는가
토마토가 토, 토, 토
꽃들도 저희들끼리
검은 햇빛
ㆍ
ㆍ
[중략]
ㆍ
ㆍ
5부
손
나뭇잎이 질 때
A학점 낙제생
및의 바다
임마누엘 만세
아침마다 세례
문
빛이 되고 소금이 돼라지만
두 얼굴의 만물상
벽
신은 있다
교회 문을 나서며
가을 나무가 주는 것
출판기념회
십일조 헌금
사랑을 향한 궁구, 혹은 그 변증법적 응답 염창권
임원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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