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를 ‘비지배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공화주의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소에서 기획한 정치연구총서 5권인 이 책은 공화주의 사상과 이론의 ‘지배’ 개념을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 문제에 적용해 이에 내재된 부정의를 이론적·경험적으로 분석한다. 모든 시민이 공적·사적 권력의 지배에 노출되어 있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보고, 이러한 ‘비지배 자유’를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을 형성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공화주의 이론은 물질적 평등을 위한 분배적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에서 행위자 간의 권력의 차이가 초래할 수 있는 지배 가능성을 줄여 시민들이 동등한 정치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공화주의자들은 지배 상황에 놓인 개인이나 집단은 실제적인 간섭을 받지 않아도 자유의 축소를 경험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공화주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현재 지닌 선택지의 범위(선택지의 양)가 아니라 선택지의 범위에 대한 통제권(선택지의 질)이 중요하다. 현재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의 범위가 넓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 의해 축소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선택지를 안정적으로 자유롭게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왜 갑을관계가 문제인지 알아보고, 지배를 수반하는 갑을관계의 해악을 살펴본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상가건물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러한 갑을관계의 문제점들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 각각의 관계에서 지배를 최소화할 방안이 있는지 알아본다.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구성원들이 평등한 존재로 상호작용하도록 함으로써 ‘평등한 존재들의 사회’를 실현하는 길에 이 책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갑을관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갑을관계는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고, 갑은 지위나 권력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을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할 수 있는 일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을은 생계와 같은 자신의 기본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갑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수용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따라서 갑을관계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착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을 지배 개념으로 분석하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나 상가건물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 등 구체적인 갑을관계 사례에 적용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는 갑을관계와 지배, 2장에서는 갑을관계와 정의, 3장에서는 갑을관계와 직장 내 괴롭힘, 4장에서는 갑을관계와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논한다. 이 책은 규범적 정치이론이 현실에 대한 경험적·정책적 연구와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실천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갑을관계 속에서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집필됐다.
갑을관계는 단순히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아니다. 실제로 갑질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현대판 노예’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갑을관계는 언제든 갑질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정의’다. 이 책은 그 정의의 시작이 될 것이다.
들어가는 말 4
1장 갑을관계와 지배
왜 갑을관계가 문제인가? 14
어떤 갑을관계가 문제인가? 26
지배의 개념적 정의 33
지배의 세 가지 조건 43
국가의 지배 61
2장 갑을관계와 정의
지배를 수반하는 갑을관계의 해악 70
갑을관계와 분노 83
지배의 최소화를 위한 전략 90
3장 갑을관계와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부상 130
왜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133
직장 내 괴롭힘과 지배 140
직장 내 괴롭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149
4장 갑을관계와 상가 젠트리피케이션
상가건물 임대인-임차인 관계와 지배 156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지배 162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168
나가는 말 171
참고문헌 174
갑을관계는 시장 내의 계약적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가족과 같은 사적 영역을 배제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시민을 평등한 존재로 가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의 권력을 동등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일상의 많은 관계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로 이뤄져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 소비자와 감정노동자의 관계 등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는 권력 불균형을 안고 있지만, 이러한 모든 관계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pp. 18~19
국가 권력의 영향을 받는 사회 내 모든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들이 자의적 권력하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민주적으로 제정된 현행법하에서 집행되는 국가의 사회적 권력은 자의성이 낮아서 그 자체로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다시 헌법의 제한을 받으며, 헌법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준거가 되어준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음에 따라 국가 권력의 자의성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사회변화를 통해 해석이 바뀌면서 현행법의 자의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 내에 다양한 항의 방식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야 이들이 현재로서는 자신의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국가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지 않다고 믿을 수 있다.
-pp. 66~67
직장 내 괴롭힘은 일터에서의 권력관계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 대안도 일터에서의 권력관계를 민주화화는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신조어인 ‘갑질’이라는 용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의제화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 132
조계원 [저]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정치사상 전공으로 공화주의를 중심으로 한 현대정치이론과 감정이론을 현실 문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지배와 정의에 관한 일반이론』(2019), 『혐오와 수치심』(2015)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온라인 행동주의와 집합 감정: 청와대 국민청원을 중심으로」(2021), 「직장 내 괴롭힘 방지와 일터 민주주의: 공화주의적 시각」(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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