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화는 매우 다의적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저자는 한국의 법문화를 광범위한 의미에서 다루기 위해 세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첫째 법문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 법문화가 어떻게 구조지어졌는가를 밝힌다. 셋째, 한 사회의 경제·정치·사회구조가 변화하듯이 법문화 역시 변화한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 지난 50여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법문화의 인식적 변화, 법행동의 변화 등을 탐구한다.
한국사회의 법현실을 이해하는 틀로서의 법문화
정부와 시민, 노동자와 경영자, 노동자와 노동자,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교사와 교사, 의사와 환자, 부모와 자식, 지식인과 지식인, 거의 모든 관계들이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 속에서 과연 법은 어떤 작용을 하며, 시민들의 법의식과 법행동은 어떠한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변하기 위한 시도로, 법문화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풀어간다.
그렇다면 법문화란 무엇인가? 한 국가의 법체계는 실체적 법규범, 법제도, 법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법규범은 구체적 규범의 형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법의 영역에서 가장 확인하기 쉬운 대상이고, 법제도의 경우도 법규범에 의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개 법규범이나 법제도를 제외하고 법과 관련된 사태들을 일컬을 때 법문화라는 말이 사용된다. 법문화만큼 포괄적이고 다의적인 개념도 드문데, 문제는 이렇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법문화의 영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이다. 때로는 법문화를 법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식이나 태도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의식이나 태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법문화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첫째,인식의 문제로서 법문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구조의 문제로서 법문화가 어떻게 구조지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셋째,한 사회의 경제·정치·사회구조가 변화하듯이 법문화 역시 변화한다는 관점이다. 한국의 경우,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법문화도 급속하게 변화해왔다. 이러한 법문화의 측면은 사회학에서 탐구되는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사회변동을 탐구하는 데 사용되는 거시적 변동과 미시적 변동의 과정으로 법문화의 변동을 살펴본다. 거시적 분석방법으로는 주로 통계적 방법을 활용해서 한국의 사적, 공적 영역에서 한국인들의 법행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추적하고, 미시적 분석방법으로는 구체적 분쟁사태 속에서 사람들의 법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추적한다. 위의 세 가지의 관점에서 지난 50여년간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법문화의 인식적 변화, 법행동의 변화 등을 설명한다.
특히 미아 1-1 재개발지구에서 발생한 분쟁을 다룬 제9장 “집단분쟁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에서 한국인들의 권리의식이나 법의식의 변화양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분쟁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시사한다. 첫째, 이제 사회구성원들이 집단분쟁에 연루되었다 해서 반드시 과거처럼 물리적 힘의 행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둘째, 전통적 표현방식(시위나 집회)과 더불어 법적 수단을 동시에 강구한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 사회의 주민들이 이제는 ‘법대로’가 행정관청의 독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법대로’가 주민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어느 수단보다 유익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넷째, 법원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판단이 시민들의 법의식을 고양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집단행동의 과정에서 드러난 참여자들의 법의식이나 권리 및 공적 기관들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지난 30여 년간 변화되어온 한국인들의 권리의식이나 법의식의 변화양상을 잘 보여준다.
