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펑크 영화로 알아본 기술론.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200년을 산 사나이], [매트릭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은 사이버펑크 영화읽기를 통해 생명체 복제, 전방위 통신, 인공지능, 전뇌화, 디지털화 등 인간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문명이 오히려 인간에게 새로운 위험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경고했다. 양장본
※사유와 오락이 넘치는 사이버펑크, 철학자 이정우의 유니크한 영화읽기 사이버펑크는 가장 오락적이고 가장 형이상학적인 걸작 영화다!!※영화사상 가장 수준 높은 영화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기술문명을 사유한다
사유의 항해자가 가장 오락적인 엔터테이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면 그 이유는 뭘까.
더 이상 골치 아픈 관념의 세계에 머물기를 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드넓은 유희의 바다에 풍덩 빠져 한바탕 웃고 나면 그만인 것이 인생이라고 깨닫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다. 그는 가장 방탕하게 놀더라도 항상 영민한 이성(理性)의 촉수를 지닌 말미잘처럼 부유할 것이다.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고, 보이는 것만큼 속기 쉬운 것도 없다. 그래서 영화는 가장 현시적이고 감각적이며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한편 거짓이다. 철학은 그 일회적인 오락성에 파묻혀 보지 못하는 작가와 감독의 창작 정신을 읽어 내며, 삶의 깊은 통찰을 가능케 한다. 철학은 영상을 단단하게 텍스트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담지체로써 언제나 매력이 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모든 '장르 퓨전'의 최상에서 실험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누구보다 철학의 대중화를 먼저 생각하는 소장 철학자 이정우의 라이프 스타일 엿보기다. 폭넓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유감없이 드러난 글쓰기며 유니크한 영화 읽기다.
걸작 사이버펑크 영화의 모든 것을 체험한다
철학이 영화를 만났다. 영화가 철학을 얘기했다. 어제도 있었던 주제지만 오늘만 쏟아내는 특별한 얘기다. 고도의 기술문명이 빚어낸 개체(로봇,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복제인간 등)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암울한 미래상을 다룬 영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주제라 길게 얘기하지도 않을 것이며, 재미없을까봐 해보는 곁가지식 어설픈 농담은 일체 하지 않는다. 영화도 딱 5편 준비했다.
60년대 영화부터 최근에 상영된 영화까지. 중요한 것은 하나 같이 '사이버펑크' 영화사상 걸작으로 남아 있는 수준작들이라는 점과 그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철학적으로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이 다섯 편을 읽는 것만으로 차후에 만들어지는 다른 사이버펑크는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기법의 기술적인 부분이 개선될 뿐 영화 속에 구현되는 사상적인 구도는 리바이벌될 뿐이다.
마지막에서 다루는 영화의 분량은 다른 영화의 절반 밖에 안 된다. 그러나 나머지 4편의 정리편이니 무시하지도 긴장을 늦추지도 말아야 한다. '보론'이라고 일컫는 이것은 이 저자의 장점이다.
탁월한 영상과 철학자의 순간적 예지가 만났다
영화 장면은 다양한 장면이 내용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되었고, 철학자만이 감지해낼 수 있는 주제에 맞게 독특하게 취사선택된 것이다. 일테면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애누 리브스)의 방을 찾아온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네오에게 디스켓을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네오는 돈을 받고 디스켓을『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보르리야르)이라는 책의「니힐리즘」이라는 장면에서 꺼낸다(151쪽).
이것은 철학자가 아니면 발견하기 힘든 장면이다. 또 일본 저패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저자는 감독이 독창적으로 영상에서 사용하는 아이콘을 발견한다. 복제가 현실화되면 존재론적 위상을 전혀 달리하는 세계 속에서 개체의 정체성은 무너진다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개 한 마리를 계속해서 등장시킨다는 것이다(70쪽).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저자는 놀라운 기술의 진화를 표현하기 위해 스탠리 큐브릭이 영상에 구사한 장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유인원이 하늘...에 던져 올린 뼈다귀가 갑자기 전화 수화기 크기의 우주선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그것이다(187쪽).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200년을 산 사나이
매트릭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사이버펑크란 말은 이미 진부해졌다. 대충 '사이버'를 뭉뚱그려 '컴퓨터'를 의미한다고 하고, '펑크'란 말을 '말썽꾸러기 젊은이들' 정도로 해석하지만 사이버펑크 영화하면 컴퓨터가 개인의 신경조직이나 다름없게(인공지능) 돼버린 시대의 문화현상을 그린 영화를 가리킨다.
