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시집『낮술』. 논산 쌘뽈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상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본문은 '낮술', '딸', '국수', '슬픔에 대하여', '경계'의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려한 수식이 없는 단순한 문장으로 진정성의 울림을 전하는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언어의 그늘에서 쉬어가다
- 김상배 시인, 세 번째 시집 『낮술』
김상배 시인의 시는 짧다. 그러나 그 여운은 길다. 김상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낮술』이 나왔다. 표제작「낮술」은 “이러면// 안 되는데”(「낮술」 전문), 달랑 이 두 줄이 전부다. 낮술을 마셔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치명적인 유혹에 무너져버린 적이 있는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그 짧은 언어에 꼼짝없이 붙들리고 만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오래 머물며 저마다 자신의 체험을 끄집어내어 들고서는 한참동안 주억거리기 시작한다. 몇 마디의 단어로 독자들의 개별적인 체험들을 한꺼번에 불러내는 김상배 시인의 언어에는 마치 무슨 주술(呪術)과도 같은 마력이 있다.
김상배 시인의 「낮술」을 읽으며 《이러면 // 안 되는데 》 이 한 마디가 내 과거의 역경을 송두리째 되돌려 놓는 듯하다. 미안한 사람들, 아니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들, 허접하기 짝이 없는 내가 그들과 어울려 낮술에 취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그런 마음이 늘 있었다. 세상이 뭐 같을 때 늘 낮술에 취해서 무료함을 이기던 때 있었다.
인터넷 블로그 <한결 추천 시메일>에서 ‘한결’이 작성한 감상문의 일부이다. ‘역경’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려운 시절에 낮술을 마시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의 경험이 ‘송두리째’ 불려나온 순간이다.
김상배 시인의 시집 『낮술』에 나오는 「새재」도 그렇다.
‘이 골// 저 골// 물들은 참 말이 많다// 새들도 그렇고’(「새재」 전문)
우리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새재’를 간결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를 향해 열어 놓은 그 깊고 너른 자리를 놓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재’를 걸어서 넘을 때처럼 온몸으로 천천히 한 연 한 연 그의 시를 음송해봐야 할 이유가 있다.
무고하게 골짜기로 끌려가 학살당한 사람들이 많아 죽음을 ‘골로 갔다’고 표현한다. 한 글자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간사가 담겨 있다. 시인은 ‘골’로 간 사람들이 물이 되어, 새가 되어 할 말이 많다고 적어 놓고 있다. 물과 새의 다변과 시의 간결함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긴장감을 일으킨다.
장편소설 몇 십 권으로 담기 힘든 이야기들이 이 골 저 골마다 가득하다고 표현하고 있는 넉 줄의 시, 그 무변한 행간이야말로 우리가 몸소 겪고 들은 이야기로 채워야 할 세상이 아닌가.
김상배 시인의 시집 『낮술』은 짧으면서도 언어의 그늘이 웅숭깊은 시가 난무한다.
첫눈 내린 날
포장술집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오줌이 마려운 아내를 따라나섰다가
눈꽃 핀 나무 아래에서
아내의 흰 엉덩이를 보았네
참 아름다웠네
살맛이 났네
- 「눈꽃」 전문
김상배 시인의 ‘눈꽃’이라는 시입니다.
형식은 소품이고 시의 구조도 단순하지만 내용은 영락없이 큰 깨달음에 이른 선시와 같지 않습니까? 화려한 수식이 없는 단순한 문장이 때로 이렇게 진정성의 울림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포장마차 부근에서 아내의 엉덩이를 보았다면 아마 시치미를 떼고 보지 않은 것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거기서 시를 찾아냅니다. 시인의 눈으로 찾아내는 ‘발견’은 과학자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과학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지만, 시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뒤에 그 여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하지요.
_안도현(시인)
시인의 말
우주나 자연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유와 희망 따위는 노래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염없이,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살았다. 세월이 흘렀다. 그 사람들이 모두... 시(詩)가 되었다. 더러는 삶의 지게가 너무 가볍다고 눈총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지게의 짐을 스스로 늘리지는 않았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구차한 행로(行路)였겠으나, 나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고, 마침내 내 삶의 무게조차 즐거워졌다.
시인의 말
제1부 낮술
낮술
황홍하다
눈꽃
중년中年
비우다
새재
인생은
西海
섬
장미
여름
인생
빈집
거미
비
제2부 딸
딸
영산홍
빈 방
문신文身
무인도
악어
겨울 山
그것도 모르고
목련 국밥
뿌리
임종臨終
괜찮지
안용호
고슴도치
여우
제3부 국수
아닌데
국수
그 말은 사실이었을까
바람꽃
순례巡禮
부활
청년들
위대한 신발
꿈
제4부 슬픔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시인에게
들국화
그대에게
발문跋文
장가들다
오늘 하루
심심해서
탑
김치와 비틀즈
모내기
화석化石
제5부 경계(境界)
경계(境界) 1
경계(境界) 2
낙엽
가을
단풍
홍시
봄날
연가戀歌
산책
지붕
매미소리
재떨이
찰나刹那
히야신스
무덤
절창
발문 권덕하
파밭을 매는
늙은 아내여,
저렇게
섬 하나 그 자리에 있어
바다는
종일
외롭지 않았네
-「무인도」 전문
김상배 [저]
저자 김상배는 195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다녔고,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첫 시집에 「코 고는 아내」가 있고, 두 번째 시집으로 「잘 있는가, 내 청춘」이 있다. <화요문학> 동인이며, 논산 쌘뽈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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