법은 한 사회를 지탱하고 운영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법질서가 혼탁하면 그 사회는 혼탁할 수밖...에 없고, 법질서가 건전하면 그 사회는 건전하게 지탱할 수 있다. 법문화는 그러한 법질서와 법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폭넓고 풍부한 주제들을 통해 한국 법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갈수록 법현실의 복잡성으로 혼란스러워지는 현상황 속에서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게다가 법문화의 과거와 현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앞으로 가꾸어갈 법문화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머리말 / 5
제1장 서 론 13
제2장 한국 법문화의 인식과 접근 25
1. 인식의 출발 25
2. 고유한 문법을 드러내는 접근 29
3. 근대적 관점에 근거한 접근 43
제3장 법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53
1.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53
2. 법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61
3. 한국 법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 70
제4장 법과 사회에 관한 새로운 접근 75
1. 머리말 75
2. 법과 사회연구의 발전과 위기 78
3. 비판적 경험론의 구성 86
4. 맺음말 100
제5장 근대의 심리구조와 규범체계, 그 딜레마의 원천 103
1. 머리말 103
2. 근대인의 심리구조 106
3. 근대의 규범체계 115
4. 현대 한국인의 심리구조와 규범체계 122
제6장 전통적 규범공동체의 원형과 해체 133
1. 머리말 133
2. 전통적 규범공동체와 분쟁해결 135
3. 전통적 규범양식의 해체와 분쟁의 새로운 양상 140
4. 한국인의 규범의식의 변화 144
5. 새로운 규범질서의 요청 149
제7장 사적 영역에서의 분쟁의 양상, 그 변화와 원인들 153
1. 머리말 153
2. 소송폭발의 사회로 가는 길목 157
3. 분쟁해결과정 168
4. 분쟁의 다변화 ... 171
5. 분쟁에 대한 관점의 전환 177
제8장 공적 영역에 나타난 한국인의 규범질서 181
1. 머리말 181
2. 범죄발생 현황에 대한 분석 184
3. 기초질서 준수상황 190
4. 공적 관리들의 규범질서 197
5. 맺음말 201
제9장 집단분쟁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 205
1. 머리말 205
2. 재개발사업 추진과정 207
3. 분쟁의 발생과 전개과정 212
4. 분쟁과정에 나타난 법의식의 변화 227
5. 맺음말 238
제10장 법원의 법문화: 법원의 이미지와 법원의 현실 241
1. 머리말 241
2. 법원의 이미지와 법원의 현실 244
3. 권위와 불공정을 낳는 사법구조 254
4. 맺음말 269
￭참고문헌 273
￭찾아보기 277
이 책은 앞에서 제기한 물음에 대해 답변을 하기 위한 시도이다.
첫째, 한국인들은 법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법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가 그리고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그 해결책으로 법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의 법문화와 법사회학적 탐구를 시도했던 법지식인들이 당시의 법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이 물음에 접근하였다.
둘째, 구조의 문제로서 한국의 규범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규범체계의 구조는 전통적 규범체계와 서양에서 수용한 현대적 규범체계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들 규범체계는 각기 고유한 내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각 규범체계의 내적 구조를 분석하고, 두 이질적 규범체계가 병존하면서 한국인들의 법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셋째, 사회변화의 문제로서 한국인의 법의식과 법행동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지금의 한국인들은 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주제는 사회학에서 사회변동의 문제로 다루어지는데, 이 책에서는 법문화의 변화의 문제로 접근하였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거시적 접근방법과 미시적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지난 50여 년간 한국인들의 법의식과 법행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분석하였으며, 미시적 차원에서는 집단분쟁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의 법에 대한 의식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변화하는가를 추적하였다. (pp.6～7)
한국의 법문화가 지식인들에 의해 탐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였으며, 그것은 당시 한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스며들기 시작한 근대화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사회지도층은 근대화를 시대적 명제로 설정하였으며, 한국사회의 모든 물적, 인적 자원들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식인들, 특히 법지식인들은 저발전으로부터의 해방과 법 간의 관계, 한국의 근대화와 법체계 및 법문화와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초기 법문화 탐구를 시도한 학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과제는 서구의 법체계와 한국의 전통적 문화 간의 이질적 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헌법을 위시하여 법전 속에 쓰여 있는 무수한 법규범들은 서양 근대법체계의 내용과 형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데 반해서 그 규범들에 의해 규제․통제받는 시민들의 행동과 의식은 여전히 한국의 전통, 즉 유교적 전통에 의해서 지배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질성은 서구의 학자들, 특히 미국의 법현실주의자들이 제기한 ‘법현실’과 ‘법전 속의 법’ 간의 괴리와는 그 규모와 심도에 있어서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pp.25～26)
김정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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