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는 왜 글로벌 현상이 되었는가?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소에서 기획한 정치연구총서 4권인 이 책은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퇴행을 살펴본다. 권위주의 통치에서 벗어난 지 40년이 가까워오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선출직 공무원들을 골라내는 방식 이상의, 정치공동체 관리시스템으로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미국도 트럼프 이후 처참히 망가지는 중이다. 비례대표제 같은 민주적이라는 선거제도를 쓰는 서유럽 국가들 역시 포퓰리즘의 역풍은 거세다. 민주주의 퇴행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축적된 정치학의 주요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해법을 제시한다.
민주주의 위기가 계속된다고 해도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가 망가질 때 최대피해자는 결국 일반시민이다. 민주주의는 먹고사는 문제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제어하는 데도 가장 효과적인 정치체제다.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의 영역에서도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소수의 선택을 존중하는 최선의 정치적 방벽이다. 민주주의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에게 실존의 문제다.
현시점에서 민주주의 퇴행은 글로벌 현상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산 소득의 격차가 양극화되며, 좋은 교육과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접근 기회가 소수 계층에 집중된 사회경제적 현실과 민주주의 위기라는 정치적 현상은 서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힘들고 팍팍한 일상이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결국 다시 정치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퇴행하는 한국 민주주의,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은 글로벌 추세와 공유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사정에서 비롯된 요소들도 포함한다. 북핵을 중심으로 한 북한문제, 일제강점기부터 군부권위주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문제가 한국식 정치양극화의 핵심연료 역할을 한다.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이슈들로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여전히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을 바꾸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퇴행은 계속될 것이다.
총 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에서는 민주주의 위기의 의미, 글로벌 현상으로서의 민주주의 위기를 살펴본다. 또한,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양면을 들여다본다. 2장에서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알아보며, 그중에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해 살펴본다.
민주주의는 보통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며,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확대할 수 있을 때 작동한다. 이를 기대할 수 없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약화된다. 강력한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 당파적 입장과 이해에 따라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 양극화, 심화되는 정서적 양극화와 부정적 당파성을 볼 때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퇴행의 조건적 맥락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들어가는 말 4
1장 민주주의 위기: 세계와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의미 16
글로벌 현상으로서의 민주주의 위기 40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양면 59
2장 한국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퇴행 92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103
누가 민주주의 퇴행을 지지하는가? 131
참고문헌 148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치자.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가 현격히 줄어드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민주주의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그 질이 나빠진 나라들이 많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첫째 의미로 민주주의 위기를 이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였던 체제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권위주의가 들어서는 것을 ‘민주주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라고 부른다. 그런 일이 한 나라 또는 가까이 이웃한 몇몇 나라들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때 그것은 분명히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 위기다.
-pp. 16~17
민주주의 퇴행은 왜 생기는 것인가? 일단 신생민주주의 체제들에 국한해서 보면 한때 보편사적 현상으로까지 인식되었던 민주화 흐름이 독재화 흐름으로 바뀌게 된 것은 자유주의 자체의 고유한 속성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 퇴행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의 결핍상태에 있다. 달리 말해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자유주의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을 우리는 민주주의 질 저하라고 보는 것이다.
-p. 53
단순다수제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강성지지층에 의한 정당포획이 진행되면서 정당리더십과 정치인들은 선거경쟁과 정치과정에서 ‘선과 악’의 대결 또는 ‘우리’와 ‘그들’의 대결 프레이밍을 활용할 인센티브를 갖게 되었다. 부정적 당파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의 경쟁자는 ‘악’이고, ‘우리’가 아닌 ‘그들’인 데다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득권 집단이라는 프레이밍을 통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집중한다. 유권자들은 상대 정당, 상대 후보자가 ‘부패하고 위선적이기 때문에’ 싫어서 다른 정당,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제로섬적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은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장기적으로 볼 때 유권자들의 정치무관심과 혐오를 부추기는 작용을 한다.
-p. 115
권혁용 [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Texas A&M 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Oxford와 Duke대학교의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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