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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고명재 시집
문학동네시인선1 ㅣ 고명재 ㅣ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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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일
2022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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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page/131*224*12/266g
  • ISBN
9788954690072/895469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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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시와 정통으로 눈 맞은 사람. 시에 꿰뚫린 사람. 당신의 언어는 팽이처럼 저를 곤두선 채 돌고 싶게 만듭니다.” _박연준(시인) 가장 투명한 부위를 맞대는 일의 눈부심, 말갛고 밝은 죽음과 사랑의 세계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는 평을 받으며(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데뷔한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을 문학동네시인선 184번으로 펴낸다. 당선소감에서 시인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라 말한 바 있다. ‘사라짐/죽음’과 ‘몸/사람’ 그리고 ‘이야기/시’에 대한 이 지극한 마음이 43편의 시편들에 켜켜이 배어 있다. 그리고 사랑, 사랑이 있다.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내 안의 송아지를 사랑해’로 부제목을 달아 시편을 나누어 엮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고명재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사랑’이다.
  •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사랑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반죽에 섞고 언덕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어요 물려받은 빵집이거든요 무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사람이 강물이죠 눈빛이 일렁이죠 사랑은 사람 속에서 흐르고 굴러야 사랑인 거죠 (…)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오븐을 열면 누렁개가 튀어나오고 빵은 언제나 틀 밖으로 넘치는 거니까 빵집 문을 활짝 열고 강가로 가요 당신의 개가 기쁨으로 앞서 달릴 때 해질녘은 허기조차 아름다워서 우리는 금빛으로 물든 눈에 손을 씻다가 흐르는 강물에서 기다란 바게트를 꺼내요 _「페이스트리」 부분 안쪽에서 부푸는 것, 틀을 넘치며 태어나는 것, 기쁨으로 앞서 달리는 것, 금빛으로 물든 눈에 손을 씻는 것. 고명재 시세계 속 사랑의 속성들이다. 그리하여 빵처럼 말랑하고 부드럽고 향긋해지는 것. 반죽에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섞는다는 것이 인상적인데, 떠나간 존재들에 대한 애틋한 숙고는 이 시를 비롯해 시집 전반에 별처럼 박혀 있고, 그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피하거나 멈추지 않는 것, 오히려 전부를 거는 것으로 시 속 화자들은 “매일” 사랑을 배워간다. 상실과 허무의 그림자를 거두어낸 자리에서 만나는 말갛고 환한 볕 안에서 사랑은 되살아나고(「환」), 시인은 그 사랑을 쥐고 조금 더 용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이 시를 써나간다.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 떠난 사람이 캄캄하게 보고 싶어서/ 가슴속의 복숭아를 반으로 가르는/ 과육의 슬픔도 과도도 향기도 모두가 좋다”(「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고, 오롯한 사랑의 주체가 되어 써나간다.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 사랑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연의 아름다움은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서시 「청진」의 첫 구절이다. 발문을 쓴 박연준 시인은 이 구절의 ‘연’을 ‘시’로 바꿔 읽어보자 제안한다. “얼레를 풀어 시가 바람을 타고 솟아오르도록 놓아주면서 우리 스스로 놓여나는 일”(박연준)이 시 쓰기와 시 읽기의 아름다움이 아닐지. 사랑을 쥐고 종종 높은 것에 연결돼 있는 느낌을 소중히 여기는 이 시인은 귀로 시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가 울 때 그는 캄캄한 이국(異國)입니다/ 누가 울 때 살은 벗겨집니다/ 누가 울 때 그 사람은 꽃이 됩니다/ 꽃다발을 가슴에 안아야겠지요”(「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타자화하거나, 입으로 속단해 말하는 일을 삼가고 귀에 들어온 것을 은은히 섬겨 시로 구축하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방식일 것이다. “어둠의 입장에서는 빛이 밤의 구멍이고 그 요란한 빛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 (…)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위해 존재의 품위와 부드러운 꿈결을 위해 침묵을 위해”(「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 온몸을 던지는 나방처럼 말이다. 이 시집을 잘 표현하는 시구 가운데 “우리는 함께 사랑으로 시간을 뚫었다”(「연육」)를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시간감각을 벗어난 자리에 뚫(리)거나 (치)솟는 사랑의 이미지들이 힘있게 자리하며 시인이 그리는 진실한 생의 시간을 예감하게 한다. 그때 나는 빵을 물면 밀밭을 보았고 그때 나는 소금을 핥고 동해로 퍼졌고 그때 나는 시를 읽고 미간이 뚫렸다 그때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그때의 네가 창을 흔든다 그때 살던 사람은 이제 흉부에 살고 그래서 가끔 양치를 하다 가슴을 쥔다 그럴 때 나는 사람을 넘어 존재가 된다 _「소보로」 부분 반지하가 차오르며 ...
