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바깥과 서정적 마중
박복영 시조는 마음을 촉촉이 당기는 서정성에 독자의 산책이 가벼워진다. 참신한 비유와 묘사, 그리고 진술들이 이루는 호소력 높은 문맥이 그간의 시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복영 시인은 이미지의 명징한 결속을 우선시하며 서정적 물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안정적인 시조 보법은 확보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섬세한 감각과 촉기 어린 문장들로 옥죄지 않는 정형시의 부드러운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서정의 마중물 같은 역할은 시가 담보해야 할 오래된 소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물 무렵에 더 어둑해지는 세간의 일을 한참씩 들여다보는 저녁 마중 같은 묘사는 박복영 시조의 주요 특징을 이룬다. 이렇듯 묵묵한 관찰이나 이면의 조용한 응시를 통해 시인은 아픈 삶의 속내며 사람살이의 곤고함에 더 쏠리는 시선을 육화한다. 그중에서도 세간의 “안쪽” 같은 데를 깊숙이 짚어내는 시조로 「저녁의 안쪽」을 꼽을 수 있겠다. 우묵하니 어두워지는 삶의 안과 밖을 살피는 시선이 유독 세밀히 부조되며 우리네 저녁의 성찰을 견인하는 것이다.
시인의 말
1부 저녁의 안쪽
비의 추렴
가을 산에서 듣다
연꽃, 피다
비 갠 후
늦여름 삽화
꽃의 배후
저녁의 안쪽
허공을 읽다
거미줄 日誌
고드름
물끄러미
알츠하이머
모월모일 1
빨래터
장닭
2부 바람 서설
거문고 뜯는 저녁
뒤척이다
길을 묻다
폐가 시편
우물
늦봄 평전
만추
바람 서설
허기의 시간
소나기
겨울 한낮
거미줄을 읽다
모월모일 2
끙,
3부 유배 시첩
폭설주의보
해송전언해독
중독
미행
꽃과 바람과 새
유배 시첩
노숙
하피첩 편지
빨강의 습성
안개, 그리고 불빛
고해
고요 한 장
환한 기억
풀꽃에 길을 묻다
막사발
4부 풀꽃을 말하다
석류를 읽다
풀꽃을 말하다
한식
소멸을 꿈꾸다
해바라기
동천
인간 장터에서
말똥구리의 辨
까치집
민들레, 매듭 풀다
상여, 배추흰나비
수북한 행방
봄, 모퉁이 근처
틈論
상강
5부 회현리, 95페이지
종점
동거
파꽃
회현리, 95페이지
慶州周氏光子之墓
저녁의 허기를 수선하다
장미꽃
어느 봄날의 단상
부표 인생
일몰 무렵
불영계곡
뒤란 규찰
해...설_ 정수자
어둠의 기척으로 등불은 내걸린다
응집된 소리들과 분할된 소리들이
나직이 속살거리며 무게를 더는 시간
시선은 바깥으로 마중을 나간다
바람의 발자국을 경청하는 들녘에
나른한 젖은 노동을 끌고 오는 맨발들
더불어 걸어야 할 시간들을 보았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바람으로 흔들려도
서로를 다독거리며 지친 몸을 세운다
－「저녁의 안쪽」 전문
박복영 [저]
1962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월간문학》 시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201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으며, 천강문학상 시조대상과 성호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구겨진 편지』 『햇살의 등뼈는 휘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처럼』 『눈물의 멀미』 『낙타와 밥그릇』이 있고, 시조집으로 『바깥의 마중』이 있다. 현재 오늘의시조시인회의와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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