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영원을 사는 섬들》, 《연꽃 속의 부처님》의 저자 박희진의 시집 『4행시와 17자시』. 저자는 일기 쓰듯이 4행시를 써왔고, 그 속에서 구속은커녕 해방과 자유를 누렸다고 말한다. 최소 형식인 기승전결을 4행에 담아 소박한 형태를 띠면서도 내용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극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인의 말
제1부 사행시
2004
태산泰山 정상에서
태산泰山의 무자비無字碑
어느 조각공원에서
담양 명옥헌鳴玉軒 원림苑林
식영정息影亭
2005
차귀도
정자亭子 안엔 사람이……
정자의 주인은……
금강산 보고 나니
나와 금강산은
내 안의 구룡폭이
내 안의 만물상이
2006
우리나라 땅에……
중국에도 정자가 있지만……
월드컵 공
어젯밤 꿈에
탐라섬 무지개
시인은……
함양 상림上林에서
태양을 머금은 새
운주사 밤하늘
2007
다·다·다·다
겨울 속 봄
시인은 쉴 수 없다
김영갑金永甲의 사진
활짝 핀 복사꽃
자연의 아름다움
달은 참혹하고
새 봄
운치 있는 까치집
사랑의 정의
사랑의 본질
삼백 년을 두고……
은행나뭇잎 움틀 때엔
산딸꽃
1932년 헤르만 헤세
풀밭 위의 거대한 유리잔
모네의 수련睡蓮
라다크 노파
라다크에서
거꾸로 매달아……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마음의 가난과 고요
내가 흘린 눈물……
우중묘경雨中妙景
어느 아프리카 미인의 외출
인사동 소나무
인사동 소나무에게
아프리카 여인들이……
노송의 입적入寂
노송의 행방
노송과 나
천경자千鏡子의 한恨
호일당好日堂에서
나는 비록 백발...이……
인사동 초당 1
인사동 초당 2
초당 연꽃차
목소리
그냥 빙그레……
홍시와 어머니
사이가 없으므로
뒤뚱 비둘기
눈이 내린 아침의 삼각산
강송 17자시
그녀와 애완견
조선의 무명 석공
2008
우람한 적송 두 그루가
옥류동玉流洞 물은
겸재의 정양사正陽寺
삼일포三日浦
개골산皆骨山 진면목
보덕암普德庵에서
소천지小天池
백두산 하늘못은 어찌나 맑은지……
백두산은 야생화 천국
설산에 매료되어
하늘못과 백록담
아름다운 한국
현담玄潭의 선물
활 쏘는 헤라클레스
이런 사행시
애기똥풀
오늘 아침 삼각산은
보일 듯 말 듯하게
영혼을 팝니다
가을 광릉 수목원에서
여름의 종언
소슬바람에
2009
가슴속 샘
제주 칼바람은
2010
호박꽃 속으로
향원정香遠亭 연못가엔
소나무 시인
시인은 이중간첩
사진의 신비
지금
2011
시의 행간에는
본지풍광本地風光
아이와 비눗방울
저승에서 이승으로
최고의 아름다움
울릉도 도동 향나무
제주도 새천년 비자나무
순천 천자암 곱향나무
정선 함백산 주목
영주 단촌리 느티나무
느티나무 고목들의 기상천외 밑동
거창 대평리 왕버들
합천 묘산 구룡송
괴산 삼송리 왕소나무
청도 상리 돌배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순천 선암사 홍매화
예부터 마을의 당산목은
2012
해 돋는 언덕
도인道人은 왜 가끔 보이지 않는가
초상화에서
매향 17자시
상공서 부감俯瞰하면
꿈속에서
산청山淸 단속사지斷俗寺址 월매月梅
거룩한 솔숲
뜰이 물먹고 올라왔어요!
솔밭 공원에서
참새가 걷는 법
눈부신 흰 구름이
저만치 풀밭에
용송龍松과 단풍
안녕하십니까
제2부 17자시
731~835
연 보
평 설 : 인, 사, 물을 기리는 소박한 위대함_조환수
박희진 [저]
시인 박희진은 1931년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2015년 3월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보성 중학교(6년제)를 거쳐 고려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1955년 이한직·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문학예술]지를 통해 시단에 나왔다. 1961년 시동인지 [육십년대사화집]을 출범시켜 1967년 종간호까지 주도적으로 이끌며 한국 시단에 새로운 지성적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1975년에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창작계획’ 과정에 참가하여 수개월간 세계 각지에서 초청돼 온 유수 문인들과 교류하며 한국 문학과 자신의 시세계를 소개하였다. 시 낭독에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그는 1965년에 신문회관 강당에서 단독 자작시 낭독회를 연 이래 1970년에는 명동의 카페 떼아뜨르에서 ‘박희진·성찬경 2인 시낭독회’를 열었고 1979년 4월에는 구상·성찬경 시인과 함께 ‘공간시낭독회’를 창립해 작고할 때까지 상임시인으로 참여해 왔다.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상화시인상, 펜문학상, 제1회 녹색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1999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평생 수도자처럼 독신 생활을 고수하며 문학에 몰두하여 단행본 시집 36권, 수필집 3권, 1천 쪽이 넘는 시론집을 포함해 50권에 육박하는 책을 내었다(연보 참조).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번역·출간된 시집들이 현지 시인과 비평가들한테서 크게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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