  • 시인의 말 1부 사랑은 육상처럼 앞지르는 운동이 아닌데 청진/ 수육/ 환/ 아름과 다름을 쓰다/ 왜 이 집에 왔니/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포드 이후/ 너를 태우고 녀석이 불을 핥으려 한다/ 뜸/ 선/ 시와 입술/ 왜 잠수교가 잠길 때 당신이 솟나요/ 연육/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페이스트리 2부 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 비누/ 한정식/ 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 일흔/ 귀뚜라미/ 둘/ 우리의 벌어진 이름은 울음에서 왔다/ 소보로/ 북/ 물수제비/ 여름 하면 두꺼비가 쏟아져내리지/ 지붕/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3부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내 안의 송아지를 사랑해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송아지/ 몸무게/ 바이킹/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경주 사는 김대성은/ 노랑/ 등/ 초록/ 사이 새/ 보라/ 우리는 기온이 낮을수록 용감해진다/ 얼얼/ 자유형 발문| 미친 말들의 슬픈 속도-박연준(시인)
  • 그때 나는 빵을 물면 밀밭을 보았고 그때 나는 소금을 핥고 동해로 퍼졌고 그때 나는 시를 읽고 미간이 뚫렸다 그때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그때의 네가 창을 흔든다 그때 살던 사람은 이제 흉부에 살고 그래서 가끔 양치를 하다 가슴을 쥔다 그럴 때 나는 사람을 넘어 존재가 된다 _「소보로」 부분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눈 밟는 소리에 개들은 심장이 커지고 그건 낯선 이가 오고 있는 간격이니까 대문은 집의 입술, 벨을 누를 때 세계는 온다 날갯짓을 대신하여 _「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부분 늙은 엄마는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월계수 잎을 골고루 흩뿌려둔다 저녁이 오면 찜통을 열고 들여다본다 다 됐네 칼을 닦고 도마를 펼치고 김이 나는 고기를 조용히 쥔다 색을 다 뺀 무지개를 툭툭 썰어서 간장에 찍은 뒤 씹어 삼킨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입속에서 일곱 색이 번들거린다 _「수육」 전문 연의 아름다움은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나를 배고 엄마는 클래식만 들었다 지금도 소나타가 들리면 나의 왼손가락은 이슬을 털고 비둘기로 솟아오른다 나는 반쯤 자유 반쯤 미래 절반은 새엄마 내가 행복해야 당신의 흑발이 자라난다고 거대한 유칼립투스 아래에 누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화를 건다 사랑은? 사랑은 옆에 잠들었어요 _「청진」 부분 너는 불이니 꽃이니 죽고 싶을 때마다 끝 모를 숲을 홀로 걸었다 너는 숲이다 낮인데 밤이다 물불과 술이다 서슴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를 찾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리듬이라고 한다 빛을 먹고 푸르게 타는 걸 식물이라고 _「아름과 다름을 쓰다」 부분 한 학자는 나방을 침묵의 귀족, 밤의 방패, 어둠의 담요라고 명명하는데 그는 평생 나방을 관찰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통 나방이 빛을 좋아해서 광원에 매달린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나방은 빛을 혐오합니다 그들은 우아하고 진중할 뿐이죠 어둠의 입장에서는 빛이 밤의 구멍이고 그 요란한 빛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 그들은 온몸을 던집니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위해 존재의 품위와 부드러운 꿈결을 위해 침묵을 위해 다친 마음과 벌어진 입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저 먼 시간을 날아가 밤의 상처에 날개를 덮는 거지요 _「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 부분 울음에서 왔다 우리의 벌어진 이름은 삐약이라든가 야옹이라든가 은사시나무라든가 엄마- 하고 입 벌리는 무덤 앞이라든가 문자를 버리면 휘발유처럼 번지는 땀띠 엄마를 묻고 할매랑 떡을 씹는다 (…) 동백유로 그 아이의 머리를 빗겼지 국숫발 같은 흑발을 차르륵 흘리며 걔는 늘 그렇게 혼자 차분했다 그래서 내가 걔 아픈 건 하나도 몰랐다 이것이 엄마가 소리처럼 흩어진 이유 _「우리의 벌어진 이름은 울음에서 왔다」 부분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 _「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부분
  • 고명재 [저]
  •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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