「론머맨」「토탈리콜」「로보캅」「터미네이터」등 그리고 얼마 전 상영된「AI」까지 모두가 그렇다. 이 책은 전방위 통신, 생명체 복제, 인공지능, 전뇌화, 디지털화 등을 비롯해 인간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 문명이 오히려 인간에게 새로운 위험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경고하며 미래 인간에 대해서 사유한다. 저자는 그것을 역운(逆運)의 동그라미라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프리첼'의 TV광고를 혹시 기억하는가. 비내리는 컴컴한 도시의 한복판으로 우주소녀 같은 아이가 뛰어가는 장면. 아마 그 장면은 영화「블레이드 러너」에서 구현된 2019년의 비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암울한 분위기와 주인공 '레이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제작된 레플리컨트(인조인간)와 이들을 죽여야 하는 블레이드 러너(해리슨 포드)의 악연을 숨가쁘게 그린 최초의 사이버펑크 영화. 이후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 영화가 그어 놓은 사상적-미학적 구도 속에서 발전되어왔을 정도로 걸작이다.
「공각기동대」는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가장 형이상학적인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전뇌화(電腦化)된 세계를 배경으로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고스트(프로그램)가 새로운 고스트와 융합하고 물질(몸)을 원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영화가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며 테크놀러지의 역운을 묘사하는 데 반해 이 영화는 놀랍게 기술주의(技術主義)를 표방한다.
「200년을 산 사나이」(바이센테니얼 맨)는 '앤드류'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자리에 눈떠가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마침내 타고난 이름―자리의 체계를 가로질러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다. 사이버펑크 영화사에서 가장 진실감 있고 서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는 한마디로 진실에 관한 영화이자 선택의 문제를 다룬 영화다. 또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다룬 영화다.
광고에 이용될 정도로 독특한 촬영기법으로 보는 즐거움에만 빠진다면 '하나의 세계 전체가 진실인가 거짓인가' 하는 놀라운 형이상학적 문제를 놓치기 십상이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하는 완벽한 컴퓨터인 '핼 9000'을 통해 인간이 맞닥뜨려야 할 가장 강력한 적은 이제 테크놀러지 자체가 되었다는 역운의 파토스를 빼어난 미학적, 기술적 성취를 통해 보여준 우리 시대의 걸작이다.
철학이 영화처럼 다가왔다
영화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가장 오락적인 엔터테이너다. 철학은 학생들에게 지난한 이해의 고통을 요구하는 가장 재미없는 학문이다. 이렇게 양분해놓고도 마음 한 켠에는 오락은 적절히 자제해야 하는 것, 철학은 따분하지만 궁극적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철학은 배우고 아는 것이 본질적으로" 즐거운 행위다"에서 "즐거운 행위여야 한다"의 시대로 온 만큼 힘을 잃어왔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철학이 유난히 거리로 내몰리는 현상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존폐의 위협에서의 내몰림 같아 보이지만 변화된 새로운 상황의 인식의 촉구에 있다는 의미에서 분명 도약의 시험대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 이정우의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끊임없는 호기심과 사유의 확장은 분명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분명 이 책은 가장 오락적인 동시에 가장 형이상학적인 장르인 사이버펑크를 통해 우리에게 사유와 오락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머리말/ 이정우 ... 6
1. 제작된 인간의 운명 ... 9
-블레이드 러너
2. 자아의 해체와 새로운 인간의 탄생 ... 45
-공각기공대
3. 기계로서 살기보단 인간으로서 죽으리라 ... 95
-200년을 산 사나이
4. 진실과 저항 ... 141
-매트릭스
보론 영겁희귀하는 우주와 인간의 고독 ... 183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정우 [저]
1959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 시절 [담론의 공간]과 [가로지르기]에서 ‘객관적 선험철학’을 주창했다(두 권을 합본한 것이 저작집 1권 [객관적 선험철학 시론]). 1998년 서강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이후 [시뮬라크르의 시대]와 [삶, 죽음, 운명](두 권을 합본한 것이 저작집 2권 [사건의 철학]), [인간의 얼굴](저작집 3권 [전통, 근대, 탈근대]), [접힘과 펼쳐짐]과 [주름, 갈래, 울림](두 권을 합본한 것이 저작집 4권 [접힘과 펼쳐짐]) 등의 저작들을 펴냈으며, 객관적 선험철학을 한편으로는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 존재에 관한 이론으로 확장했다. 2000년에는 최초의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철학 연구와 시민 강좌에 몰두했으며, 이 시기에 [개념-뿌리들](저작집 5권), [기술과 운명], [탐독], [세계의 모든 얼굴] 등의 저작들을 펴냈다. 현재는 2008년에 문을 연 소운서원에서 집필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 [천하나의 고원], [주체란 무엇인가], [세계철학사 1 : 지중해세계의 철학] 등을 펴냈으며, 현재는 ‘세계철학사 3부작’의 완성과 정치철학적 저작들([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소수자 정치학], [사건의 정치학])의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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