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2000년까지 지면에 발표할 수 있었던 글 중에서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문학, 사회, 문화에 대한 비평과 논문을 묶은 책. <상품광고 비판을 위하여>를 비롯해 대부분의 글이 특정한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나 논제에 대해 그때그때 반응한 결과를 상세하게 수록했다.
영문학자인 윤혜준 교수가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오랫동안 계간지〈사회비평〉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해 온 윤 교수는 인문학 전공자로서 동시에 제반 사회적 현상들을 치밀하게 궁구함으로써 나름대로의 독특한 필치를 일구어 냈다. 예컨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포르노에도 텍스트가 있는가’라는 글은 그의 이러한 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하겠다.
'포르노'라는 것은 어떻든 최소한의 예술적 전달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그런 한편으로 어떻든 사회적 현상으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윤 교수의 문제의식과 적절히 부합하는 주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윤 교수는 '본격적'인 국산 포르노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한국사회에서는 '위선적인 포르노'들이 대중매체에 의해 제공된다고 지적한다. 즉 신문가판대에서 판매되는 한국의 대중잡지들은 'X세대 [즐거운] 사라들'에 관하여 통계수치까지 들먹이며 짐짓 '사회과학적' 분위기까지 연출하거나, "일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신분의 지참금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관한 '인류학적 논문'까지 게재한다.
또는 길게 누운 여자의 나신 위로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처럼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할 때 출세가 보장된다"는 텍스트가 나란히 누워 있기도 하다. 이런 특성들은 윤 교수에 따르면 곧 "포르노적 환상의 자유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한국적 자본주의의 극명한 초상화의 일종"이다.
예전에는 외국에서 유명한 인물이 한국에 오면 공항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것이 관례였다.〈타임〉지에 한국관련 기사가 실린 것을 보면 득달같이 읽어야만 하는 심리도 그와 비슷한 문맥에 있지는 않을까? 윤 교수는 '타임에서 한국을 읽는 한국인들'이라는 글에서 프로이드의 개념을 도입하여 이〈타임〉지와 미국을 우리의 '초자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책은 '비평'과 '논문',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비평'에서 주로 사회와 문화의 접점에 위치한 글들이, 2부 '논문'에는 본격문학적인 글들과 더불어 국가와 개인의 문제, 또는〈자본론〉에 관한 글까지 다양하게 편성되어 있다.
1부. 비평
. 민족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 2000년 8월. 한반도 ...13
. 이방인 초자아 - <타임>에서 한국을 읽는 한국인들. 1999~2000 ...29
. 구조조정과 잉여인간 - 비유의 정치경제 ...55
. 이름 시대의 종언과 사라지는 개인 ...77
. 상품광고 비판을 위하여 ...99
. 포르노에 텍스트가 있는가 ...123
. 리얼리즘과 폭력 - <모례시계>를 기념하며 ...151
. 추학으로서의 문학 - 7개의 단상 ...171
. 한국문학의 미래 ...185
. 카메라/키메라 - 영화의 문제 ...199
2부. 논문
. 변명으로서의 서문 ...217
. 저자는 어떻게 죽는가? ...236
. 웃음. 주체. 시니시즘 - 보들레르의 <웃음의 본질>을 중심으로 ...257
. 동지적 전율 - 보들레르의 <일곱 명의 늙은 남자>와 1848년 프랑스 혁명 ...275
. 미국 인문학의 실상 - "서양 정전" 문제를 중심으로 ...297
. 영국의 서평전통과 <타임즈 문학 부록> ...313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미메시스의 문제 ...339
. 국가와 나 - 국민이 되는 법 ...365
. <자본론>과 자유. 그리고 주체 ...383
. 이론의 빈곤 -E.P. 톰슨의 인용 ...407
윤혜준 [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프랑스어 부전공)를 나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버펄로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영문학과 비교문학, 사상사 등을 가르친다. 방문학자 자격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과 런던 대학에 각각 일 년씩 머물렀으며, 이 책 [바로크와 ‘나’의 탄생]은 그때의 산물이다. 지은 책으로는 학술서 Metropolis and Experience: Defoe, Dickens, Joyce(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Physiognomy of Capital in Charles Dickens(International Scholars Publications),[포르노에도 텍스트가 있는가], 장편소설 [우르비노의 비너스],[비발디풍 어머니], 소네트 연작 [청담동의 페트라르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올리버 트위스트], [주석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로빈슨 크루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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